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제강점기에 태어난 10대들에게 ‘해방 조국’은 어떤 모습이었을까. 본지는 광복 80주년을 맞아 1946년부터 1950년 사이 발간된 학교 교지 18권을 통해 80년 전 ‘해방일지’를 3회에 걸쳐 소개한다. 그들은 어떤 나라를 꿈꿨고, 그 염원은 지금 얼마나 이뤄졌나.
1945년 8월, 기세등등하던 일본이 연합군을 이끄는 미국의 원자 폭탄을 맞고 항복하는 모습은 당시 청년들에게 큰 자극을 줬다. 첨단 기술의 위력을 절감한 학생들은 해방 후 과학 공부로 눈을 돌렸다. 전국에 ‘과학 열풍’이 분 것이다. 약소국 조선이 과학기술로 무장한 외세의 침략에 당할 수밖에 없었던 과거를 반성하며 ‘과학 조선을 이루자’고 다짐했다.
개성 송도중(현 인천 송도중·송도고) 3학년 허배군은 1947년 교지에 ‘과학을 배우자’는 글을 썼다. “우리 조선을 돌아볼 때 36년간 나라를 빼앗기고, 보지 못하고 듣지 못하고 말 못하는 반신불수였다. 해방이 되고 공업·과학 방면을 볼 때 빈약한 점이 아직도 많다. 이 빈약한 우리 나라의 과학을 어찌 등한시하겠나. 어떤 물건, 어떠한 기계를 보고 의문을 일으키며 연구를 하고 그 근본을 탐구하는 과학적 정신을 배양하자! 장래 조선의 과학을 걸머지고 나아갈 훌륭한 세계적 과학자가 되자! 제2의 에디손(에디슨)·아인슈타잉(아인슈타인)… 이런 과학계의 거성(巨星)이 우리 학도 가운데서 나타나기를 기대한다.”
◇“과학 배워 ‘공업조선’ 건설”
경복중(현 경복고) 졸업(21회) 후 서울대 공대에 진학한 황종흘군은 이듬해(1946년) 모교의 광복 특집호 교지에 ‘장래의 엔지니어에게’라는 글을 기고했다. “여러분은 건국의 톱니바퀴가 되고자 진리 탐구에 밤낮을 가리지 않고 용왕매진(거리낌 없이 나아감)하고 있는 줄로 믿는다. 이번 세계 대전에서 연합군이 승리를 거둔 것도 과학의 힘이 아니었던가. 우리도 조국을 과학 문명의 견고한 토대 위에 세우고 세계 문명국의 일원으로 국제 무대에 등장시켜야 한다. 진실한 ’엔지니어’로서 웅대한 공업 조선을 건설해 세계 문명에 공헌하고자 한다면 반드시 공대의 문을 힘차게 두드려라.”
과학 입국, 기술 자립을 이루기 위해선 ‘침략국’인 일본에서도 배워야 한다는 자기반성의 목소리도 나왔다. 송도중 3학년 김동환군은 1947년 ‘과학론’에서 “현대 국가 건설에 필요한 과학, 특히 자연과학 분야에서 우리 조선 과학이 비록 패전국이지만 거의 세계 수준에 도달한 일본과 어깨를 나란히 하려면 적어도 25년 내외가 걸린다고 한다. 일본 중학생들이 ‘다음 세기 노벨 과학상은 우리의 손으로’ ‘과학의 열등이 패전의 원인’이라는 슬로건을 앞세우며 진군하는 것을 보고, 나는 ‘조선의 중학생들이여! 과학을 배우자’고 말하고 싶다. 조선이 경제적 독립을 획득하려면 제일 필요한 것은 과학 지식이다.”
광복 후 이 땅엔 변변한 연구소도, 과학자도 없었다. 그래도 과학을 배우려는 학생들의 패기와 열정은 남달랐다. 중앙중(현 중앙중·중앙고) 유종국군은 1950년 ‘장래의 항공 발전과 로켓’에서 당시 국내엔 생소했던 우주 산업을 일으키자고 주장했다. “지금 세계 각국에서는 로켓 연구에 열중하고 있다. 로켓 실용화의 첫 단계라고 할 수 있는 제트 엔진이 이미 실용화되고 있다. 그런데 우리 대한의 항공 실정은 암흑 상태다. 악독한 왜놈들의 압박하에 36년이라는 긴 세월을 암흑 속에서 신음했기 때문에 오늘날과 같은 비참한 현실을 빚은 것이다. 세계 선진국과 비교하면 수십 년, 수백 년이 뒤떨어진 현상이니 우리의 기술을 단기간 내에 세계 수준으로 이끌어 올리려면 확고한 신념 밑에서 거족적(擧族的)으로 항공 건설 사업을 전개하지 않으면 안 될 것이다.”
1949년 조선전기공업중학교(폐교) 교지엔 ‘정전시에도 들을 수 있는 수신기 몇 가지’라는 글이 실렸다. 당시 발전 시설 등 산업 기반에서 우위에 있던 북한이 1948년 5월 남한에 대한 전력 공급을 일방적으로 중단한 사건이 터지자 하루빨리 기술력을 키워 이런 열세를 극복하자는 주장이 담겼다. “정전 때문에 벙어리가 된 라디오를 그냥 놔둘 것인가”라는 것이다. 교지에 함께 실린 다른 글에선 과학 연구의 중요성을 역설했다. “바야흐로 세계는 과학 시대로 전환하고 있다. 인류는 모든 것을 과학에서 얻고 과학으로 처리하게 됐다. 이제 세상 온갖 사물이 부쩍부쩍 진보해 가는 이때 세계 각국은 앞다투어 과학 조류를 따라 헤엄치는데 어찌 우리만 웅덩이에서 헤엄치고 있을 수가 있으랴.”
◇“불처럼 일어나는 학도의 향학열”
광복 이후 나라 전체가 가난했던 시절, 그렇기에 배움에 대한 열망은 컸다. 1949년 배재중(현 배재중·배재고) 조동빈군은 당시 학생들의 학구열에 대해 “종전 후 배움에 굶주렸던 학도의 향학열은 불길이 일 듯 일어났다. 우리들의 탐구심이야말로 선진국들의 수준을 좇으려 격렬했다”고 썼다. 광주공업중(현 광주공고) 옥치수군은 1948년 ‘행복’에서 “우리 학교 사백 학도들도 대부분이 가난한 집안에서 태어난 불운아지만, 불행한 것이 아니다. 사백 학도여 동무들이여 형제여, 갖은 불행을 앞날 행복의 씨로 삼자. 자신을 위해, 부모를 위해, 민족을 위해, 나라를 위해, 불행을 참고 과학 기술을 꾸준히 배워 행복을 자아내자”고 했다.
서울사대부중(현 서울사대부중·사대부고) 2학년 서병현군은 1949년 공부에 대한 바른 자세에 대해 교지에 썼다. “우리는 항상 쉬지 않고 노력하여 실력을 양성하고 실력을 기르더라도 부정행위를 하지 말고 제 실력으로 떳떳이 만점을 받는 것이 우리가 시험에 대하는 바른 태도일 것이다. 쉬지 않고 노력하자.”
조국 재건을 위해 공부와 연구에 매진하는 학생들을 향해 어른들은 격려와 응원을 아끼지 않았다. 광주공업중 최삼식 교장은 1948년 ‘학생에게 바람’이라는 글에서 이렇게 당부했다. “여러분은 앞날 조선의 국보임을 자각하라. 아무리 좋은 구슬인들 쪼지 않고 어찌 빛날 것이며, 아무리 총명한 사람인들 배우지 않고 어찌 깨달을 것이며 큰 그릇을 이룰 수 있으랴? 여러분은 배움의 길 위에 서 있다. 다른 건 아무것도 생각할 것이 없으며 돌아다볼 필요가 없다. 오직 배움의 한길로 달음질칠 뿐.”
취재·자료 수집 어떻게 했나
본지는 1945년 8월 15일 광복 전후 학생들이 남긴 글과 사진을 찾기 위해 전국 중·고교 가운데 1945년 이전 개교한 150여 곳과 접촉했다. 대부분 학교는 1950년 발발한 6·25 전쟁 때 폭격 등으로 해방 전후 학생 기록을 모두 소실한 상태였다. 이에 학교 총동창회, 지자체 박물관, 민간 근현대사 연구자들로 범위를 넓혀 취재했다. 그 결과 경복중·양정중·배재중·송도중·무학여고·광주공립공업중 등 16개 학교가 1946년부터 1950년 사이 발행한 교지(校誌) 18권을 찾았다. 광복을 맞은 1945년도 교지를 갖고 있는 곳은 없었다. 당시 전쟁이 막바지에 이르며 학교 운영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은 탓으로 보인다.
교지는 각각 50~100쪽 분량이다. 대부분 국한문 혼용체로 쓰였고, 한글 맞춤법도 지금과 다소 달랐다. 이에 한국학중앙연구원 교육정책아카이브연구소에 의뢰해, 교지 내용을 현대식으로 번역했다. 작업에 참여한 김우영 한국학중앙연구원 교수는 “해방 전후 우리나라의 중고교생들은 현재 대학생 수준의 엘리트층이었다”면서 “유명한 독립운동가가 아닌 평범한 학생들이 바라본 해방 직후 조국에 대한 인식이 자세하게 공개된 것은 이번이 처음”이라고 말했다.
◆한국학중앙연구원 연구진=박대권 교육정책아카이브연구소장, 김우영 교육학 교수, 박수환(서울대 교육학 박사과정), 김수민(한국학중앙연구원 한국사학 석사과정), 김현주(한국학중앙연구원 교육학 석사과정), 허지훈(한국교원대 교육학 석사과정)
80년 전 흑백 사진, 어떻게 고화질 컬러 사진·영상으로 복원됐나
SK텔레콤(SKT)은 AI(인공지능) 이미지 복원기술 ‘슈퍼노바(SUPERNOVA)’와 첨단 ICT기술을 사용해 80년전 흑백 사진을 고화질의 컬러 이미지로 전환했고, 미디어 재현(리인액트먼트·reenactment) 기술로 실감나는 영상 콘텐츠로 제작했다.
AI 미디어 품질 개선 솔루션인 SUPERNOVA는 ①화질 개선(업스케일링·Upscaling), ②노이즈 제거 (디노이징·De-noising), ③흑백에서 컬러로 변환(컬러라이제이션· Colorization) 세가지 축으로 구성된다. 이번 ‘우리들의 해방일지’ 프로젝트에는 이 세가지 기능에 생성형 AI 기술까지 더해 원본 사진을 완벽하게 고증·복원했다. 특히, AI를 활용해 실제 사진에 있는 옷의 주름과 불명확한 경계들을 또렷하게 만들어 낸 다음 이를 기반으로 색상을 복원했다.
SKT측은 “사진 한장으로 ‘영상’을 만들어내기 위해서는 충분한 데이터를 학습해야 한다”면서 “그동안 미디어 분야에 적용할 AI 기술을 꾸준히 연구·개발(R&D)한 결과를 이번 프로젝트에서 보여준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