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강남구 한 초등학교 A 교사는 작년 임용 합격 후 곧장 이 학교로 배치받았다. 사는 곳은 동작구인데, 멀리 배치된 것이다. 그는 요즘 매일 강남을 벗어나는 날만 기다리고 있다. 학부모들의 과도한 민원 때문이다. 최근 한 학부모는 “어떤 애가 우리 애한테 운동장 우레탄 알갱이 두 개를 던졌다. 생활 지도해달라”는 민원을 받았다. 어떤 학부모는 “피구하면서 어떤 아이가 고의로 우리 애한테 공을 던졌으니 사과받아야겠다”고 항의했다. A씨는 “내 잘못도 아닌데 학부모가 전화로 화낼까 봐, 아동 학대로 신고할까 봐 매일 불안하다”고 했다.
서울 강남·서초 지역 초등학교가 저연차 교사들로 채워지고 있다. 학부모 민원과 과밀 학급에 지친 교사들이 떠난 빈자리를 신규 교사들이 채우고 있는 것이다. 서울시교육청은 교사들을 붙잡아두려고 강남·서초 지역 초등 교사들은 5년이 아닌 10년간 일해야 타 지역으로 나갈 수 있도록 최근 규정까지 바꿨다.
16일 정성국 국민의힘 의원실이 서울시교육청에서 받은 ‘경력별 초등교사 현황’ 자료에 따르면, 작년 서울 25개 자치구 가운데 경력 5년 미만 초등교사의 비율이 가장 높은 곳은 강남구(20.7%)와 서초구(18.6%)였다. 이는 25개 자치구 평균(10.9%)의 두 배에 가까운 수치다. 작년 3월 서울 신규 초등교사 113명 중 44명(39%)이 강남·서초에 배치됐다.
교사들이 강남 근무를 꺼리는 가장 큰 이유는 ‘학부모 민원’이다. 재작년 강남서초교육지원청에 접수된 민원은 2508건으로, 서울 11개 교육지원청 중 가장 많았다. 강남 초등 교사 B씨는 “우리 애가 대표로 계주에 나가고 싶어 하는데, 왜 안 시켜주느냐”는 항의를 받았다. 교사 C씨는 “학부모가 ‘나는 전세가 아닌 자가로 살고 있으니, 우리 애를 더 신경 써달라’는 민원을 받았다”고 말했다. 집값이 비싼 강남에 많은 돈을 들여 이사 온 만큼 자녀를 잘 챙겨 달라는 취지인데, 모든 학생을 챙겨야 하는 교사 입장에선 받아들일 수 없는 민원이다. “남편이 변호사인데, 선생님이 이렇게 말하면 안 된다고 한다”면서 압박하는 부모도 있다고 한다.
업무가 많은 것도 교사들이 강남을 기피하는 한 이유다. 강남·서초 지역은 학급당 30명이 넘는 과밀 학급이 많다. 종로학원이 지난해 전국 229개 시군구의 초등학생 전출입 현황을 분석했더니, 강남구의 순유입 학생이 2575명으로 1위였다. 순유입은 전입 학생 수에서 전학 등으로 빠져나간 학생을 뺀 수치다.
서울시교육청은 최근 강남·서초 초등교사 전출 규정을 바꿨다. 원래 강남·서초 관내 학교에서 5년 이상 근무한 교사는 다른 지역 학교로 옮겨야 하는데, 이걸 10년으로 늘렸다. 과거엔 강남 지역이 학생들 생활 지도가 편해 근무 선호지였기 때문에 이런 규정이 있었다. 바뀐 규정은 2028년 3월 적용된다.
힘든 일이 몰리다 보니 교직을 떠나는 저연차 교사도 늘고 있다. 정성국 국민의힘 의원실의 ‘최근 5년간 국·공립 초·중·고 퇴직 교원 현황’ 자료에 따르면, 작년 퇴직한 경력 10년 미만 교사는 607명이었다. 2020년 459명에서 2021년 463명, 2022년 526명, 2023년 566명으로 꾸준히 늘다 작년 처음 600명을 넘긴 것이다.
정성국 의원은 “교사 개인이 감내해야 하는 민원 처리 방식을 실질적으로 개선하고, 학부모의 무분별한 악성 민원에 대응할 수 있는 교권 회복 대책이 강구돼야 한다”며 “그러지 않고선 강남 일대를 신규 교사들이 채우는 문제, 저연차 교사들이 학교를 떠나는 현상이 해결되기 어렵다”고 지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