지난 22일 오전 8시 경북 포항시 포스텍 대강당. 포스텍 수시 1단계 서류 전형에 합격한 700여 명이 모여든 가운데, 강당 입구 곳곳엔 ‘전형 면접 안내 200분’이라 적힌 피켓이 곳곳에 있었다. 개인 면접 20분, 개인 과제 100분, 단체 과제 80분 등 총 3시간 20분짜리 장시간 전형을 안내하는 원형 그래프였다. 보통 15~20분이 걸리는 다른 대학의 면접 전형에 비하면 10배 수준이다. 식사·휴식 시간을 제외하고 200분이 걸리다 보니, 이날 오전에 도착한 수험생들은 어두워진 오후 5시가 돼서야 고사장 밖으로 나왔다.
국내 대표 공과대학인 포스텍이 올해 학생 선발에서 대대적 변화를 줬다. 1년에 370명을 뽑는 포스텍은 가장 많은 학생(220명)을 선발하는 ‘일반전형Ⅰ’의 전형 시간을 기존 50~60분에서 200분으로 4배가량으로 늘렸다. 원래도 면접이 다른 대학보다 2~3배 길었는데, 더 확대한 것이다. 수능 성적을 반영하지 않는 이 전형은 내신도 서류 전형에서만 참고한다.
문항 역시 다른 대학과 180도 달랐다. 일반적 문제 풀이식 문항이 아니라, 실제 문제 해결 능력을 검증하는 식이었다. 예컨대 놀이기구의 원리를 물리학적으로 설명토록 했고, 놀이공원을 운영할 때 ‘이윤 창출’과 장애인 등 ‘약자 배려’ 두 가치가 충돌할 때의 학생 생각을 물었다.
기존에 없던 단체 과제(8인 1조)도 추가했다. 단체 과제에선 ‘달에서 자원이 발견된 상황’을 가정한 뒤 채굴·운송 등 기술력이 서로 다른 두 국가를 제시했다. 이어 학생들에게 두 국가가 어떻게 힘을 모아 자원을 가져올 수 있을지 협의토록 했다. 학생의 수학·과학 능력뿐 아니라 인문·사회 관련 소양과 소통 능력을 두루 보겠다는 취지다.
이처럼 포스텍이 변화를 시도한 건, ‘인공지능(AI) 시대엔 시험 점수 1~2점보다 다양한 역량을 갖춘 학생 선발이 더 중요하다’는 취지에서다. 김성근 포스텍 총장은 “AI 시대에는 틀에 박혀 쳇바퀴 도는 학생을 키워낼 게 아니라 큰 방향을 잡을 수 있는 잠재력을 가진 학생을 선발해야 한다”며 “이번 전형은 우리 대학이 그동안 고민하고 내놓은 결과물”이라고 했다.
포스텍은 채점을 둘러싼 공정성 시비를 없애기 위해 학생 1명당 교수 6명에게 평가를 받도록 했다. 학교 전임 교원 282명 중 학회나 해외 일정으로 불가피한 경우를 제외한 270명이 심사위원으로 투입됐다. 출제위원으로 나선 교수들은 지난 6월부터 20회 넘게 회의하면서 문제를 준비했다. 출제위원장을 맡은 교수는 “문제 출제를 위해 쓴 시간도 평년의 10배 수준”이라고 했다.
학생들 역시 “짧은 면접에선 한 번 실수하면 만회할 수 없는데, 긴 시간 역량을 드러낼 수 있었다”며 긍정적 반응을 보였다. 이번 수시에서 포스텍과 서울대 자연대, 카이스트에 지원한 고3 박모(18)군은 “여러 교수님들에게 평가를 받을 수 있다는 점이 좋았다”고 했다. 지방 한 과학고 졸업 예정인 김모(17)양은 “단체 과제에선 과학 지식만큼이나 학생끼리 소통하는 능력도 많이 보는 시험이란 생각이 들었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