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세대 경영학과 4학년 이모(24)씨는 지난 1학기 졸업에 필요한 학점을 전부 채워 지난달 졸업할 수 있었지만, 한 학기 ‘졸업 유예’를 신청했다. 지난달부터 기업 15곳에 지원서를 냈는데, 아직 발표는 안 났지만 올해 안으로 합격하기 힘들 것 같아서다. 기업에서 1~2명씩 뽑는 자리에 1000명 넘게 지원한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이씨는 “취업까지 적어도 1년은 걸릴 게 뻔한데, 면접관이 졸업하고 뭐했는지 물어보면 ‘취업 준비했다’고 답할 순 없어서 졸업을 유예했다”고 했다. 이씨는 하루 종일 자기소개서를 쓰고, 경제 분야 기사를 읽으면서 취업 준비에 매달리고 있다.

그래픽=양인성

이씨처럼 졸업을 미루고 대학에 남아있는 ‘졸업유예생’들이 최근 급증하는 추세로 나타났다. 취업 시장이 얼어붙은 상황에서 학교에 적을 걸어둔 채 취업에 도전하려는 학생들이 늘어난 영향으로 분석된다.

22일 진선미 더불어민주당 의원실이 교육부에서 받은 자료에 따르면, 지방 거점 국립대 9곳과 서울 주요 사립대 6곳의 올해 졸업 유예생은 지난 17일 기준 총 9857명이었다. 2022년 6215명에서 3년 만에 59% 늘었다. ‘졸업 유예 제도’는 학점 등 졸업에 필요한 조건을 다 갖춘 학생들이 졸업을 미룰 수 있게 허용하는 제도로, 정식 명칭은 ‘학사 학위 취득 유예제’다. 대학이 졸업 유예를 하는 학생들에게 수업료를 받는 등의 문제가 발생하자, 국회는 졸업 유예생에게 학점 이수를 의무화해선 안 된다는 내용의 고등교육법 개정안을 2018년 통과시켰다. 이후 대학마다 운영 방식은 조금씩 다르지만, 학생이 수업을 듣지 않을 경우 대체로 시설 사용료 정도만 받는다.

올해 서울 주요 사립대 가운데 한양대 졸업 유예생이 1739명으로 가장 많았다. 그 다음은 중앙대(1437명), 이화여대(1227명), 서강대(812명), 고려대(637명) 등이었다. 연세대는 1학기만 559명이었다. 거점 국립대 중에선 경북대가 921명으로 가장 많았다. 경북대는 3년 새 졸업 유예생이 두 배로 뛰었다. 그 밖에 전남대(642명), 부산대(589명) 등도 졸업 유예생이 많았다. 거점 국립대 8곳(제주대 제외)이 학생들에게 시설 사용료 등으로 받은 졸업 유예금은 올해 총 4억7163만원이었다.

졸업 유예생들이 최근 들어 급증한 것은 ‘취업 한파’가 심각하기 때문으로 분석된다. 한국경영자총협회가 지난 3월 발표한 ‘2025년 신규 채용 실태조사’에 따르면, 전국 100인 이상 기업 500곳 중 60.8%만 올해 신규 채용 계획이 있다고 응답했다. 신입사원 정기 공채를 폐지하고 수시 채용으로 전환한 기업이 많은 것도 대학생들이 취업난을 겪는 큰 이유다.

강성진 고려대 경제학과 교수는 “한창 일해야 할 젊은 인재들이 졸업을 유예하고 취업 준비에 많은 시간을 쏟는 건 사회적으로 큰 낭비”라며 “청년 취업난을 해결하기 위한 국가 차원의 대책 마련이 시급하다”고 했다.

진선미 의원은 “취업이 어려워 어쩔 수 없이 졸업을 미루는 이들이 계속해서 늘어나는 만큼, 대학들이 더 적극적으로 졸업 유예생들의 취업 지원에 나서야 한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