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GI를 표현한 그림. 마이크로소프트 빙 AI 챗봇이 그렸다. /빙

서울 한 중학교 교사 A(27)씨는 작년 말 학생들의 학교생활기록부(생기부)를 쓰면서 생성형 AI(인공지능) ‘챗GPT’ 기반 프로그램을 활용했다. 동료들에게 “생기부 쓰는 게 너무 부담된다”고 했더니 생기부 작성 AI 프로그램을 알려줬다. A씨는 “써보니 작성 시간이 획기적으로 줄더라. 신세계였다”고 말했다.

최근 AI로 생기부를 쓰는 교사들이 늘고 있다. 생기부는 학생 성적, 특별 활동, 출결, 행동 특성 등 학교 생활 전반을 기록하는 문서다. 젊은 교사들 중에는 학생 수십 명의 생기부 작성을 부담스러워하는 교사들도 적지 않다고 한다.

생기부 작성 프로그램 중엔 ‘행동 특성 및 종합 의견’을 돕는 AI가 가장 인기다. 조회수 160만회를 넘었다. 학생 특징을 ‘키워드’로 몇 개 넣으면 문장으로 바꿔 준다. 예컨대, ‘성실함’ ‘예의 바름’ ‘착함’이라고 넣으면 ‘수업에 대한 태도가 매우 바르고 진지하며 항상 성실하게 수업에 참여하는 학생’이라고 써준다. 이런 식으로 하면 해당 항목 최대 분량인 500자를 금방 채울 수 있다.

‘교우 관계가 좋고 사교적이다’ 같은 평범한 문장을 다양한 표현으로 바꿔주는 프로그램도 있다. ‘생기부 복붙(복사해서 붙이기)’ 비판을 피할 수 있다. 학생이 낸 보고서 내용을 요약해주기도 한다. 에듀테크 업체들이 유사한 서비스를 제공하기도 한다.

일각에선 교사가 생기부 작성에 AI 도움을 받는 건 문제라는 지적이 나온다. 현재 대학들은 신입생 80%를 생기부로 선발하고 있다. 반영구적 공적 기록이다. 학생 일생을 좌우할 수도 있는 생기부를 교사가 직접 쓰지 않고 AI 도움을 받는 것은 윤리적으로 옳지 않다는 것이다. 생기부 AI 프로그램에도 ‘이 존재를 외부에 절대 알려선 안 된다’ 등의 댓글이 달려 있다.

대학도 AI를 이용한 생기부 때문에 고민하고 있다. 임진택 경희대 입학사정관은 “챗GPT가 만들어준 일반적인 문장만 붙여 넣기 한 것은 일종의 표절”이라면서 “대학에선 생기부도 ‘유사도 검사’를 돌려 챗GPT가 작성한 문장을 가려내는 방안을 고민 중”이라고 말했다. 한 서울 지역 사립대 관계자는 “상위권 학생들의 생기부엔 학교에서 실제 어떤 활동을 했는지 구체적인 내용이 쓰여 있다”면서 “챗GPT로 분량만 늘린 생기부는 좋은 평가를 못 받는다”고 말했다.

교사들은 “없는 일을 꾸며 내는 게 아니고, 생기부를 더 풍성하게 만들기 위해 쓰는 건 괜찮지 않으냐”고 말한다. 고교 담임이 자기 반 학생과 수업을 맡은 학생들에게 써야 하는 생기부 분량은 모두 10만자에 육박한다. 대전의 고교 교사 박모(25)씨는 “애들마다 1년간 무슨 활동을 했는지, 어떤 과목을 열심히 공부했는지 확인하고 쓰다 보면 하루 5시간씩 한 달 넘게 써야 한다”면서 “챗GPT 프로그램에 학생 특징 키워드를 넣어 기본 분량을 만들고, 거기에 학생의 보고서 내용 등을 추가해 수정하면 시간이 좀 절약된다”고 말했다. 서울 고교 교사 이모(29)씨는 “특징이 없는 학생인데도 다른 학생들만큼 생기부 분량을 안 써주면 학부모 민원이 들어온다”면서 “어차피 매년 ‘생기부 창작 스트레스’를 받고 있는데 챗GPT에 맡기니 편하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