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북 포항의 포스텍(포항공대)이 국내 대학 역사상 최대 규모의 투자를 받는다. 포스텍은 올해부터 10년간 총 1조2000억원의 투자를 받아 세계 톱(top) 대학들과 경쟁하는 대학으로 거듭난다는 계획이다. 31일 본지 취재를 종합하면, 포스텍 학교법인은 30일 이사회를 열고 이런 내용의 ‘포스텍 2.0: 제2 건학 추진 계획안’을 통과시켰다.
포스텍은 2033년까지 총 1조2000억원의 투자를 받아 교육 환경과 인프라를 대폭 혁신하기로 했다. 최근 교육부의 ‘글로컬 대학′ 사업에 선정돼 정부와 경북도에서 각각 1000억원씩을 받고, 학교법인도 2000억원을 내기로 한 상태였다. 이렇게 확보한 4000억원에 더해 학교법인이 6000억원의 추가 투자를 결정한 것이다. 학교 측은 기부금을 통해 2000억원을 더 모으기로 했다. 확정이 안 된 기부금 2000억원을 제외해도 포스텍은 1조원을 확보한 것이다. 국내 대학이 단기간에 1조원 투자를 약정받은 것은 전례가 없다.
포스텍은 포스코 주식 2%와 부동산, 계열사 주식 등 2조원이 넘는 자산을 보유하고 있다. 그동안 이사회는 이런 자산의 처분을 허용하지 않았다. 포스텍 측은 “AI 시대에 세계 정상급 대학과 경쟁하려면 대규모 투자가 필수”라며 “이번 이사회 결정으로 포스텍은 1986년 건학 이후 38년 만에 ‘제2의 건학’을 이뤄낼 것”이라고 밝혔다.
포스텍이 1조원을 가장 먼저 투자할 분야는 ‘인재 초빙’이다. 우수 교수 채용에 1036억원, 교원 경쟁력 강화에 1124억원 등을 투입한다. 우수 교수는 정년을 70세까지 보장한다. 현재 교수 정년은 65세다. 50~55세인 교수를 심사해서 연구 성과가 우수하면 20년 더 연구할 수 있도록 환경을 만들겠다는 것이다. 또 세계적 석학을 데려오기 위해 ‘파격적 성과급 제도’도 도입할 예정이다.
포스텍은 학부와 대학원 교육 혁신에 444억원, 국제화 등에 736억원을 투자한다. 학부생 전원에게 1인당 1000만원을 지급해 다양한 경험을 쌓도록 한다. 예를 들어 학생들은 이 돈을 미국에서 열리는 세계 최대 IT 박람회 CES에 참가해 신기술을 익히는 데 사용하거나 창업 자금으로 쓸 수 있다. 대학원생에게도 100만원의 입학 장려금을 준다. 외국인 인재를 유치하기 위해 ‘외국 영재 유치 전형’을 도입하고, 영어 수업을 확대하는 등 외국인 우수 학생 지원도 강화한다. 지금도 포스텍의 ‘학생 1인당 교육비’는 전국 사립대 중 가장 높은 수준인 연간 1억2000만원이다. 1조원 투자를 통해 교육 인프라를 세계적 수준으로 만들겠다는 계획이다.
‘미래형 캠퍼스 타운’도 조성하기로 했다. 이를 위한 시설 건립에 5377억원, 주거 환경 개선에 1666억원을 투입한다. 구체적으로 교육동, 연구동, 첨단 제조 혁신테스트 베드센터 등 교육·연구를 위한 4개 동을 지을 계획이다. 신임 교수를 위한 교수 아파트(120가구)와 학생 생활관도 세우기로 했다. 교직원이 일·가정 균형을 맞출 수 있도록 ‘직장 어린이집’도 짓는다. 어린이집은 희망하는 모든 교직원 자녀를 수용하겠다는 계획이다. 학생들에게 좋은 교육과 연구 환경을 주기 위해서 생명과학관, 대학본관, 공학동·실험동 등의 리모델링도 추진하기로 했다.
교육부는 포스텍 법인의 투자가 정부의 ‘글로컬 대학′ 사업과 함께 시너지 효과를 낼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글로컬 대학 사업은 지역 대학을 세계적 수준 대학으로 만들기 위해 대학 한 곳당 5년간 1000억원을 투자하는 사업이다. 저출생으로 학생이 급감하는 상황에서 혁신 의지가 있는 대학에 재정을 집중 투자해 경쟁력 있는 대학을 만들겠다는 취지다. 작년 11월 포스텍 등 대학 10곳이 선정됐다. 교육부 관계자는 “포스텍 사례는 정부와 대학, 지역이 손잡고 과감한 투자를 통해 세계적 수준의 대학을 만드는 모델이 될 것으로 본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