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 혁신 전문가’로 통하는 마이클 크로(70)교수는 행정학과 교수 출신으로, 미 컬럼비아대 부총장을 거쳐 2002년 미국 애리조나주립대(ASU) 16대 총장에 취임했다. 총장 부임 후 각종 혁신을 단행, 연구비는 1억2300만달러에서 올해 10억달러로, 학생은 5만명에서 20만명으로 늘렸다. 지난해 미국 최고 권위 혁신 분야 상인 ‘에디슨 어워드’를 수상했다./이태경기자

미국 애리조나주립대(ASU)는 지난달 미국 시사 주간지 ‘US뉴스&월드리포트’가 발표한 ‘최고 혁신 대학’ 평가에서 11년 연속 1위에 올랐다. 교수진, 교육과정, 학교 생활 등 항목으로 미국 내 1700개 대학 순위를 매기는 평가에서 MIT(2위), 스탠퍼드대(6위)를 제친 성과 뒤엔 마이클 크로(Michael Crow) 총장의 리더십이 있었다. 2002년 총장 취임 후 23년간 대학을 이끌어온 그는 여러 혁신적 시도를 성공시키며 ASU를 글로벌 수준 대학으로 끌어올렸다. 컴퓨터공학·인류학·경제학 등 전통 학과 69개를 폐지하고, 30개 융합 학과와 단과대를 신설했다. 온라인 과정을 확대해 2002년 5만명이었던 학생 규모를 20만명으로 늘렸다. 2023년엔 전 세계 대학 최초로 생성형 AI(인공지능)를 강의·행정에 도입했다.

최근 국내 기업들과 협력 방안을 논의하기 위해 방한한 크로 총장은 본지 인터뷰에서 “AI 등장 이후 혁신은 선택이 아닌 필수가 됐다. 한국 대학들도 과감한 변화에 나서야 한다”고 말했다. 다음은 크로 총장과의 일문일답.

-11년 연속 대학 혁신 1위를 차지했다. 비결은.

“한국과 달리, 미국은 대학 총장 임기가 긴 편이다. 나는 20년 넘게 총장을 하면서 학과를 혁신적으로 설계할 수 있었다. 인류학과를 다른 전공과 합쳐 ‘인간 진화와 사회 변화’라는 새로운 단과대를 설립하는 식이다. 최근에도 종(種) 다양성 보존을 연구하는 새 단과대를 설립했고, 여기에 들어갈 1억1500만달러(약 1600억원)의 기부금을 모금했다. 이 시도가 통할지 아직 모른다. 하지만 오랫동안 통했던 대학 운영 모델이 당장 내일 폐기될 수도 있는 시대다. 총장은 남들과 다른 새로운 사고방식을 갖춰야 한다.”

-수업 방식도 많이 바꿨는데.

“모든 과목에서 새로운 방법으로 학생들을 가르쳐야 한다. ASU는 2022년 가상공간에서 생물 실험을 할 수 있는 VR(가상현실) 학습 기술을 도입했다. 가상공간에서 실습하면서 대학교 2학년 수준 과정을 배울 수 있다. 온라인에서도 가능하다. 현재 학생 5만명이 이 방법으로 배우고 있다.”

-학과 수십 개를 통폐합하는 큰 수술을 했다. 학내 반발은 어떻게 극복했나.

“무조건 밀어붙이지 않았다. 우선 수없이 토론을 했다. 학과를 없애고 새 단과대를 만들 때 교수들에게 새 학부를 어떻게 구성할지 정하는 권한을 줬다. 변화가 교수 권한 축소나 예산 삭감이 아닌 ‘학생을 위한 변화’라는 점도 숱하게 강조했다. 이전에 시도했던 정책의 성과 데이터 등 실증적 근거도 제시했다.”

미 애리조나주립대 학생이 VR(가상현실) 기기를 쓰고 생물학 수업을 듣고 있다. /애리조나주립대

-40개 넘는 한국 대학이 혁신 비결을 배우러 ASU를 찾았다.

“한국 총장들은 나에게 ‘반대하는 교수들을 어떻게 설득하고, 새로운 학과는 어떻게 만들었느냐’고 많이 묻더라. 한국 대학도 변화, 혁신에 대한 갈증이 큰 것이다. 대학에서 혁신은 이제 필수가 됐다. AI 등 변화에 적응하지 않으면 모두 쓸려 나갈 것이다.”

-한국 대학들이 경쟁력을 높이려면 무엇이 가장 중요할까.

“이재명 정부 출범 이후 ‘서울대 10개 만들기’ 사업이 시작됐다는 소식을 들었다. 현재의 한국 대학 시스템에서는 이런 시도들이 효과가 있을지 장담하기 어렵다. 가장 시급한 것은 한국 대학에는 더 많은 경쟁이 필요하다는 점이다.”

-경쟁이 필요하다는 건 구체적으로 무슨 의미인가.

“한국 대학은 많은 규모의 정부 보조금을 받는다. ASU를 포함해 미국 대학은 정부 보조금에 덜 의존한다. 미국 대학은 정해진 교수 급여 체계도 없다. 교수는 연구 성과에 따라 시장에서의 가치만큼 보수를 받는다. 미국 대학들은 프로 스포츠 팀처럼 치열하다. 오로지 경쟁만을 기반으로 하기 때문이다.

미국의 주립대도 주 정부의 지원을 받지만, 규모가 크지 않다. 올해 ASU 총수입 48억달러(약 6조8000억원) 가운데 주 정부 지원은 9%다. 한국 국립대는 정부 지원 예산 비율이 40~50%에 이른다.

-한국 대학은 인재 유출 문제가 심각하다.

“많은 미국 대학도 고민하는 문제다. 중요한 건 뛰어난 인재들이 활약할 매력적인 기업을 만드는 것이다. 대학을 비롯해 한국 사회 전체가 더 경쟁력을 갖춰야 한다.”

-기업들과 어떻게 협력하고 있나.

“세계 1위 반도체 파운드리(위탁 생산) 기업인 대만 TSMC가 애리조나주에 새 공장을 짓고 있는데, 그곳에서 일할 인력을 육성하는 사업을 함께 진행하고 있다. 이번에 한국에서 LG에너지솔루션, 네이버, 크래프톤 등을 방문했다. LG에너지솔루션은 애리조나주에 수십억 달러 규모 생산 시설을 짓고 있는데, ASU와 인력 양성에서 좋은 파트너가 될 것이다. 네이버와는 AI 분야에서, 게임 업체인 크래프톤과는 온라인 분야에서 학습 효과를 높이는 연구를 할 계획이다.”

☞마이클 크로

‘대학 혁신 전문가’로 통한다. 행정학과 교수 출신으로, 미 컬럼비아대 부총장을 거쳐 2002년 미국 애리조나주립대(ASU) 16대 총장에 취임했다. 총장 부임 후 각종 혁신을 단행, 연구비는 1억2300만달러에서 올해 10억달러로, 학생은 5만명에서 20만명으로 늘렸다. 지난해 미국 최고 권위 혁신 분야 상인 ‘에디슨 어워드’를 수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