존스홉킨스대서 카이스트로 미국 존스홉킨스대에서 카이스트로 옮긴 신소재공학과 강성훈(가운데) 교수가 지난 6일 카이스트 연구실에서 학생들에게 연구 지도를 하는 모습./ 신현종 기자

성균관대는 올 8월 미국 빅테크에서 휴머노이드(인간형 로봇)를 개발한 30대 A박사를 공대 교수로 영입했다.

성균관대는 로봇 업계 ‘라이징 스타’인 A박사를 데려오기 위해 공대에 로봇학과를 새로 만들고, 교수 임용 과정에서 필수였던 ‘논문 심사’를 생략하는 등 교원 선발 절차까지 바꿨다. 대신 면접에서 A박사 연구의 기술력 검증에 집중했다. 또 내년 2월까지 미국 회사에서 근무한 뒤 한국에 들어올 수 있도록 해줬다. 대학 측은 “연봉은 미국에서보다 적지만 본인이 원하는 연구 여건을 최대한 지원해주겠다는 약속을 통해 영입에 성공했다”며 “A박사도 ‘2년 내 자체 휴머노이드를 만들겠다’고 할 만큼 높은 기대감을 보이고 있다”고 했다.

국내 대학은 그동안 미국·중국·유럽에 비해 연봉·처우 조건이 떨어져 번번이 글로벌 인재 유치전에서 고배를 마셨다. 대학 내 한국인 교수의 해외 이탈을 막기도 버거웠다. 정부 지원을 앞세워 우수 인력을 쓸어 담은 중국·싱가포르·홍콩 대학의 급부상으로 위기에 몰린 국내 대학은 영입 전략을 싹 뜯어고쳤다. 고액 연봉 제시는 포기하는 대신 일정 기간 겸직 허용, 첨단 연구 장비 지원, 교수 선발 제도 혁신 등 모든 수단·자원을 총동원했고, 성균관대의 영입 사례처럼 조금씩 성과가 나타나고 있다.

배상훈 성균관대 교무처장(교육학과 교수)은 “젋은 교수들에게는 이직 과정에서 높은 연봉도 중요하지만 다양한 연구 경험을 통해 본인이 학자로서 얼마나 성장할 수 있는지도 중요하게 따진다”며 “이런 신진 교수들의 마음을 사려면 대학 핵심 수뇌부부터 대학 차원에서 가능한 현실적 영입 방안이 무엇인지 치열하게 고민하고 추진하려는 의지가 있어야 인재 영입에서 좋은 성과를 거둘 수 있다”고 말했다.

◇“연봉 적지만 원하는 연구 다 하시라“… 빅테크 개발자 데려왔다

미국 존스홉킨스대 소속이던 강성훈(51) 교수는 지난해 8월 국내 카이스트(KAIST) 신소재공학과로 자리를 옮겼다. 그는 카이스트에 부임한 뒤에도 지금까지 미국 대학 연구 업무를 함께 보고 있다. 카이스트 측이 강 교수가 존스홉킨스대에서 해온 연구를 마무리할 수 있도록 겸직을 허용했기 때문이다. 강 교수를 잡기 위해 관례를 깬 것이었다. 뼈보다 단단한 바이오 소재 등 생체 모사 소재 분야 권위자인 강 교수는 최고 권위 국제 학술지인 네이처·사이언스에 총 5편, 전 세계 상위 10% 논문에 해당하는 과학기술논문 색인(SCI)급 학술지에 65편의 논문을 발표했다. 당초 강 교수는 미국 대학에 비해 연봉·처우가 낮아 이직을 망설였다. 하지만 카이스트 측이 강 교수 연구에 필요한 고가 실험 장비 도입, 주거 지원 등 최고 수준의 연구 여건 제공을 약속했을 뿐 아니라 1년 넘게 겸직까지 허용해주겠다고 설득하자, 이직을 결심했다고 한다.

이균민 카이스트 교학부총장은 “교수들은 이직할 때 기존 연구를 이어갈 수 있는지를 가장 우려한다. 이에 영입 대상 교수의 ‘연구력’ 유지에 모든 전략을 집중하고 있다”며 “최근 해외 우수 교수 2명을 데려오면서 그 밑의 대학원 제자 20명도 함께 받기로 했는데, 이 역시 영입 성공에 큰 요인으로 작용했다”고 했다. 성균관대 등 국내 다른 대학에서도 우수 교원 영입을 위해 이전 대학·기업과 겸직을 허용하는 사례가 늘어나고 있다.

그동안 국내 대학들은 미국·유럽 명문대나 빅테크에서 특A급 연구자를 데려오는 일이 불가능에 가까웠다. 스타 교수가 국내 대학에 오더라도 대부분 정년을 앞두고 1년 단임으로 부임하거나, 해외에 머물며 1년에 2~3차례 국내 학생에게 온라인 수업을 하는 정도였다. 해외 인재 영입에 큰돈을 들이고도 연구 실적 개선으로 이어가지 못하는 경우가 허다했다.

하지만 최근 영입 대상에 따라 각종 연구 여건을 최대한 제공하는 등 맞춤형 전략을 펼치면서 인재 유치에 성공하기 시작했다. 특히 국내 학계에서 앞으로 계속 활동할 수 있는 30~40대 젊은 교수들이 크게 늘어난 점도 고무적이다. 최근 해외 우수 대학에서 국내로 옮긴 교수·연구자들은 연봉이 기존보다 50~60%가량 깎이는 경우가 많지만 “연구 여건 면에서는 만족한다”는 반응을 보이고 있다.

IBM 다니다가 성균관대로 IBM 연구 자회사에서 근무하다 온 강승구(오른쪽) 성균관대 나노공학과 교수가 지난달 22일 수원 캠퍼스 연구동에서 학생들을 지도하고 있는 모습./ 장련성 기자

성균관대 나노공학과 강승구(52) 교수는 지난해 초 미국 IBM의 연구 자회사인 IBM리서치를 떠나 국내로 오면서 연봉이 3분의 1 수준으로 줄었다. 강 교수는 수백만 화학 물질을 인공지능(AI)으로 분석해 신약 개발 기간을 기존 대비 절반가량 줄이는 연구로, IBM 내 상위 1% 연구자만 받을 수 있는 ‘최우수 연구상’을 6차례나 받았다. 특히 지난 2023년 AI로 단백질 구조를 예측한 구글 과학자들이 노벨 화학상을 받은 뒤, AI를 활용한 신약 연구 분야는 더욱 각광받고 있다. 이 덕분에 강 교수의 ‘몸값’은 더 뛰었지만 그는 국내행을 택했다. 강 교수는 “AI 활용 신약 연구에 필요한 수퍼컴퓨터·전자현미경 등 첨단 분석 장비가 성균관대에 이미 갖춰져 있거나 조만간 들어올 예정”이라며 “이뿐 아니라 한국에는 임상 연구를 위한 대형 병원 인프라가 있다는 점도 마음에 들었다”고 했다. 연세대도 지난해 마이크로소프트(MS)리서치 출신 AI 전문가 이봉신 교수를 영입하면서 향후 3년간 인센티브와 연구비, 강의 조정 등의 지원을 약속했다.

해외 대학보다 부족한 연봉·처우 수준은 정부 지원을 활용해 보충하기도 한다. 포스텍은 국제 학술지 네이처에 논문 4편을 발표하는 등 물리학계에서 주목받던 미국 칼텍 출신 최영준(35) 박사를 최근 영입했다. 이 과정에서 한국연구재단의 해외 우수 과학자 유치 사업 등을 통해 연구 정착금 30억원을 제공했다.

대학들은 우수 연구 인력 유치를 위해 ‘창업 지원’도 적극 활용하고 있다. 실리콘밸리 등 빅테크 기업에선 고액 연봉이 보장되지만 회사가 지정한 연구 프로젝트만 수행해야 하고, 별도 창업을 할 수 없는 등 제약이 많다. 이 점을 공략 포인트로 삼아 기업 연구자를 영입할 때 대학 내 창업 지원 정책을 적극 내세우고 있다. 카이스트 AI대학원의 이기민(37) 교수는 2023년 8월 구글의 AI·과학 연구·개발(R&D) 자회사인 ‘구글리서치’에서 이직해왔다. 이직 논의 당시 오픈AI에서도 영입 제안이 있었지만, 그는 카이스트행을 택했다. 교수 창업을 위해 별도 공간을 제공하고, 외부에서 초기 투자금을 유치할 수 있도록 행정적 지원을 해준다는 전략이 효과를 발휘한 것이다. 이 교수는 “연구자들에겐 연봉도 중요하지만, 오랜 연구 노하우를 살려 자신만의 사업을 하고 싶은 욕심도 크다”며 “(카이스트 이직 후) 연봉이 크게 깎였지만 원하는 연구를 마음껏 할 수 있고, 창업 기회가 생겨 만족한다”고 했다. 이 교수는 현재 카이스트 동료 교수의 대학 내 벤처기업에서 활동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