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26일 일본 요코하마에서 개막한 세계적인 컴퓨터 학술대회 ‘CHI’. 한국 태재대학교팀은 이 대회 ‘학생 디자인’ 부문에 참가해 각국 주요 대학 84팀 중 최종 우승했다. 올해 참가팀 중 학부생은 한 손에 꼽을 정도였다. 이들은 ‘치매 노인이 스스로 집에 돌아오도록 돕는 GPS 기술’을 연구해 보고서를 냈고, 심사위원들에게 “치매 노인 실종을 줄일 수 있는 창의적 기술”이라는 호평을 받았다.
특히 태재대팀 4명 중 이란성 쌍둥이 전다윗군, 다희양은 올해 17세다. 아직 10대인 학생이 쟁쟁한 대학원생들을 제치고 우승하자, “놀랍다”는 반응이 쏟아졌다. 이들은 2008년생으로 검정고시를 치르고 또래가 중3이던 재작년 9월에 입학해, 현재 2학년이다. 전군은 “학교에서 ‘늘 문제의식을 갖고 해결법을 고민하라’고 강조하며, 모든 수업을 영어 토론식으로 배웠다”며 “토론에 익숙한 동기생들이 서로 의견을 나누며 3개월 동안 준비해 완성도 높은 보고서를 쓸 수 있었다”고 했다.
이들 남매는 현재 일본에서 2학년 2학기 공부를 하고 있다. 태재대는 지바현 간다외국어대와 협약을 맺고 지난 4월 이들을 포함한 2학년생 20여 명을 일본으로 보냈다. 단순 주입식 교육에서 벗어나 문제해결력을 키우는 데 집중하기 위해 학부생 전원을 매 학기별로 세계 주요 도시에 보내는 ‘글로벌 로테이션(Global Rotation)’ 프로그램의 닻을 올린 것이다. 이들은 8월부턴 미국 캘리포니아에서 한 학기를, 그 다음 학기는 뉴욕에서 공부할 계획이다. 4학년은 중국에서 보낼 예정이다.
학생들은 현지에서 각자 전공에 따라 인공지능(AI), 경영학 같은 태재대 온라인 영어 토론식 강의를 듣는다. 이와 함께 ‘현장형 과제’도 필수로 해야 한다. 해외 각국에서 문제점을 발굴하고, 그에 대한 해결책을 찾아 학기 말까지 내는 것이다. 22일 도쿄 태재대 기숙사 인근에서 만난 2학년생 송예준(20)씨는 일본에서 ‘지진·홍수 같은 재난에 대응하는 방법’을 주제로 정해 연구 중이다. 전기가 끊긴 재난 상황에서 피난민에게 생필품을 나르는 태양광 저장고를 개발하는 현지 스타트업 관계자를 만나 인터뷰했고, 일본 교수들도 만났다. 송씨는 “한국도 최근 재난이 자주 발생해 고통을 겪는 사람이 많은데, 오랫동안 재난 대응을 고민해온 일본 사례를 바탕으로 우리나라에서도 활용할 방법을 찾고 있다”고 했다. 서울 한 사립대를 다니다 암기식 수업에 회의를 느끼고 태재대로 진학한 그는 “강의실에만 앉아서는 접하기 어려운 해외 현장 이야기를 들으니 ‘성장하고 있다’는 기분이 든다”고 했다. 현지 역사적 명소도 ‘교실’이 된다. 23일엔 학생들은 도쿄 메이지신궁에 모여 ‘신성한 장소를 새로 짓는다는 건 어떤 국가적 의미가 있는가’에 대한 영어 토론을 했다.
2023년 시작한 태재대는 캠퍼스 없이 세계를 돌며 공부하는 미국의 미네르바대 모델을 표방하고 있다. 염재호(70) 전 고려대 총장이 태재대 총장을, 김도연(73) 전 포스텍 총장이 태재대를 운영하는 태재학원 이사장을 맡고 있다. 염 총장은 “전 세계 곳곳에서 문제의식을 갖고 해결 능력을 키운 학생들이 글로벌 테크 기업, 국제기구, 창업 등 다양한 영역에서 미래를 이끄는 핵심 인재로 성장하길 기대한다”고 했다.
그런데 매 학기 해외 생활을 하면 대학 등록금이 너무 비싸지 않을까. 태재대의 등록금은 연간 900만원으로, 4년제 대학 평균 등록금(710만원)보다 높다. 해외 기숙사비와 생활비까지 고려하면 1년에 1800만~2000만원 정도가 들지만, 저소득층에겐 전액을 지원해주고 있다. 조창걸 한샘 창업자가 출연한 3000억원으로 지원하는 것이다. 김 이사장은 “형편이 어렵다는 이유로 해외 교육 기회를 잃어선 안 된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