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한 사립대 4학년 이모(22)씨는 이번 학기 전공 수업의 팀프로젝트(조별 과제)만 생각하면 한숨이 나온다. 베트남인과 영국인 유학생 2명이 한국어를 할 줄 모르는 탓에, 나머지 한국인 학생들이 이들 몫까지 해야 하기 때문이다. 이씨는 “온라인으로 과제 주제를 정할 때 유학생들이 전혀 참여를 안 하길래 ‘왜 그러느냐?’고 물어봤더니, 둘 다 간단한 한국말조차 알아듣지 못했다”며 “이들이 어떻게 입학한 건지 모르겠다”고 했다.

그래픽=김성규

국내 대학(전문대 포함)이나 대학원 학위 과정을 밟고 있는 외국인 유학생 가운데 학업을 따라가는 데 필요한 기본 언어 능력(한국어 또는 영어)을 갖춘 학생이 절반도 되지 않는 것으로 나타났다. 특히 한국어의 경우, 유학생의 약 60% 이상이 신문 기사 내용도 제대로 이해 못 하는 수준인 것으로 나타났다.

19일 교육부가 진선미 더불어민주당 의원실에 제출한 자료에 따르면, 지난해 국내 대학 및 대학원에 다니는 외국인 유학생 14만5757명(학위 과정자 기준) 가운데 한국어능력시험인 ‘토픽’ 4~6급(전문대는 3~6급)을 보유한 학생은 34%(5만283명)에 불과했다. 토픽은 1급이 최하위이고 최상위인 6급으로 올라갈수록 한국어 실력이 높은 것으로 평가된다. 평이한 내용의 신문 기사를 읽고 이해할 수 있는 한국어 실력이 토픽 4급인데, 이 수준 이상의 유학생이 10명 중 3~4명밖에 안 되는 셈이다. 그렇다고 영어를 잘하는 것도 아니다. 유학생들은 토픽 대신 영어 능력 시험인 ‘IBT 토플’ 성적 등을 제출할 수 있는데, 만점이 120점인 IBT 토플에서 ‘59점 이상’에 해당되는 영어 점수를 받은 유학생은 전체의 11%(1만6423명)로 더 적었다. IBT 토플 59점은 대략 ‘토익 500점’ 수준에 해당된다. 외국인 유학생 중 한국어 또는 영어로 국내 대학·대학원 수업을 따라가기 힘든 학생이 전체의 절반이 넘는 8만명에 육박하는 셈이다.

특히 지방 소재 대학 또는 대학원에 다니는 외국인 유학생들의 언어 능력은 더 낮은 것으로 나타났다. 지난해 토픽 4급 이상을 받은 유학생 5만283명 중 2만7079명(54%)이 서울에 몰려 있었다. 반면 충북에선 학위 과정 외국인 유학생(3941명) 중 약 22%만 신문 기사를 읽고 이해할 수 있는 정도의 한국어 실력(토픽 4급 이상)을 갖췄다. 전남(3254명) 역시 토픽 4급 이상 또는 영어 성적이 있는 유학생이 21%, 경남(1923명)에서도 34% 수준에 불과했다.

현재 교육부는 외국인 유학생이 국내 대학에 입학할 때 토픽 3급(전문대는 2급) 이상, 졸업 전까지 토픽 4급(전문대는 3급) 이상 취득할 것을 권고하고 있다. 하지만 의무 사항이 아니기 때문에 대학들이 한국어 실력을 입학 지원 조건으로 걸지 않더라도 문제가 되지 않는다. 교육부 관계자는 “외국인 유학생 선발 기준과 조건은 대학이 자율적으로 정하는 부분”이라면서 “다만 한국어나 영어가 안 되는 유학생을 과도하게 유치하는 대학에는 교육부와 법무부가 함께 유학생 비자 발급을 제한하고 있다”고 했다.

그래픽=김성규

​그럼에도 대학들은 학령 인구 감소와 대학 등록금 동결 등으로 재정적 어려움이 커지자, 외국인 유학생을 적극 유치하고 있다. 2014년 5만3063명이던 학위 과정 외국인 유학생은 10년 새 3배 가까이로 증가했다. 이 과정에서 수업을 따라가지 못하는 유학생들로 인해 학교 안에서 학생들 간 크고 작은 갈등도 늘어났다고 한다. 서울의 한 사립대 교수는 “취업을 위해 성적을 매우 중요하게 생각하는 한국인 학생들이 노골적으로 외국인 유학생들과 함께 과제하는 것을 꺼리는 상황이 많이 생겼다”며 “이 때문에 결국 팀 프로젝트를 없애고 개별 과제와 발표로만 수업을 진행한다”고 했다. 진선미 의원은 “외국인 유학생들이 제대로 된 언어 능력을 갖추고 학업에 임할 수 있도록 기준을 강화할 필요가 있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