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등학교 교사 A씨는 최근 우울증 진단을 받았다. 지난 1학기 수업 중에 욕을 하고 갑자기 교실을 뛰쳐나간 학생에게 주의를 준 게 발단이었다. 학부모는 “왜 우리 애한테 뭐라고 하느냐” “아동 학대로 신고하겠다”고 항의했다. A씨는 민원이 계속되자 일에 흥미를 잃고, 마음도 불안해져 병원에 갔다가 우울증 판정을 받은 것이다. A씨는 “앞으로 교사 생활을 제대로 할 수 있을지 모르겠다”고 말했다.

한국 교사들이 학부모 민원과 학생들의 언어 폭력 때문에 받는 스트레스가 세계적으로 가장 높은 수준인 것으로 나타났다. 교사가 된 걸 후회한다는 교사 비율은 OECD(경제협력개발기구) 1위였다.

지난 7일 OECD가 발표한 ‘교원·교직 환경 국제 비교 조사(TALIS) 2024’ 결과에 따르면, 한국 교사 56.9%가 ‘학부모 민원 대응’이 주요 스트레스 요인이라고 답했다. 조사 대상국 가운데 포르투갈(60.6%)에 이어 2위였다. OECD 평균(41.6%)보다 15.3%포인트나 높았고, 2018년 조사(40.4%)보다 16.5%포인트 증가했다.

OECD는 2008년부터 5~6년마다 회원국의 유치원, 초·중·고교 교사들의 업무 환경을 폭넓게 조사한 TALIS를 발표한다. 이번 조사는 54국(비회원 22국 포함)의 중학교 교사 12만명, 교장 1만1000명이 참여했다. 한국은 교사 3477명, 교장 173명이 참여했다.

한국 교사들은 다른 국가에 비해 교사 업무의 본질인 ‘수업’ 외에 다른 부분에서 스트레스를 많이 받는 특징이 있었다. 예컨대, ‘학생의 위협과 언어 폭력’이 스트레스 요인이라는 교사는 30.7%로 OECD 평균(17.6%)의 2배에 달했다. 전체 조사 대상국 중 4위였다. 반면 ‘수업 준비를 너무 많이 해야 한다’(18.1%) 등 교육 관련 스트레스를 겪은 교사들은 OECD 평균보다 낮았다. 한국 교사는 행정 업무에 들이는 시간도 1주일 평균 8시간으로 OECD 평균(4.7시간)보다 3.3시간 많은 전체 3위였다.

그래픽=김현국

실제 현장에선 학생에게 위협을 당했다는 교사들이 적지 않다. 경북의 중학교 교사 B씨도 수업 시간에 화장하는 학생을 지적했다가 큰 모욕을 당했다. 학생은 B씨 뒤통수에 대고 욕을 하고, 친구에게 “B선생 죽여버리고 싶다”고 말하기도 했다. 교권보호위원회가 열렸지만 학생은 ‘출석 정지 10일’ 조치를 받는 데 그쳤다.

교직이 단점보다 장점이 많은 직업이라고 생각하는 한국 교사들은 76.9%로 OECD 평균(73.9%)보다 높았다. 하지만 교사가 된 것을 후회한다는 비율은 21%로, 조사 대상국 가운데 1위였다. 교직이 사회적으로 인정받는다고 생각하는 교사는 35.2%로 OECD 평균(21.7%)보다 높았지만, 6년 전보다 32%포인트 급락했다.

교사들은 “서이초 사건 이후에도 변한 게 없다”고 입을 모은다. 2023년 서이초 교사 사망 사건이 논란이 되자 교육부는 모든 민원을 학교가 대응하도록 하겠다고 발표했다. 하지만 현실에선 이런 시스템이 잘 작동하지 않는다. 경남의 한 중학교 교사는 “민원 대응팀이 1차로 전화는 받지만, 결국 내용을 알고 있는 담임 교사에게 민원 해결을 맡기는 경우가 태반”이라고 말했다.

교사 단체들은 교사들이 수업에 집중하도록 민원과 행정 업무를 대폭 줄여줘야 한다고 요구하고 있다. 장승혁 한국교총 대변인은 “‘악성 민원’은 한 건이라도 교권 침해로 보고 강력 처벌할 방안이 필요하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