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일 치러진 2026학년도 대학수학능력시험(수능)은 변별력 있게 출제됐던 작년 수능보다 어렵게 출제된 것으로 분석된다. 사교육의 도움을 받아야 풀 수 있는 이른바 ‘킬러 문항’은 없었지만, 많은 시간을 할애해야 풀리는 고난도 문항들이 곳곳에 배치돼 수험생들의 체감 난도를 높였다고 전문가들은 평가했다. 특히 국어와 영어 영역이 상당히 까다로웠다는 분석이 나왔다.
올해 수능은 의대 모집 인원이 다시 줄었고 전체 수험생(55만4174명)이 2019학년도 이후 7년 만에 최다를 기록해 적정 변별력을 확보하는 게 관건이었다. 출산율이 높았던 2007년생들이 올해 고3으로 수능을 보면서 재학생 수험생이 전년 대비 3만명 넘게 증가했다.
김창원 수능 출제위원장(경인교대 교수)은 이날 정부세종청사에서 열린 브리핑에서 “국어, 영어, 수학 영역 모두에서 사교육에서 문제 풀이 기술을 익히고 훈련한 학생에게 유리한 문항은 배제했다”면서 “난도 조절이 잘 이뤄진 지난해 수능과 비슷한 기조로 출제했다”고 말했다.
EBS 현장 교사단 총괄을 맡은 윤윤구 한양대사범대부고 교사는 “이번 수능의 전체 난도는 작년 수능과 유사한 수준이지만, 최상위권 변별을 위한 문항들이 작년보다 어렵게 출제돼 수험생들은 조금 어렵다고 느낄 것”이라고 말했다.
작년 수능은 ‘역대급 불수능’으로 꼽혔던 재작년 수능만큼 어렵진 않았지만, 상위권 학생을 가려낼 수 있는 변별력을 갖췄다고 평가됐다. 올해는 작년보다 까다로운 문제가 더 많아 최상위권 변별력이 더 높아졌다고 전문가들은 보고 있다. EBS 교재에 나온 지문을 활용하거나 비슷한 문제를 출제하는 ‘EBS 연계율’은 올해 수능에서도 50%대를 유지했다.
1교시 국어 영역은 지난해보다 어렵게 출제됐다는 평가가 나왔다. EBS에서 연계된 지문들이 다수 출제됐지만, 전반적으로 문제 푸는 데 시간이 오래 걸린 학생이 많았다는 분석이다.
◇국어 ‘독서’ 수학 ‘확률’ 까다로워… 최대 변수는 이공계 ‘사탐런’
입시 전문가들은 독서 12번을 가장 까다로운 문제로 꼽았다. 12번 문항은 물리학의 열팽창과 관련된 여러 개념의 의미와 관계를 파악하고, ‘보기’의 상황을 알맞게 이해한 답을 고르는 문제다. 선형 열팽창 계수와 곡률, 곡률 반지름 등 과학 개념이 등장해 일각에선 “과학 배경지식을 갖춘 이과 학생에게 유리한 문제가 아니냐”는 지적도 나왔다. 하지만 EBS 국어 강사인 한병훈 덕산고 교사는 “12번은 특정 개념을 단편적으로 물어보는 게 아니라 개념들 간 관계를 파악할 수 있는지 보는 문항”이라며 “지문에 명확한 근거가 있어 과도한 추론을 요구하지 않기 때문에 킬러 문항은 아니라고 본다”고 설명했다.
이만기 유웨이 교육평가연구소장은 “개념 내용을 지문에서 꼼꼼하게 찾아야 해서 시간이 오래 걸리고 난해하다고 느끼는 학생이 많았을 것”이라고 말했다.
2교시 수학도 작년 수능보다 약간 어렵게 출제됐다는 분석이다. 공통 과목과 ‘미적분’ 난도는 작년과 대체로 비슷했지만, ‘확률과 통계’ ‘기하’는 어려웠다는 평가가 나왔다. EBS 수학 강사인 심주석 인천하늘고 교사는 “공교육 중심의 출제 기조는 유지하면서도 작년 수능보다 상위권 변별력을 확보하는 문항이 강화됐다”고 평가했다.
난도가 높은 문항으로 공통 과목 22번(수학Ⅰ)과 21번(수학Ⅱ), ‘확률과 통계’ 30번, ‘미적분’ 30번, ‘기하’ 30번이 꼽혔다. 특히 함수의 극한에 대한 성질을 이해하고 주어진 조건을 정확히 해석하는 능력을 보는 21번 문항이 까다로웠다는 반응이 많았다. 김병진 이투스 교육평가연구소장은 “지난해 수능에 비해 어렵다고 느낀 학생이 다수 있었을 것”이라며 “공통 과목 문제를 풀 때 시간 조절을 잘했는지가 관건이 될 것”이라고 했다.
3교시 영어는 작년 수능보다 어렵다는 평가가 많았다. 1등급 비율이 6.2%였던 작년 수능보다는 어렵고, 난도가 높았던 9월 모의 평가(4.5%)와는 비슷하거나 더 어려웠던 것으로 분석됐다. 영어는 2018년 절대 평가로 바뀌어서 원점수 90점 이상 받으면 모두 1등급이다. EBS 영어 강사 김예령 대원외고 교사는 “지나치게 복잡하고 어려운 지문은 배제하면서도 선택지의 오답 매력도(정답이 아닌 선택지가 정답처럼 보이도록 유도하는 것)를 전반적으로 높여 변별력을 확보했다”면서 “정확한 독해력을 요구하는 문항들이 중상위권 학생들의 성적을 결정할 것”이라고 말했다. 고난도 문항으로는 32·34번(빈칸 추론), 37번(글의 순서), 39번(주어진 문장의 위치) 등이 꼽혔다.
올해 수능에서는 이른바 이공계 학생이 사회탐구 영역에 몰리는 ‘사탐런’ 현상이 대입의 최대 변수로 떠올랐다. 사탐런은 주요 상위권 대학이 자연계 수험생에게 내걸었던 과학탐구 응시 조건을 작년부터 폐지하면서 자연계 수험생이 상대적으로 학습 부담이 적은 사회탐구에 대거 응시한 것이다. 한국교육과정평가원에 따르면, 올해 수험생 가운데 사회 과목을 1개 이상 선택한 학생이 77.3%(41만1259명)로 작년 수능(62.1%)보다 15.2%포인트 늘어났다. 과학탐구만 선택한 수험생은 12만692명(22.7%)으로 7만명 가까이 줄었다. 과학탐구 응시생은 모집단 자체가 적어 좋은 등급을 받기 어려워졌고, 수능 최저 등급을 맞추는 것도 쉽지 않아진 것이다.
임성호 종로학원 대표는 “사회탐구에서 높은 등급을 따는 수험생이 많아지면 수시에서 최저 등급을 맞추는 학생도 늘어나서 결국 내신의 변별력이 커질 수 있다”면서 “변수가 많아 합격 예측이 어려운 상황”이라고 말했다.
올해는 특히 최상위권 학생들의 경쟁이 치열할 것으로 보인다. 정부의 ‘의대 증원 정책’으로 2025학년도 1500명 정도 늘어났던 의대 모집 인원이 올해 다시 증원 이전 규모로 돌아갔기 때문이다.
한국교육과정평가원은 17일까지 홈페이지에서 수능 문제와 정답에 대한 이의 신청을 받고, 최종 정답은 25일 오후 5시 발표한다. 수능 성적표는 12월 5일 배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