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업과 대학이 교육과정을 만들고 학생을 직접 가르치는 등 혁신적인 ‘자율형 공립고(자공고)’ 40곳이 올해 문을 연다. ‘지역 명문고’를 대폭 늘려 인구 유출을 막고 지역 기업에 인재도 공급하겠다는 것이다.
29일 교육부는 전국 9개 시도에 있는 일반고 40곳을 ‘자공고 2.0′으로 선정했다고 밝혔다. 교육부와 지방자치단체는 학교 한 곳당 매년 2억원씩 5년간 예산을 투입한다. 현재 일반고 1년 예산은 3억~5억원 수준인데, 여기에 추가로 지원하는 것이다.
자공고는 이명박 정부 때인 2009년 도입됐다. 일반고보다 교육과정과 교사 인사에 자율성을 준 학교로 현재 전국에 31곳 있다. 하지만 일반고와 큰 차별성이 없어 지역의 학생들은 자사고나 특목고로 몰리는 상황이다. 이에 현 정부는 기존 자공고보다 자율성을 대폭 확대한 ‘자공고 2.0′을 추진하는 것이다. 새로운 자공고는 대학·기업·공기업 등 다양한 기관과 협약을 맺고, 교육과정도 자사고나 특목고 수준으로 자유롭게 운영할 수있다.
이번에 선정된 40곳 중 38곳은 비수도권에 있다. 전남이 11곳으로 가장 많고, 광주·대구·경북(5곳)이 그다음이다.
다양한 기관과 협력해 ‘지역 산업 맞춤형 인재’를 키우는 곳이 많다. 대표적인 학교가 경북 포항고다. 포항고는 포항에 있는 LG에너지솔루션, 에코프로BM 등 기업과 함께 배터리, 바이오·헬스 과목을 개발하기로 했다. 포스텍과 한동대 교수 자문을 거쳐 ‘과학 심화형 탐구 학습 과정’도 개설한다. 학생들은 포스텍에 있는 ‘아시아태평양이론물리센터’ 등을 방문하고 연구 프로젝트를 함께 수행한다. 교육부 관계자는 “포항고는 과거 비평준화 시절 자사고인 포항제철고와 경쟁하는 명문고였지만, 원도심의 인구 감소 등으로 학생 수가 줄어든 상황이었다. 차별화되고 질 높은 교육과정으로 다시 명문고로 키운다는 계획”이라고 말했다.
광주고는 전남대, 조선대와 같이 과학·공학 심화 수업 과정을 개발해 운영한다. 대학교수와 석·박사 연구원을 강사로 초빙하고, 대학 실험실을 광주고 학생들이 이용할 수 있게 할 예정이다. 사범대 학생들은 광주고의 기초 학력이 부족한 학생들의 ‘학습 코치’가 될 예정이다. AI(인공지능)·소프트웨어 등 첨단 산업 관련 동아리도 다양하게 운영한다.
부산 기장군의 부산장안고는 한국수력원자력과 협력하기로 했다. 원자력 과학 중점 교육 과정을 만드는 등 ‘과학 명문고’로 키우겠다는 것이다. 부산 교육청 측은 “장안고는 부산 도심부에서 멀리 떨어진 기장 농어촌 지역에 있어 학생은 물론 교사들까지 가길 꺼렸다”며 “특화된 교육 프로그램으로 학생들을 끌어오려고 한다”고 했다.
나주혁신도시에 있는 봉황고와 나주 원도심에 있는 나주고·매성고는 학교 3곳이 연합해 지역 산업에 특화된 교육과정을 공동으로 만든다. 나주고는 한국전력·한국에너지공대와 ‘전력·반도체’ 과정을 만든다. 매성고는 한국인터넷진흥원·동신대와 ‘정보 보안’ 과정을 개발한다. 봉황고는 한국콘텐츠진흥원·나주교육진흥재단과 ‘K콘텐츠’ 교육과정을 만든다. 세 학교는 각자 개발한 교육과정을 가르쳐 지역 기업 취업에 활용할 수 있게 할 계획이다.
경북 안동여고는 국립안동대와 손잡고 ‘고교 K인문학’ 과정을 도입한다.
교육부는 자공고가 ‘교장 자격증’이 없는 기업인 등도 교장으로 뽑을 수 있도록 규제를 풀어줄 예정이다. 또 교장이 교사를 100% 초빙할 수 있게 한다. 현재 일반고는 교육청이 교사를 배정한다. 그런데 자공고는 교장이 원하는 교사를 콕 집어서 데려올 수 있게 한다는 것이다.
자공고 23곳은 오는 3월 신학기부터 일반고에서 자공고로 전환된다. 나머지 17곳은 오는 2학기부터 자공고로 운영한다. 김연석 교육부 책임교육정책실장은 “자공고 40곳을 부모들이 자녀를 보내고 싶은 명문고로 만들면 장기적으로 지역 소멸 위기 극복에도 큰 도움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