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연히 아이를 가까운 고등학교에 보내고 싶죠. 그런데 학생 수가 너무 적어서 내신도, 고교학점제도 불리할 것 같아요. 교육청이 학교들을 통합해 주면 좋겠어요.”
20일 경기 과천시에서 열린 ‘과천시 중·고등학교 교육 환경 개선을 위한 정책 토론회’에서 과천문원중 2학년 자녀를 둔 서정은씨가 말했다. 현재 과천시에는 일반고가 3개 있는데, 3곳 모두 1학년이 100명대에 그친다. 과천고는 176명, 과천중앙고는 182명, 과천여고는 97명이다. 서씨는 “과천 학부모들이 자녀 고등학교 진학을 앞두고 학생 수 많은 학교를 찾아 서울 강남, 용인 등지로 떠나고 있다”고 말했다.
이날 토론회는 학생 이탈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과천시가 정책 연구 용역을 한 결과를 발표하고 주민 의견을 듣는 자리였다. 정책 연구를 맡은 박대권 한국학중앙연구원 교수는 “고교 학점제를 제대로 운영하려면 한 학년에 10반은 돼야 한다”면서 “일반고 하나는 중학교로 전환하고, 나머지는 통합해야 한다”고 했다. 과천시는 이날 토론회 결과를 바탕으로 경기도교육청에 ‘고교 통합’을 요청할 계획이다.
고교생들이 대학생처럼 수업을 골라 듣는 고교 학점제가 올해 고1부터 시행되면서 ‘작은 학교 기피 현상’이 심해지고 있다. 기존에도 소규모 학교는 내신 1등급 인원이 적어 학생들이 진학을 꺼렸는데, 학점제와 함께 도입된 내신 5등급제가 이런 분위기에 불을 지피는 상황이다. ‘내신 5등급제’에선 1등급 범위가 ‘상위 10%’로 넓어졌지만, 오히려 ‘1등급을 못 받으면 큰일 난다’는 인식이 퍼지면서 ‘학생 많은 학교’를 더 선호하게 됐다는 것이다. 결국 과천시처럼 학부모들이 지역을 아예 떠나거나 “학교를 통폐합해 달라”고 나서는 일까지 생기고 있다. 현재 전국 고교 2273곳 중 전교생이 300명 미만인 학교는 532곳으로, 2015년 369곳보다 44.2%(163곳) 늘었다.
학교들 사이에선 “학생 수가 계급”이라는 말까지 나온다. 서울 서대문구에 사는 중3 학부모 김모씨는 “집 근처 고교 입학설명회에 갔는데 학생 수가 많다는 걸 1순위로 홍보하더라”면서 “학교 분위기가 딱딱해 보였지만, 일단 애들이 많은 게 내신에 유리하다고 하니 그 학교에 아이를 보낼 생각”이라고 말했다.
소규모 학교는 교사 수가 적어 다양한 선택 과목을 개설하는 것도 쉽지 않다. 한국교육과정평가원에 따르면, 20학급 이상 학교의 선택 과목은 평균 84.1개인데 20학급 미만 학교는 76.8개였다.
전문가들은 “어느 학교에 가든지 균등한 교육 기회를 누려야 한다는 점에서 현재 고교 학점제는 문제”라고 지적한다. 학생들은 보통 집 근처 학교에 배정되는 경우가 많은데 학교 규모가 작아 교육에서 불이익을 받는 건 불공평하다는 것이다. 한국교총 등이 고교생 1670명을 설문한 결과, 81%가 ‘학교 규모에 따라 개설 과목 수가 달라지는 건 불공평하다’고 답했다. 박대권 교수는 “소규모 학교 문제와 상대평가 제도를 유지한 채 고교 학점제를 도입해 부작용이 나타나고 있다”고 말했다.
☞고교학점제
학생이 진로와 적성에 따라 원하는 과목을 선택해 듣고, 학점을 취득하는 제도. 올해 고등학교 1학년부터 전면 도입됐다. 1학년은 공통 과목을, 2·3학년에는 진로에 맞는 선택 과목 위주로 수업을 듣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