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육부가 내년 초·중·고교 현장에 도입하려 했던 ‘인공지능(AI) 디지털 교과서’가 야당 반대로 교과서 지위를 상실할 위기에 놓였다. 정부의 주요 교육 개혁 과제 중 하나인 ‘AI 디지털 교과서’ 도입이 내년 시행을 불과 두 달여 앞두고 무산될 상황에 처하자, 교과서를 선정해야 하는 각 학교 일선에서도 혼란이 가중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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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I 교과서를 ‘교육 자료’로 격하한 초·중등교육법 개정안이 26일 야당 주도로 국회 본회의를 통과했다. 이번 개정안에 따라 교과서는 도서 등으로 제한했고, 프로그램인 AI 교과서는 교육 자료가 됐다. 교과서와 교육 자료는 그 지위가 크게 다르다. 교과서는 각 학교가 의무적으로 정해야 하고 예산도 지원된다. 반면 교육 자료는 각 학교 재량이다. 학교가 운영위원회를 거쳐 채택 여부를 정한다. 교과서와 달리 무상 교육의 범위에도 포함되지 않기에 원칙적으로 각 학교가 비용 부담을 진다. 이에 교육업계에선 “AI 교과서가 교육 자료라면 채택률이 10% 미만에 그칠 것”이라는 말이 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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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육부는 반발하고 나섰다. 이주호 사회부총리 겸 교육부 장관은 “이미 검정을 통과하고 내년 적용하기로 한 AI 교과서에 대해 소급 적용하는 것으로 헌법상 신뢰 보호 원칙을 위반할 소지가 있다”며 “학교와 사회 혼란이 우려된다. 재의 요구를 제안한다”고 했다. 한덕수 대통령 권한대행에게 재의요구권(거부권) 행사를 건의한다는 것이다. 재의 요구한 법안은 재표결에 부쳐, 재적의원(300명)의 과반이 출석하고 출석 의원 3분의 2 이상이 찬성해야 통과된다. 교육업계에서는 교육 현장 혼란 등을 고려할 때 한 권한대행이 거부권을 행사할 수밖에 없다고 예상한다.

이 같은 공방에 일선 교육 현장에서는 우려의 목소리가 높다. 한 공립 고등학교 교장은 “AI 교과서를 둘러싼 찬반 주장이 올해 이어지며 상황을 지켜보고 있었는데, 결국 현재까지도 어떻게 판단해야 하는지 정해진 건 없는 것”이라며 “AI 교과서 연수 계획이 예정돼 있는데 난감하다”고 했다.

정부는 당초 내년 3월부터 초3·4, 중1, 고1 대상으로 수학·영어·정보 과목에 AI 교과서를 도입할 방침이었다. AI 교과서는 각 학교 현장에 보급된 태블릿 PC 등 전자기기를 활용해 구현하는 프로그램이다. 개별 학생들의 영어 발음에 대해 AI가 교정해주고, 학생의 문제 풀이를 분석해 성취 수준에 맞는 맞춤 자료를 제공한다. 이를 위해 개발 업체들은 2년여 동안 많게는 수백억 원씩을 써가며 AI 교과서 개발에 매달렸다.

하지만 야당은 AI 교과서에 반대하고 나섰다. 지난 9월 민주당 고민정·문정복 의원은 AI 교과서를 교육 자료로 규정한다는 내용의 개정안을 발의했다. 이어 지난 17일 야당 주도로 국회 법사위를 통과한 데 이어 이날 본회의도 통과했다.

야당은 교육 현장에서 AI 교과서에 대한 반대 여론이 크다는 점과, 학생들의 문해력이 떨어질 수 있다는 점을 들며 AI 교과서에 반대한다. 야당 의원들은 학부모, 교원 총 10만6448명 중 86.6%가 AI 교과서 도입에 반대한다는 내용의 설문조사 결과를 발표한 바 있다. 그러면서 “종이 교과서를 사용할 때에 비해 학생들의 독해력이 떨어질 우려가 있고, 수업 집중도 잘하지 못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교육부는 AI 교과서엔 수업 외 사이트 접속을 차단하는 기능이 있고, 교사가 학생 화면을 통제할 수 있다는 점 등을 들어 ‘수업 중 딴짓’ 관련 우려에 대해 반박했다. 학생의 문제 풀이 패턴을 파악해 부족한 부분을 보완할 수 있어 교육 효과가 크다고도 주장했다. 현장 반대 여론이 크다는 점에 대해 교육부는 “사전엔 반대 여론이 컸지만, AI 교과서를 실제 접한 이들은 높은 만족도를 보인다”고 했다.

이번 본회의 통과 후, 2년에 걸쳐 AI 교과서를 만든 발행사들은 단체 법적 행동도 불사하겠다는 입장이다. 한 발행사 관계자는 “다른 발행사들과 논의하고 있다. 법안 효력 정지 가처분 신청부터 행정소송, 민사소송, 헌법 소원 등 가능한 법적 절차를 모두 검토하고 있다”며 “이미 검정까지 마친 교과서의 지위를 변경하는 건 위법한 것이라는 말이 업계에 많다”고 했다. 다른 발행사 관계자는 “법적 절차와는 별개로, 기존에 하던 AI 교과서 홍보는 계속 할 것”이라며 “다양한 사람이 AI 교과서를 써보고 찬반을 결정해줬으면 하는 마음”이라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