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성원 카이스트 조기 진학’.
지난달 경북 영주시 휴천동에 있는 대영고에 이런 현수막이 걸렸다. 작년 윤서진군에 이어 두 번째다. 카이스트 측은 “2년 연속 과학영재 제도를 통해 조기 입학생을 배출한 지방 일반고는 대영고가 처음”이라고 밝혔다.
송군은 카이스트가 뛰어난 고교 2학년생들을 대상으로 운영하는 ‘과학영재 선발 제도’에 뽑혔다. 자기소개서와 교사 추천서를 통해 과학·기술 관련 우수한 연구 활동을 한 2학년생에게 3학년과 같이 수시 전형에 지원할 자격을 주는 제도다. 송군은 ‘9.45대1’ 경쟁률을 뚫고 최종 합격했다. 보통 카이스트에 조기 입학하는 학생들은 과학고 출신이고, 비(非) 과학고 학생은 최근 5년간 28명뿐일 정도로 드물다. 지역 교육계에선 “전교생 259명인 작은 학교가 조기 입학생을 연속 배출한 건 놀랍다”는 반응이 나오고 있다.
대영고가 이런 성과를 거둔 건 변화가 절실해 몸부림친 결과다. 1982년 상업고로 개교한 대영고는 1987년 인문계로 전환한 후 ‘면학 분위기 좋은 학교’로 통했다. 그런데 최근 들어 인구 감소의 직격탄을 맞았다. 영주시 인구가 10년 새 1만명 넘게 줄어 9만7500명에 그치자 학생 수도 급감한 것이다. 매년 120명씩 신입생을 뽑던 대영고는 2019년부터 88명(22명씩 4반)만 뽑는다. 학생이 적어 학년별 4명만 내신 1등급(상위 4%)을 받고, 1명이라도 전학 가면 3명으로 떨어진다. 학부모 사이에서 “대영고는 내신 따기 불리하다”는 말이 퍼져 우수 지원자가 줄었다. 서울대 합격생이 10년 전엔 5명이었는데, 2023학년도엔 ‘0명’을 기록했다.
학교는 “인구 감소를 피할 수 없다면, 경쟁력을 키우자”고 발상의 전환을 했다. 학생의 학교생활기록부(학생부)와 자기소개서를 탄탄하게 만들어주기로 한 것이다. 재작년부터 매년 2주씩 ‘집중 탐구 기간’을 운영하며 팀별로 사회문제를 과학 기술로 해결하는 연구를 하게 했다. 예컨대, ‘옥상 녹지 조성이 기후변화 대응에 효과적인가’를 주제로 옥상 모형을 만들고 실험을 하는 식이다. 교사들도 자정까지 남아 학생들의 질문을 받았다.
부족한 부분은 대학 연구진을 섭외해 해결했다. 학생들이 데이터 분석을 어려워하자 연세대 수학계산학부 연구진을 섭외한 게 대표적이다. 연구진은 온·오프라인으로 15차례에 걸쳐 ‘바이오 연구에서 수학 활용법’ 등을 특강했다. 윤정필 과학 교사는 전자기파 연구를 하는 학생들이 초기 방향 설계를 어려워하자 무작정 표준과학연구원에 메일을 보내 “우리 아이들을 좀 도와달라”고 부탁했다. 다행히 연구원 측이 승낙했고 윤 교사는 직접 운전해서 학생들을 대전의 연구원에 데려다 줬다. 바이오·뇌공학자가 꿈인 송성원군은 ‘디지털 디톡스가 뇌파에 미치는 영향’을 탐구했다. 뇌파 데이터 분석 방법은 연세대 연구진에게 배웠다. 대영고 측은 “2년 연속 카이스트에 조기 입학한 학생들은 탐구 활동을 학생부나 자기소개서에 담은 것이 유효했다고 본다”고 말했다. 작년엔 서울대 합격자도 1명 나왔다.
학교는 최상위권이 되려면 사교육보다 스스로 공부하는 시간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희망자를 받아 학원은 주 1회만 가고, 밤 10~12시까지 야간 자율 학습을 하게 한다. 매일 교사도 2명씩 남아 관리한다. 송군도 평일엔 줄곧 학교에서 공부했다. 그는 “자습 때 친구들에게 모르는 걸 알려줬는데, 그 과정에서 나도 같이 성장했다”고 말했다. 카이스트는 수시에서 수능 성적을 보지 않지만, 송군은 모의고사에서 전 과목 1등급을 받았다. 송군은 “주변에선 의대를 많이 권유했지만, 어릴 때부터 과학자가 꿈이었다”면서 “조금이라도 빨리 대학에서 과학 교육을 받게 돼 기쁘다”고 했다.
‘과학 영재가 즐비한 카이스트에서 일반고 조기 입학생이 잘 따라갈 수 있을까’ 걱정하는 목소리도 있다. 지난해 합격해 현재 카이스트 1학년생인 윤서진군은 3점대 후반의 좋은 학점을 받고 있다. 그는 “고등학교에서 공부한 걸 바탕으로 심화 공부를 하는 데 큰 어려움이 없다”면서 “내년 전기전자과에 진학해 대학원까지 갈 생각”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