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8월 경희대 물리학과를 졸업한 김상옥(25)씨는 학부 졸업 논문을 쓰는 대신 대체 강의를 수강해 졸업했다. 김씨는 “학과 내에서도 논문 제출을 선택하는 학생은 거의 없다”며 “전공 학점까지 챙겨주는 대체 강의를 마다할 이유가 없다”고 말했다.
대학교 학부 과정에서 졸업 논문이 사라지고 있다. 현재 많은 대학 학부에서는 졸업논문이 아예 폐지됐거나 현장 실습, 강의 수강, 자격증 취득 등으로 대체하고 있다. 일부 대학은 국가공인 경제 시험에서 일정 점수를 획득하는 것으로 졸업논문을 대체할 수 있다.
학부생이 졸업논문을 쓰지 않는 현상은 1997년 대학에 학위 수여 방식 자율권이 생기면서 시작됐다. 그러다가 최근 2,3년 사이 다시 졸업논문 제출을 의무화하지 않는 대학이 늘기 시작했다. 졸업논문 제도를 유지하고 있는 기존 대학들도 학생 편의를 이유로 조건을 완화하는 추세다. 취업난이 가중되면서 학부생들은 취업 준비로 정신이 없고, 대학 교수들도 대학원생 지도와 연구에 집중하려는 경향이 강해진 영향이 크다.
한국외대 정치외교학과는 지난 6월 논문 대체 요건에 전공 강의 평점이 4.2점 이상인 학생은 졸업논문을 면제하도록 하는 규정을 추가했다. 이재묵 한국외대 정치외교학과 교수는 “학생들로부터 완화 요구가 꾸준히 있어 왔고, 교수 입장에서도 한 학기에 학생 10여 명의 졸업논문을 지도해야 하니 부담이 컸다”고 학칙 개정 이유를 설명했다.
부산대 토목공학과는 2023년부터 프로젝트형 전공 필수 강의를 수강 후 나온 결과 보고서를 졸업논문으로 취급하도록 학칙을 변경하며 실질적으로 졸업논문을 폐지했다. 취업 준비에 매진해야 하는 졸업 예정자들의 부담을 덜어주기 위해서다.
본지 확인 결과 서울대·연세대·고려대·서강대·성균관대·한양대·중앙대·경희대·서울시립대·이화여대 등 서울 주요 10개 대학 경제학과의 경우 졸업논문이 필수인 곳은 서울대, 중앙대, 이화여대 3곳뿐이었다. 나머지 7곳은 졸업논문 제도가 없거나 대체 요건이 마련돼 있다. 이들 10개 대학 중 물리학과에서 졸업논문 제출이 필수인 곳은 서울대, 성균관대, 한양대 3곳 뿐이다.
다만 일각에서는 졸업논문이 학부 교육의 마침표 역할을 해왔던 만큼 계속 유지돼야 한다는 의견도 나온다. 이성수 숭실대 전자정보공학부 교수는 “학부 커리큘럼은 대부분 지식, 정보를 주입받는 과정”이라며 “졸업논문은 스스로 문제를 설정하고 해결 방안을 직접 고민해 본다는 차원에서 한 번쯤 거칠만한 의미가 있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