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월 중국의 인공지능(AI) 스타트업 딥시크는 전 세계 산업계뿐만 아니라 교육계에도 상당한 충격을 안겼다. 딥시크 창업자와 핵심 개발자 등 중국 첨단 기술의 총아들 상당수가 중국 대학이 길러낸 ‘토종 인재’란 사실이 알려지면서다. 현재 세계 대학들은 AI뿐만 아니라 양자컴퓨팅, 반도체, 이차전지 등 첨단 기술의 등장으로 순식간에 찾아온 4차 산업혁명에 대비해 사활을 걸고 있다.

한국 대학들 역시 첨단 기술 인재 양성, 연구개발(R&D) 확대를 위해 막대한 자원을 투입하며 소리 없는 전쟁터에 뛰어든 상황이다. 다양한 전공을 융·복합해 새로운 학과를 신설하고 새로운 형태의 산학 협력을 시도하고 있다. 대학 ‘혁신 시스템’을 구축하고 있는 것이다. 국내 주요 대학들의 혁신 사례를 살펴본다.

한양대 학생들이 정밀 분석용 연구기자재를 모아둔 이 학교 공동기기원에서 연구 장비를 이용한 실험을 하고 있다. 대학들은 4차 산업 시대에 대비해 연구·개발(R&D) 예산을 대폭 늘리는 등 연구 인프라를 혁신하고 있다. /한양대 제공

한양대는 환경·에너지, 바이오, 반도체 등 첨단 산업 분야의 연구 역량을 집중적으로 강화하고 있다. 최근에는 AI, 양자, 국방 분야 등 미래 기술을 선도할 집단융합연구원 신설을 추진하며 학문 간 융합 연구를 확대하고 있다. 실제 2023년 반도체 연구를 위한 CH³IPS 센터, 2024년 차세대 통신 기술 연구를 수행하는 Beyond-G 글로벌 혁신센터가 과학기술정보통신부 주관 혁신연구센터(IRC) 사업에 선정되는 성과를 냈다.

서울과학기술대는 첨단 기술 인재 양성에 주력하기 위해 2020년 인공지능(AI)응용학과, 2021년 지능형반도체공학과와 미래에너지융합학과를 신설했다. 최근에는 바이오 분야 첨단 인재 양성을 목표로 ‘SeoulTech-KIRAMS 의과학 대학원’도 신설했다. 서울과학기술대와 한국원자력의학원(KIRAMS)이 공동으로 운영하는 전문대학원으로, 올해부터 신입생을 모집했다.

성균관대는 서울과 수원을 중심으로 미래 지향적 캠퍼스 인프라를 조성하고 있다. 서울 인문사회과학캠퍼스는 서울시와 협력해 혁신 성장 구역 지정을 추진 중이다. 수원 자연과학캠퍼스는 2025년 약 1만4000평 규모의 팹랩(FabLab)동 및 CNS연구센터를 완공해 첨단 교육 및 연구 중심지로 도약한다. 성균관대는 삼성SDI와 협력해 이차전지 전문가를 양성하는 배터리학과를 2026년 신설할 예정이다.

중앙대는 2020년부터 ‘연구 중심 대학’으로 대전환하고 있다. 2020년부터 5년간 연구비 수주액이 1조원을 돌파했다. ‘대학 ICT연구센터 지원사업’ 등 대형 국가 연구개발 사업을 수주했다. 중앙대는 다전공 의무화, 연계 전공, 융합 전공, 자기 설계 전공 등을 도입하는 등 교육 프로그램을 개선하고 있다. 모든 학생이 인공지능 기초 소양을 갖추도록 AI·SW 교과목을 필수 과정으로 도입했다.

2024년 반도체 특성화 대학 지원 사업에 선정된 경상국립대는 4년간 정부 지원금을 포함한 사업비 303억원을 투입, 반도체 기술 핵심 대학으로 거듭난다는 계획이다. 특히 반도체 산업의 핵심 분야인 ‘극한 환경 반도체 패키징 기술’ 혁신에 주력한다. ULTRA 반도체특성화대학사업단은 실무 전문 인력 양성을 위해 학생들이 첨단 반도체 기술을 체험하고 학습할 수 있도록 최신 연구 시설을 구축했다.

가천대는 바이오(Bio), 배터리(Battery), 반도체(Chips) 등 미래 핵심 기술 분야에 전략적으로 집중하는 ‘BBC 특성화’를 통해 공학 중심 대학으로 체질 개선에 나서고 있다. 첨단 산업 교육·인프라 확충에 박차를 가하고 있는데, 2020년 인공지능학과 신설을 시작으로 배터리공학과 등 총 10개의 첨단 학과를 개설했다. 지난해에는 세계 최초로 독립 반도체 단과대학을 설립했다.

광운대는 초융합 AI 시대에 맞는 창의·소통·혁신 초융합 교육 및 연구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작년 인공지능융합대학 내 로봇학부 AI로봇전공(정원 74명)과 전자정보공과대학에 반도체시스템공학부(정원 58명), 경영대학 경영학부에 빅데이터 전공(정원 40명)을 신설했다. 교육부 ‘2024년 대학혁신지원사업 2차년도 연차평가’ 교육혁신 성과 영역에서 최고 등급인 S를 획득하는 등 성과를 인정받고 있다.

수원대는 산업 현장에 필요한 실무 역량을 갖춘 인재 육성을 위한 ‘반도체 공정 실무교육’을 운영해 본교생은 물론, 지역 청년에게 전문 교육을 지원한다. 수원대가 위치한 경기 서남부 권역은 정부가 신성장 동력 산업으로 지정한 반도체 및 디스플레이 관련 기업의 49%가 위치해 인재 수요가 높다. 수원대의 전자부품소재기술혁신센터(TICEM)는 국내 유수의 반도체 공정 전문 교육 시설을 보유하고 있다.

세종대는 2030년 글로벌 100대 대학 진입을 목표로 ▲세종 아너스 프로그램 운영 ▲교육 기자재 고도화 사업 ▲PBL(Problem Based Learning) 교과목 운영 등으로 융합 시대에 걸맞은 창의적 인재 양성에 앞장서고 있다. 세종대는 1990년대부터 첨단 공학 계열로의 혁신을 시도했다. 여러 첨단 전공을 소프트웨어 중심 대학으로 전진 배치해 연구 성과가 거듭 나오고 있다.

국민대는 한국 차세대 통신과 미래 자동차 분야 인재 양성을 이끌고 있다. 정부가 주도하는 첨단 분야 혁신융합대학 사업에서 미래 자동차, 차세대 통신 컨소시엄 주관 대학으로 선정돼, 각각 6년간 714억원, 4년간 408억원의 예산을 지원받았다. 산학 협력도 활발하다. 작년 국민대 차세대 통신 사업단은 삼성전자와 협업해 ‘삼성전자 스마트싱스 마이크로디그리’ 교육과정을 신설했다.

경희대는 융합 역량을 강화하고자 2022년 융합기술연구원을 설립했다. 2개 이상의 학과(전공)가 학문 영역을 유기적으로 통합한 융합전공을 개설해 운영 중이다. 작년에는 양자정보 융합전공, 미래정보디스플레이학부 개설을 추진했다. 경희대는 한국 최초 달 탐사선 다누리의 과학 탑재체를 개발하는 등 우주과학에서 두각을 보인 대학이다. 작년 우주인공지능 융합전공을 설립했다.

단국대는 다양한 융복합 전공 학문을 육성해 변화에 유연하게 대응하는 인재를 양성하고 있다. 정부가 미래 융합 인재 양성을 위해 지원하는 ‘첨단 분야 혁신융합대학(COSS)’ 3개 분야와 ‘인문사회 융합 인재 양성 사업(HUSS)’ 2개 분야 등 총 5개 사업을 운영하고 있다. 단국대는 SW·AI 비전공자를 위해 맞춤형 학위 과정인 ‘재능 사다리 4단계’를 신설하기도 했다.

건국대는 ‘한국의 스탠퍼드대’를 목표로 혁신적인 창업 생태계 조성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특히 기존 창업지원단을 창업지원본부로 승격해 창업 지원을 한층 강화했다. 2022년부터 2024년까지 건국대 학생이 창업한 기업은 총 215개다. 이는 최근 3개년 학생 창업 기업 수 합계 전국 1위 수준이다.

서경대는 미래를 주도할 신산업 분야 인재 양성을 위해 아트앤테크놀로지학과, 스포츠앤테크놀로지학과, 컴퓨터소프트웨어전공, AI빅데이터전공, 인텔리전트컴퓨터전공 등 다양한 첨단 학과 및 전공을 운영하고 있다. 학생들의 자기 주도적 학습 능력을 향상시키기 위해 플립드러닝, 블렌디드러닝 등 창의적 수업 방식을 도입하고, 이를 확산하기 위한 교육 시설 인프라 구축에 힘쓰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