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 학기가 시작된 4일 오후 경기도 수원시 능실초등학교. 낮 12시 40분이 되자 1·2학년 학생 14명이 돌봄교실 2곳으로 들어갔다. 학생들은 서로 이름을 물어보고 맞히는 ‘빙고 게임’을 했다. 다른 교실에선 1학년생 1명이 강사에게 ‘책 읽기 수업’을 받았다. 이 학교가 올해부터 방과 후 돌봄 서비스 질을 높이려고 개설한 ‘초1 맞춤형 프로그램’이다. 강사가 그림책에 나오는 토끼에 관해 설명하자 아이가 색연필을 꺼내 토끼 모습을 그렸다. 원래 19명이 수업을 신청했는데, 입학식 날이라 참석한 학생은 1명뿐이었다. 그래도 수업은 예정대로 진행됐다. 학생이 1명이라도 돌보겠다는 것이다.
이날 능실초를 포함해 전국 2700여 학교에서 ‘늘봄학교’가 본격 시행됐다. 정부가 저출생 극복을 위해 추진한다. 늘봄학교는 맞벌이 등으로 방과 후에 아이를 돌보기 어려운 부모들을 위해 학교에서 아침 7시부터 저녁 8시까지 돌봐주는 제도다. 올 1학기 2741곳에서 먼저 시작하고, 2학기부터는 모든 초등학교(6175곳)로 확대된다.
능실초엔 이날 183명이 입학했다. 첫날이라 신입생 대부분은 오전에 입학식을 마치고 부모와 집으로 갔다. 부모 사정으로 함께 하교하지 못한 아이들이 학교에 머물렀다. 입학식 날부터 늘봄학교가 열린 덕분이다.
이전에도 초등학교에 ‘돌봄교실’이 있었다. 하지만 수요는 많은데 공급이 부족해 작년엔 대기 아동이 전국적으로 1만5000명이나 됐다. 저소득층과 맞벌이 등 우선순위를 정해 학생을 받아야 했다. 선발되지 못한 학생들은 어쩔 수 없이 ‘학원 뺑뺑이’를 돌아야 했다. ‘늘봄학교’는 자격 제한 없이 학부모가 원하면 학생을 모두 받아준다. 저학년생에게 한글, 미술 등 맞춤형 수업을 2시간씩 무료로 해주는 게 특징이다.
능실초도 매일 ‘초1 맞춤형 프로그램’을 진행한다. 독서, 보드게임, 공예 등 아이들에게 인기 있는 프로그램으로 구성했다. 1학년은 정규 수업이 끝난 후에 바닥에 온돌이 깔린 교실에서 편안하게 지낼 수 있다.
능실초도 작년까지 매년 30~40명씩 돌봄 대기자가 있었다. 이들은 어쩔 수 없이 학원에 가야 했다. 하지만 올해 정부가 늘봄학교를 도입하면서 돌봄교실을 2개에서 4개로 늘렸다. 희망자 74명 모두 돌봄 서비스를 이용할 수 있게 됐다. 능실초 관계자는 “개학 첫날이라 신청한 학생 일부만 돌봄교실을 이용했는데, 시간이 지나면 이용 학생이 늘어날 것”이라고 말했다.
교육부는 학기 중에도 돌봄 서비스를 원하는 학부모들을 위해 시설을 계속 확장한다는 방침이다. 신청자가 많은 학교에선 학교 교실뿐 아니라 도서관 등 인근 시설을 ‘지역 거점형 돌봄교실’로 활용하게 할 예정이다. 인천시교육청은 최근 주상 복합 상가에 ‘거점형 돌봄교실’을 열기도 했다. 이렇게 학교 밖에 있는 돌봄교실은 여러 학교 학생들이 공동으로 이용할 수 있다. 경기도교육청 관계자는 “학기 중 수요 증가에 대비해 유치원이나 어린이집을 활용하는 것도 고려하고 있다”고 밝혔다.
늘봄학교는 4일 전국에서 시작됐지만, 혼란을 겪는 학교도 적지 않다. 늘봄학교 운영 학교에 자녀를 보내는데도 안내를 못 받았다는 학부모도 있다. 운영 학교가 2월에 확정돼 준비 기간이 부족했다는 지적도 제기된다. 한 초등학교 관계자는 “시간이 촉박해서 저번 주에야 겨우 강사를 구했다”고 말했다. 일부 학교에선 학부모 수요 조사에서 희망자가 적다는 이유로 ‘아침 7시 돌봄’이나 ‘저녁 8시 돌봄’은 하지 않는 경우도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