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에 있는 학점은행제 교육기관 A 학원이 운영 중인 2년제 경호항공보안학과에서는 지난 1학기 민간경비론(3학점짜리) 수업이 진행됐다. 강의 계획서에는 일주일에 3시간씩 총 15주간 수업 일정이 잡혀 있었지만, 이 중 4주는 수업이 열리지 않았다. 이 수업 담당 교수가 맡은 또 다른 과목(비서실무론)도 3주 정도 수업이 없었다고 한다. “몸이 안 좋다” “협회 행사에 참석해야 한다”면서 일방적으로 휴강을 통보했고, 따로 보충 수업도 하지 않았다. 실제 수업도 부실했다. 3시간짜리 강의를 1시간여 만에 끝낸 적이 많았다. 이는 ‘학점당 15시간 이상 수업’ ‘휴강 시 보강 수업 실시’ 등과 같은 교육부 운영 지침 위반이다. 이 교수는 이유를 묻는 기자의 질문에 “수업을 학생들에게 나눠 준 자료로 대체하거나, 다른 날 진도를 더 나가는 식으로 보완해 줬다”고 했다.

학점은행제는 직업훈련 기관이나 평생교육 시설처럼 학교가 아닌 곳에서 교육부가 인정한 수업을 듣고 전문학사 또는 학사 학위를 취득하는 제도다. 국민에게 평생 교육의 기회를 주기 위해 1997년 도입됐다. 현재 전국에 있는 학점은행제 교육기관 수만 400곳 이상이고, 학점은행제를 통해 학위를 받은 사람만 110만명이 넘는다. 대학에서의 강사 등 교원 경력이 3년 이상이거나 박사 학위 소지와 같은 자격을 갖춘 이들이 수업을 진행한다. 하지만 이 같은 학점은행제가 당초 도입 취지와 달리 정작 부실 운영되고 있는 것이다. “학점은행제가 돈 주고 학위 사는 ‘학위 공장’으로 전락했다”는 비판이 나온다.

서울에 사는 김모(22)씨는 학점은행제로 오는 2학기만 마치면 전문학사 학위를 취득할 수 있지만, 자퇴를 결심했다. 그동안 납부한 등록금만 해도 약 1000만원이지만, 제대로 배운 게 없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지난해 수강한 ‘경호비서학개론’에선 담당 교수가 수업을 하지 않고 코인 투자법, 부자 되는 법에 대해서만 이야기했다고 한다. 김씨는 “심지어 교수가 자신이 사업하는 업체에서 만든 물건을 가져와 학생들에게 성능 테스트를 시켰다”며 “그동안 21과목을 수강했지만, 더 이상 돈 버리는 기분을 느끼고 싶지 않아 그만두려는 것”이라고 했다.

부산에 사는 박모(21)씨는 지난 3월 B 평생교육원에서 학점은행제로 사회복지학과 수업 7개를 들었다. 수업마다 보고서를 하나씩 내야 하는 과제가 있었는데, 수강생들에게 ‘인공지능(AI)을 사용해 작성할 경우 0점 처리한다’는 안내가 함께 공지됐다고 한다. 하지만 이는 말뿐이었다. 박씨는 “네 과목은 직접 공들여서 보고서를 작성했지만, 나머지 세 과목은 시간이 부족해 ‘챗GPT’로 보고서를 만들었다”며 “그런데 보고서 모두 15점 만점에 12~13점이 나왔다”고 했다.

녹화 강의가 많은 온라인 수업은 학생들이 제대로 듣고 있는지 확인하지 않는 경우가 허다하다. 한 수강생은 “별로 배울 게 없을 거 같아서 아르바이트할 때 접속해 그냥 켜놓고 출석률만 채웠다”고 했다. C 사이버평생교육원에서 학점은행제로 법학을 공부한 이모(25)씨는 “출석률 때문에 틀어놓긴 했지만, 집중해서 보지는 않았다”며 “주로 청소하거나 다른 과목 공부를 했다. 외출한 적도 있다”고 했다.

부실 운영은 정부의 관리·감독이 제대로 이뤄지지 못하기 때문이다. 교육부 위탁을 받아 학점은행제를 운영하는 국가평생교육진흥원(국평원)이 현장 점검하는 곳은 연간 50여 곳에 불과하다. 국평원 관계자는 “인력이 부족해 이보다 많은 기관을 점검할 여력이 안 된다”고 했다.

교육계에선 “수업의 질이 관리되지 못하면 자격 미달 학위가 양산될 수밖에 없다”는 우려의 목소리가 나온다. 양정호 성균관대 교육학과 교수는 “학점은행제가 잘 시행되는지 평가하고 운영해야 하는 국평원이 인력 부족 때문에 점검을 못 했다는 건 위탁 기관으로서의 역할을 제대로 하지 못한 것”이라며 “필요할 때마다 현장 점검 인력을 충원하는 등 개선책 마련이 필요하다”고 했다.

☞학점은행제

교육부가 주관하는 평생 학습 제도. 전 국민에게 평생 교육의 기회를 주기 위해 1997년 도입됐다. 직업훈련기관이나 평생교육시설 등 학교가 아닌 곳에서 교육부가 인정한 수업을 듣고 학점을 채우면, 전문대 또는 일반대와 동등한 학력을 인정받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