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북 청주의 운호고등학교는 지난달 축구부 해체를 추진했다. 이 학교 축구부는 국가대표 미드필더 원두재 등 프로 선수를 여럿 배출한 52년 전통의 지역 명문 운동부다. 프로 축구단 충북청주FC의 유소년팀이기도 하다. 그런데 갈수록 선수들의 단체 기숙 생활 관리도 어렵고, 학사 운영도 쉽지 않아 학교 측이 해체하기로 한 것이다. 축구부 학생과 학부모들은 “갑자기 해체하면 어디로 가라는 것이냐”고 반발했다. 이에 학교 측은 일단 1년 더 축구부를 운영한다는 방침이지만, 그 이상은 어렵다는 입장이다.

2023년 12월 서울 한 고등학교 체육관에서 배구부 선수들이 훈련을 하고 있다. 인구 감소 등으로 학교 운동부가 매년 줄어들고 있다. /박상훈 기자

전국 초·중·고교 운동부가 줄어들고 있다. 30일 교육부에 따르면, 운동부를 운영하는 학교는 2010년 6061곳에서 지난해 3800곳으로 14년 만에 2000곳 이상이 사라졌다. 학교 운동부 3곳 중 1곳이 없어진 것은 인구 감소로 운동부 학생 모집이 힘들고 각종 잡음과 의혹 제기로 운영도 쉽지 않기 때문이다. 학교 안팎에선 엘리트 선수 육성 저변이 무너진다는 우려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그래픽=김성규

광복 직후인 1946년 창단한 서울 중동고 아이스하키부도 해체 절차를 밟고 있다. 원래 매년 신입생 6~7명을 아이스하키 특기자로 선발했지만, 올해는 아무도 뽑지 않았다. 올해 2·3학년 특기생들이 졸업하면 아이스하키부는 해체된다. 중동고가 아이스하키부를 해체하기로 한 건 운동부와 관련한 각종 의혹 때문이다. 재작년 학부모들이 돈을 모아 감독에게 금품을 줬다는 의혹이 있었고 교육청 조사에서 사실로 드러났다. 중동고 관계자는 “학교 명예가 실추됐고, 차라리 아이스하키부를 없애는 게 낫다고 판단했다”고 했다. 중동고 아이스하키부가 최종 해체되면 국내 고교 아이스하키부는 4곳(경기고·경복고·경성고·광성고)만 남게 된다. 전국 체전에서 우승까지 한 경기 화성시 송산고의 배구부 역시 운동부를 둘러싼 각종 비위 때문에 지난 2월 해체됐다. 배구부 관계자가 불법 찬조금을 모금하고 학부모들로부터 선물·식사 대접을 받았다는 의혹이 일자 학교 측이 더 이상 운영이 어렵다고 판단했다고 한다.

운동부를 운영하는 한 고교 교장은 “운동부 학생들은 연습이나 대회 참가를 위해 자주 수업에 빠지는데, 면학 분위기 조성에도 좋지 않은 게 사실”이라면서 “학생들 사이에서 다툼이 있거나 감독 선생의 비위 의혹이 제기되면 학교가 책임까지 져야 해서 차라리 운동부를 없애자는 분위기”라고 말했다.

비인기 종목의 경우 신입생 모집이 어려워 문을 닫기도 한다. 천하장사 김진, 윤정수 등을 배출한 40년 전통의 인천시 부개초 씨름부는 지난해 문을 닫았다. 씨름 인기가 시들해지면서 신입 부원이 들어오지 않아 자연스럽게 소멸된 것이다. 신입 부원 모집이 어려운 학교들은 다른 시도 학생들을 받아 단체 합숙을 시키면서 운동부를 유지하기도 한다. 그런데 선수들의 실제 거주지와 주민등록지가 달라 ‘불법 위장 전입’으로 교육청에 적발되는 문제도 종종 생기고 있다. 최근 축구부 해체를 논의한 한 고교에서도 위장 전입이 적발되면 학교에 불이익이 있다는 우려가 큰 영향을 줬다고 한다.

갑자기 운동부가 문을 닫으면 운동으로 진로를 정한 학생들의 미래가 막막해진다는 불만도 나오고 있다. 한국 스포츠계를 이끌어 갈 엘리트 선수들 배출에도 차질이 생길 수 있다. 작년 파리 올림픽에서 우리나라는 단체 구기 종목 중 여자 핸드볼을 제외하곤 모두 예선 탈락해 ‘구기 종목의 몰락’이란 말이 나왔다. 통상 본선 진출하는 구기 종목이 6~7개였는데 지난해엔 1개에 그친 것이다. 체육계에선 “저출생으로 인한 선수 감소 여파가 본격 시작됐다”는 말이 나왔다. 이런 상황에서 연이은 운동부 해체로 젊은 엘리트 선수가 더 줄어든다면 앞으로 국제 대회에서 설 자리가 더욱 좁아질 것이란 우려가 커지고 있다.

이종헌 한양대 미래인재교육원 교수는 “개별 학교의 부담을 덜어주면서 엘리트 선수를 계속 육성하기 위해선 교육 당국이 지역별 거점형 스포츠 클럽 운영을 활성화해서 선수를 배출해야 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