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해외 여행객 증가로 인한 ‘공항 인파 대란’을 예방하기 위해 공항 보안 검색 요원(보안 요원) ‘고졸 채용’ 전형 개설을 추진하고 있지만, 보안 업체 측이 ‘불공정 채용’ 논란이 생길 수 있다고 난색을 보이며 무산 위기에 처했다.
10일 본지 취재를 종합하면 교육부와 대한상공회의소는 작년 4월 김포·김해·제주 등 14개 공항 보안을 담당하는 한국공항보안, 인천국제공항 보안을 담당하는 인천국제공항보안에 각각 직업계고(옛 공고·상고) 졸업자 채용 전형을 실시하자고 제안했다. 두 업체는 각각 한국공항공사와 인천국제공항공사의 자회사다.
정부가 보안 요원이 되기를 희망하는 직업계고 3학년 또는 졸업 1년 이내 고졸자를 대상으로 400시간 이상 직업 교육을 실시하고 비용도 부담할 테니, 업체 측은 이들을 뽑을 별도 채용 전형을 만들라는 내용이다. 올해 중반부터 희망 학생을 교육해 올해 말쯤 100~150명에 달하는 인력을 공항에 투입한다는 계획이었다.
정부가 이를 추진한 건 전국 공항이 보안 요원 인력난에 시달리고 있기 때문이다. 항공 업계에 따르면, 한국공항보안은 작년 1~11월 사이 보안 요원 약 540명을 채용했는데 같은 기간 교육 인력을 포함, 500여 명이 퇴사했다. 인천국제공항보안 역시 작년 총 370명을 채용했는데 퇴사자가 240명이 넘는다.
보안 요원은 공항에서 일한다는 매력 덕분에 젊은 세대가 선호하지만, 비교적 낮은 처우(초봉 약 3300만원)와 교대 근무 등을 이유로 퇴사율이 높다. 만성적인 인력 부족으로 업무 강도가 높아지고 그 영향으로 퇴사자가 늘어나는 악순환 고리에 빠졌다. 이 때문에 400만명 넘게 공항을 이용한 지난 설 연휴처럼 인파가 몰릴 땐 보안 요원 부족으로 출국 수속에 3시간씩 걸리며 승객 불만이 폭발하는 일이 반복되는 것이다.
한 공항 보안 업계 관계자는 “보안 요원은 대학 지식이 특별히 필요하지 않은 전문 기능직인 만큼 전문 훈련을 받은 고졸자가 업무 이해도가 높을 수 있다”며 “앞으로 보안 요원 수요가 더 가파르게 늘어날 것이기 때문에 대안이 필요하다고 본다”고 했다. 정부도 공항 인력난도 해결하고 고졸 채용도 늘리는 ‘윈윈’ 전략이라 보고 고졸 전형을 준비했지만, 작년 12월 막바지 협의 단계에서 업체 측이 “어렵다”고 하면서 사실상 무산된 상황이다.
업체 측이 고졸 별도 전형에 난색을 보이는 가장 큰 이유는 ‘불공정’ 논란 때문이다. 현재 이 업체들은 학력·성별·나이 등을 서류에 기재하지도 않고 면접에서 묻지도 않는 ‘블라인드 채용’을 진행하고 있어 고졸도 지원할 수 있고 실제 고졸자가 채용되는 일도 빈번하다. 그런데 고졸 채용을 만들면 자칫 ‘역차별’ 논란이 생길 우려가 있는 것이다. 한국공항보안 관계자는 “정부 측 제안이 회사가 추구하는 ‘공정 채용’ 기조와 맞지 않는다고 판단했다”고 말했다. 인천국제공항보안 관계자는 “공항 보안 업체는 공직 윤리 제도가 적용되는 공직 유관 단체로, 별도 고졸 채용 전형을 만들면 ‘학력에 관계없이 공개 채용을 한다’는 공직 인사 규정 위반 소지가 있다”고 했다.
그러나 정부는 직업계고 졸업자가 ‘취업 취약 계층’에 해당해 별도 전형이 필요하다는 입장이다. 대한상의 관계자는 “대부분 미성년자인 이들은 능력과 별개로 자기소개서 작성이나 면접 경험이 없고, 가산점을 얻을 만한 대외 활동, 인턴 경력을 쌓기도 어려워 경쟁력이 떨어질 수밖에 없다”며 “한국전력 같은 공공기관이나 하나은행 등 수많은 사기업이 고졸 채용 전형을 두는 이유”라고 했다. 정부는 이 사안이 공정 채용에 어긋나는지 국민권익위원회에 심사를 받은 뒤 재추진하겠다는 계획이다.
기업들이 갈수록 더 많은 각종 대외 활동이나 인턴 경력 등을 요구하며 블라인드 채용이라 할지라도 스펙 차이를 통한 사실상 ‘학력 필터링’이 이뤄지고 있다는 지적이 많다, 과거 고졸자가 선호했던 직업 중 하나인 은행권이 2014년 블라인드 채용을 본격화한 등용문이 매우 좁아졌다. 2013년 4대 시중은행 고졸 입사자는 400명이 넘었지만, 이후 급감해 2020년부터 100명대로 추락했다. 이에 정부는 고졸 채용 전형 같은 제도적 보완을 추진하고 있지만, 대학을 졸업한 취준생들의 반발도 거세다. 공민천 보안검색통합노조 위원장은 “요즘 젊은 직원들은 공정성을 매우 민감하게 따지기 때문에 고졸 채용 전형을 따로 만들면 반발이 나올 수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