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년 1학기부터 초등·중·고등학교 학생들의 수업 중 휴대폰 사용을 금지하는 법안이 국회 본회의를 통과했다. ‘스마트폰 중독’으로 학력 저하, 정신 건강 문제 등이 심각해지자 학교에서만이라도 디지털 기기 사용을 못 하도록 법적으로 막은 것이다.
국회는 27일 본회의를 열고 이 같은 내용을 담은 초·중등교육법 개정안을 통과시켰다. 개정안에 따르면 초중고 학생은 수업 중 스마트폰뿐 아니라 태블릿 PC 등 모든 디지털 기기를 사용해서는 안 된다. 교육 목적이나 긴급 상황, 특수교육 대상자에게 필요한 경우를 제외하곤 사용이 금지된다. 해당 개정안은 내년 3월 1학기부터 적용된다.
현재 전국의 학교는 교육부가 2023년 9월 도입한 ‘생활지도 고시’에 따라 수업 중 스마트폰을 금지하고 있다. 하지만 상대적으로 구속력이 약한 행정 고시이기 때문에 상당수 학교에서 학생들의 스마트폰 사용을 제지하기 어려운 한계가 있었다. 이에 따라 아예 법으로 수업 중 디지털 기기 사용을 금지하는 규정을 마련한 것이다. 어길 경우 처벌 규정은 없다. 학교별로 학칙에 따라 어긴 학생에게는 주의, 상담 등 생활지도를 할 것으로 보인다.
이번 개정안은 또 수업 중이 아니더라도 학교장과 교사가 학생들의 학습권 보호, 교사의 교육 활동 보장을 위해 필요한 경우에는 학생들의 스마트폰 사용과 소지를 제한할 수 있도록 했다. 제한 기준과 구체적 방식은 학교별 학칙으로 정한다. 예컨대, 스마트폰을 아예 학교에 가져올 수 없게 금지할지, 수업 전 일괄 수거해 하교 때 돌려줄지 등을 학교별로 정하라는 것이다.
수업 중 휴대폰 사용을 법으로 제한하게 된 것은 최근 청소년들의 스마트폰 중독 문제가 매우 심각해지고 있기 때문이다. 여성가족부의 ‘2025년 청소년 미디어 이용 습관 진단 조사’에 따르면, 스마트폰 사용을 스스로 자제하지 못하는 ‘스마트폰 과의존 위험군’ 청소년(초4·중1·고1)이 21만3243명에 달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스마트폰 과의존은 스마트폰을 과도하게 이용해 일상생활에 지장이 생기는 상태를 가리킨다. 의학계에선 스마트폰 의존이 심할 경우 수면 부족과 우울, 집중력 저하 등 문제가 생길 수 있다고 경고한다. 한 중학교 교사는 “수업 중에 ‘몰폰(몰래 스마트폰을 사용함)’을 하는 학생 때문에 교사는 교권을, 다른 학생들은 학습권을 침해당하는 일이 부지기수”라고 말했다.
해외에서도 학교 내 스마트폰 사용을 강력하게 금지하는 추세다. 미국 캘리포니아주, 텍사스주 등에서는 최근 들어 수업 중 스마트폰뿐 아니라 무선 이어폰, 스마트워치 등 디지털 기기 사용을 금지하는 ‘폰 프리(phone free)’ 법을 도입했다. 영국, 프랑스, 호주에서도 일찌감치 학교 내 스마트폰 사용을 금지하고 있다.
청소년들의 디지털 기기 사용에 대한 사회 인식도 바뀌고 있다. 국가인권위원회는 지난 2014년 학교에서 학칙으로 학생 휴대전화를 수거하는 행위가 학생들에 대한 인권 침해라고 의견을 냈다. 하지만 10년 만인 지난해 10월엔 “학생 휴대전화 사용과 관련해 사이버 폭력 등 다양한 문제가 나타나 더는 인권 침해로 단정할 수 없다”며 입장을 바꾼 바 있다.
이날 국회를 통과한 개정안은 국민의힘 조정훈·서명옥·이인선 의원 등이 발의한 초·중등교육법 개정안 3건을 하나로 통합한 법안이다. 조 의원은 이날 본회의 통과 후 페이스북에 올린 글에서 “이 법은 교실에서 친구들과의 대화, 작은 농담과 웃음, 아이들의 집중과 휴식 같은 가장 소중한 것을 지키자는 약속”이라며 “스마트폰을 빼앗으려는 것이 아니라, 아이들의 시간과 삶을 돌려주려는 것”이라고 취지를 설명했다. 이어 “학교라는 공간만큼은 알고리즘의 유혹과 과몰입의 파도에서 아이들을 잠시 떼어 놓자는 것”이라면서 “아이들이 친구들, 그리고 선생님과 쌓는 시간으로 성장할 수 있도록 최소한의 질서를 세우는 일. 지금은 학생들이 조금 실망하더라도, 사회가 해야만 하는 책임이라고 믿는다”고 밝혔다.
교사 단체도 환영하는 입장문을 냈다. 한국교총은 이날 성명을 내고 “그간 잘못된 휴대전화·스마트 기기 사용으로 인해 학생들의 스마트폰 과의존성과 중독성, 학습 저하, 여타 학생들의 수업권과 교사의 교권 침해가 심각했다는 점에서 이를 개선하는 전환점이 되길 기대한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