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교사노조가 지난 3일 국회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고등학교 3학년 학생의 운전면허 취득에 1인당 30만원을 지원하는 경기도교육청 사업 중단을 촉구하고 있다./경기교사노조

경기교육청은 최근 고등학교 3학년 학생들에게 30만원씩 주는 사업을 도입했다. 가정 형편에 상관없이 경기도 지역 전체 고3 12만4000명이 대상이다. 운전면허증이나 각종 자격증을 따는 데 쓸 수 있다. 이 사업에 들어가는 예산은 총 372억원. 교육청 사전 설문 조사에서 학생 82%가 “운전면허 따는 데 쓰겠다”고 밝힌 만큼, 예산 대부분이 운전면허 학원에 지급될 예정이다.

경기교육청은 “학생 역량 개발 사업”이라고 했지만, 지역 교육계에선 “내년 교육감 선거를 의식한 현금 살포”라는 비판이 거세다. 경기교사노조는 최근 기자회견을 열고 “유권자인 만 18세에게 지원하는 이유가 무엇이냐. 교육 본질과 관계없는 혈세 낭비”라고 밝혔다. 올해 고3(2007년생)들은 각자 생일이 지나면 만 18세가 되어 내년 지방선거 때 치러지는 교육감 선거에도 투표할 수 있다.

일러스트=이철원

광주교육청은 내년부터 전체 중고교생에게 1인당 67만~97만원의 바우처를 주기로 했다. 서점이나 문구점, 독서실 등에서 쓸 수 있다. 작년과 올해는 저소득층, 다문화 가정, 2인 이상 다자녀 가정 자녀에게 줬다. 그런데 내년엔 다자녀 등 기준도 다 없애고 전체 중고생에게 주기로 했다. 사업 예산은 작년 203억원, 올해 414억원, 내년 600억원으로 치솟고 있다. 광주교육청 측은 “이정선 교육감의 공약 사업으로, 학부모 교육비 부담을 줄이려는 취지”라고 말했다.

전국 시·도교육청들의 현금 지원 사업 규모가 매년 늘어나는 추세다. 국민의힘 이종욱 의원이 전국 시·도교육청 17곳에서 받은 자료에 따르면, 올해 전국 교육청의 현금성 지원 예산 규모는 총 5991억원으로 2021년(2800억원)보다 2배로 늘었다. 5년간 전국 교육청이 지급한 현금을 다 합하면 2조2208억원에 달한다.

그래픽=김의균

◇내년 선거 앞둔 교육감들 현금 살포… “세금 수백억씩 써”

교육청은 2022년 지방선거를 앞두고 현금성 복지 제도를 앞다퉈 도입했다. 코로나 ‘재난지원금’ 명목으로 수천억 원을 뿌린 게 대표적이다. 학생과 교사들에게 태블릿PC와 노트북을 나눠 주기도 했다.

서울교육청은 조희연 교육감 시절이던 2021년 중·고교 신입생에게 입학 지원금 30만원을 주기 시작했고, 이듬해 초등학생(20만원), 2023년 교육 당국의 인가를 받지 않은 대안 학교 신입생에게 차례로 확대했다. 올해 정근식 교육감은 다른 시·도에 있는 대안 학교에 다니는 서울 주민에게도 주기로 했다.

이런 현금 복지는 교육감들의 선거 공약을 이행하기 위해 집행되는 경우가 많다. 예를 들어, 인천교육청은 2022년부터 고3 수험생에게 수능 원서 접수비, 수시 원서비, 자격증 응시 수수료 등으로 1인당 최대 4만7000원을 지원한다. 도성훈 교육감의 선거 공약이었다. 매년 예산이 10억~13억원씩 든다.

지원받은 현금을 오남용하는 사례도 나오고 있다. 최근 광주광역시에선 바우처를 받은 학생들이 문구점에서 이어폰 등 고가의 전자 기기를 산 뒤 중고 거래 플랫폼에서 되파는 경우가 온라인 커뮤니티에서 논란이 됐다. 광주교육청은 ‘오남용 신고 센터’를 열고 신고받고 있지만, 모든 중고 거래를 적발하긴 현실적으로 어려운 상황이다. 광주교육청 관계자는 “교육청 직원 등으로 구성된 ‘모니터링단’이 직접 문구점을 돌면서 학생들에게 전자 기기를 팔 땐 포장지를 뜯은 뒤 주라고 부탁하고 있다”고 말했다. 중고 거래에서 포장을 뜯지 않은 제품이 제값을 받는다는 점에 착안한 대책이다. 교육계에선 “현금 뿌리느라 세금 수백억 원을 낭비하고, 이젠 악용 막는다고 행정력까지 낭비하는 꼴이 한심하다”는 비판이 나오고 있다.

이렇게 교육청들이 현금성 복지 정책을 확대하는 것은 학생은 갈수록 줄어드는 반면 예산은 늘어나고 있기 때문이다. 전국 초·중·고교 학생은 2015년 609만명에서 올해 502만명으로 18% 줄었다. 그런데 같은 기간 교육청 예산인 지방교육재정교부금(교부금)은 39조4000억원에서 올해 70조3000억원으로 두 배 가까이로 급증했다. 학생 수와 상관없이 매년 ‘내국세의 20.79%’를 자동으로 교부금으로 배정하는 시스템 때문이다. 이렇게 늘어난 예산을 직선제 교육감들이 선거 공약으로 만든 사업에 쓰고 있는 셈이다. 박주호 한양대 교육학과 교수는 “교육감은 선거를 통해 뽑히는 자리다 보니 겉으론 ‘교부금이 부족하다’고 말하면서도 재선을 위해 돈을 계속 쓰는 문제가 발생하고 있다”고 했다.

앞으로도 교부금은 계속 늘어날 전망이다. 정부가 최근 국회에 제출한 ‘2025~2029년 국가 재정 운용 계획’에 따르면, 교부금은 내년 71조7000억원, 2027년 77조1000억원, 2028년 81조4000억원, 2029년 85조8000억원으로 늘어난다.

교육부는 예산 낭비 지적이 빗발치자 ‘현금 복지’를 남발하는 교육청은 추후 10억원씩 예산을 삭감하는 ‘페널티’를 주겠다고 작년 발표했다. 이를 2027년부터 적용한다. 하지만 한번 주기 시작한 복지는 줄이기 어렵기 때문에 교육청들의 현금 지원은 계속될 수밖에 없다는 의견이 많다.

시·도 교육청의 이런 상황은 16년간 이어진 정부의 ‘등록금 동결 정책’ 때문에 재정난에 시달리는 대학들과 대조적이다. 국내총생산(GDP) 대비 정부의 공교육비 비율을 따져보니 초·중등(4%)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평균(3%)보다 높지만, 대학(0.6%)은 OECD 평균(0.9%)보다 낮다. 대학에 대한 정부 투자가 그만큼 부족하다는 뜻이다.

교육계에선 교부금 제도 자체를 뜯어고쳐야 한다는 의견이 거세다. 김상봉 한성대 경제학과 교수는 “교육청 곳간은 여유로운데 인공지능(AI) 등 신기술 개발에 앞장서야 하는 대학들은 돈이 없는 상황”이라며 “불균형을 개선하고 국가 미래 전략에 알맞게 예산을 쓸 수 있도록 교육교부금에 연동하는 내국세 비율(20.79%) 개편을 해야 한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