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26일 오후 인천 부평구의 한 재수 학원. 복도엔 ‘내신반전/대학역전’이란 문구가 붙어 있었다. 한 강의실에는 10여 명이 국어 수업을 듣고 있었다. 사복을 입었지만, 모두 올해 고등학교 1학년을 다니다가 자퇴한 학생들이다. 이들은 매일 아침 이곳에 나와 고졸 검정고시와 수능 준비를 한다. 한 학생은 “아침에 등원하고, 야간 자율 학습까지 일정이 학교랑 거의 비슷한데, 대부분 수능 공부에 집중할 수 있다는 게 학원의 장점”이라고 말했다. 이 학원의 전체 학생 80명 가운데 ‘고1 자퇴생’ 비율은 60%를 넘었다.

올해 전국 모든 고등학교 1학년을 대상으로 ‘고교학점제’가 본격 시행되면서 일찌감치 학교를 떠나는 ‘고1 자퇴생’이 늘고 있다. 고교학점제는 학생이 원하는 과목을 선택하고, 정해진 학점을 이수해 졸업하는 제도다. 학생들의 내신 부담을 덜어줘 원하는 과목을 들을 수 있도록 내신 평가 방식은 기존 ‘9등급제’에서 ‘5등급제’로 바뀌었다.

그래픽=김성규

문제는 등급별 점수 폭이 넓어지면서 한 과목이라도 2등급이 나오면 상위권 대학에 가기가 더 힘들어졌다는 점이다. 과거 상위 4%가 1등급이었지만, 이젠 10%가 1등급이기 때문에 “1등급 못 받으면 인생망(했다)”이라는 말이 학생들 사이에 퍼져있다. 한 재수 학원 관계자는 “최근엔 심지어 자퇴 절차가 복잡하다는 이유로 중학교 졸업 직후 고등학교에 입학하지 않고 곧장 재수 학원을 찾는 학부모 문의도 늘고 있다”고 말했다.

지난 7월 수도권 한 일반고를 1학년 때 자퇴한 윤모(16)양은 “수학 시험 서술형에서 5점이 깎여 아깝게 2등급을 받았는데, 2등급이 있으면 최상위권 대학은 아예 포기해야 해서 자퇴했다”며 “학원을 다녀보니 잘한 선택이었다고 생각한다”고 했다.

고교 자퇴생 숫자는 매년 증가하고 있는데, 고1 자퇴생마저 가세해 당분간 이런 추세는 더 심해질 전망이다. 서울·경기 지역 고졸 검정고시 응시생은 2022년 1만7233명에서 올해 2만2797명으로 3년 새 30% 급증(종로학원)했다. 올해 고3이 치르는 2026학년도 수능 응시생(55만4174명) 가운데 검정고시(기타 포함) 출신 수험생은 전년보다 11.2% 늘어난 2만2355명으로 1995학년도 이후 가장 많은 것으로 나타났다.

특히 입시 경쟁이 치열한 서울 강남 등 지역에서는 ‘고1 자퇴생’이 더 늘어나는 추세다. 서울의 한 자사고 교장은 “올 들어 내신 등으로 학교를 그만두고 수능에 올인 하려는 학생들이 늘어나는 경향이 강해졌고 특히 강남 지역이 심하다”며 “자퇴 사례가 늘면서 ‘나도 학교 관두고 수능만 준비해야 하는 건가’라며 심적으로 불안해하는 학생들도 늘고 있다”고 했다. ‘내신과 수능, 두 마리 토끼를 잡느니, 자퇴하고 수능에 올인하자’는 선택을 하게 된다는 것이다. 이런 학생들을 부르는 ‘정시 파이터’라는 말도 생겼다.

이 때문에 높은 입학 경쟁률을 자랑하던 서울 강남의 일부 자사고에선 올해 미달 사태가 발생하기도 했다. 내신 경쟁에서 불리하기 때문에 상위권 성적의 학생들이 자사고를 기피한 것이다. 휘문고는 올해 신입생 모집 경쟁률이 0.67대1, 세화고는 0.91대1을 보였다. 이들 학교는 올 초 추가 모집에서도 정원을 채우지 못했다.

이런 문제들은 문재인 정부가 ‘1호 교육 공약’으로 고교학점제를 추진할 때부터 제기됐었다. 학생이 진로에 따라 원하는 과목을 듣게 하는 고교학점제와 치열한 상대평가 내신 제도, 그리고 수능이라는 제도는 엇박자이기 때문에 그대로 유지하면 부작용이 발생할 것이란 점이었다. 박남기 광주교대 명예교수는 “수능 성적만으로 원하는 학교에 갈 수 있는 현행 대입 시스템이 유지되는 한 성적 때문에 자퇴하는 학생들은 계속 나올 것”이라며 “중장기적으로 교육 정책 틀을 새로 짜야 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