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북 상주시에 있는 상주공업고등학교는 특성화고 사이에서 ‘공무원 사관학교’로 통한다. 2012년만 해도 고3 학생 중 9급 공무원 합격자는 단 2명에 불과했지만, 지난해에는 고3 학생 168명 중 45명이 합격했다. 학교 측에 따르면, 7년 연속 전국 특성화고 중 ‘9급 공무원 합격자’ 1위를 이어가고 있다고 한다.

그래픽=이철원

기자가 지난 8일 이 학교를 찾았을 때 미래융복합관 교실에선 최창훈 교사의 토목 강의가 한창이었다. 교실 안에 있던 3학년 토목과 학생 20여 명은 하나라도 놓치지 않으려고 교과서에 빼곡히 필기하고 있었다. 바로 옆 교실에선 학생 5~6명이 한 조를 이뤄 공무원 필기 시험 합격 이후를 대비한 ‘모의 면접’이 진행 중이었다. 교사들은 인사법부터 앉는 자세, 발성법까지 가르쳤다. “면접관이 공무원 시험에 지원한 이유를 물을 땐 반드시 너희의 끈기를 보여줄 수 있는 사례를 들면서 답해야 한다”며 ‘모범 답안’도 제시했다.

이처럼 학교가 도맡아 학생들의 공무원 시험 준비를 책임지는 상주공고의 변화는 2012년부터 시작됐다. 당시 이명박 정부가 ‘고졸자 기회 확대’를 위해 ‘기술직 9급 공무원’ 시험을 도입한 뒤, 각 지자체가 특성화고 출신을 대상으로 토목·기계·건축 직렬 시험을 진행한 것이 계기가 됐다. 통상 경쟁률은 5~6대1로 다른 공무원 시험보다 낮은 편이었는데, 상주공고는 바로 이 전형에 주목했다. 이광현 부장 교사는 “특성화고 취지에도 맞았고, 공무원 시험 대비로 학교를 차별화할 수 있는 기회였다”고 했다.

“모르는 문제 알려주세요” 지난 8일 경북 상주시 상주공업고등학교 학생들이 공무원 시험 도전을 위해 ‘공무원반’ 수업을 듣는 모습. 공무원 합격생이 많은 상주공고는 ‘공무원 사관학교’로 불린다. /신현종 기자

초기에는 시행착오도 많았다. 다른 일반고처럼 학생들을 밤늦게까지 남겨 무작정 자습을 시켜 봤지만, 학생들은 지루해했다. 이에 교사들은 방과 후 보충 수업을 2시간씩 편성해 돌아가며 수업을 하기로 했다. 그리고 밤 10시까지 남아 자습 감독을 하고, 학생 질문을 받았다. “시험 실전 감각을 익히고 싶다”는 학생들 요청에, 학교는 매달 1회 모의고사 시스템도 도입했다. 문항, 시간이 모두 실제 시험과 동일하다. 교사들이 매달 문제를 만들고, 시험 감독을 하는 것이다. 3학년 심현우(18)군은 “입학할 때만 해도 ‘과연 내가 할 수 있을까’ 걱정이 많았다”며 “그런데 문제 풀이를 하다 궁금한 건 언제든 선생님께 물어볼 수 있고, 모의고사와 면접 대비도 하니 지금은 ‘합격할 수 있다’는 자신감이 커졌다”고 했다.

이광현 부장 교사는 “초기 3년의 시스템 정착 시기를 거쳐 2015년부터 본격적으로 성과가 나오기 시작했고, 지금은 대입 대신 공무원 진출을 생각하는 경북·대구 중학생들이 모여드는 ‘선순환’ 단계에 접어들었다”고 했다. 현재는 신입생의 절반 정도가 상주시 중학교 출신. 나머지는 대구·구미 등 타 지역 학생이다. 구미 출신인 3학년 김정우(18)군은 중학교 시절 학급(20명)에서 성적으로 10~12등 정도였다. 김군은 “점수에 맞춰 대학을 가기보단 고교 졸업 후 바로 공직에서 일하는 게 낫겠다고 생각했다”며 “부모님도 처음엔 ‘공고를 가도 괜찮겠느냐’고 했지만 ‘정말 공부를 열심히 하는 학교’라고 부모님을 설득해 진학했다”고 했다.

이처럼 학교가 학생 성적과 지원 자격, 희망 등을 종합해 경북·경남·대구·서울 등 지자체별로 여는 시험 공고에 원서를 내게 하니 매년 공무원 준비반(전체 50명 미만) 학생 중 1~2명을 제외하곤 대부분이 합격하고 있다. 학생들이 다들 열심히 공부하는 분위기가 자리 잡히자, 공무원 시험뿐 아니라 다른 영역으로의 취업·합격자도 늘어나는 추세다. 지난해에는 군 부사관에 21명, 공기업에 4명이 합격했다. 해외 현장직(호주)으로 간 학생도 3명이었다.

류희수 상주공고 교장은 “‘불이 꺼지지 않는 학교’라는 별명이 붙었을 정도로 여느 일반고보다 우수한 면학 분위기를 갖추게 된 건 교사의 헌신 덕이 가장 크다”며 “학교가 제 몫을 하고 학생이 시간을 들인다면 성과로 이어진다는 ‘공부의 진리’는 지금도 유효하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