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러스트=박상훈

29일 오후 서울 중구 서울시 청소년 상담 복지센터 전화 상담실. 10대 학생이 친구 문제로 고민이 크다며 전화를 걸었다. 상담사는 사연을 끝까지 듣고 “마음이 좋지 않았겠어요. 속상했을 텐데, 그때 심정이 어땠어요”라고 물으며 20여 분간 학생의 이야기를 경청했다. 최근 ‘마음의 병’을 앓는 1020세대가 급증하면서 서울시가 운영하는 청소년 상담 복지센터엔 하루 120여 건의 전화·채팅 상담이 들어오고 있다. 상담사 60명이 마음이 아픈 10대와 20대에게 24시간 상담을 해준다.

상담사 A씨는 “과거엔 우울과 불안을 호소하는 청소년이 대다수였는데 요즘은 자해나 자살 직전에 전화를 해오는 경우가 많아졌다”고 했다. 전화를 받으면 울먹이는 목소리로 “화장실에 번개탄을 피워놨어요” “지금 한강 다리 위에 있는데 죽고 싶어요”라고 말한다는 것이다. A씨는 “이런 전화를 받으면 전문가인데도 가슴이 철렁 내려앉는다”며 “조심스럽게 공감해주며 마음을 가라앉게 한 뒤 경찰과 협조해 (위기의) 학생을 구한다”고 했다. 작년 실제 경찰이 출동한 상담 전화만 100건이 넘는다. 고민이나 불안 상담을 넘어 자해·자살 위기를 호소하는 청소년은 정신과 등 전문가의 치료를 받아야 한다.

학생들은 전화로 “아무 이유 없이 화가 나고 학교에서 친구들과 매일 싸운다, 이런 내 모습에 또 화가 나고 그래서 죽고 싶다” “나는 아무것도 할 수 없는 것 같아 괴롭다” “세상이 정의롭지 않다”고 말한다. “선생님도, 지나가는 사람들도 다 밉게 보이고 지하철에서 부딪힌 사람과 싸우기도 했다”는 말도 한다. 상담사 B씨는 “(아이들은) 혼자 다양한 방법으로 노력하고 있지만 해법을 찾지 못하고, 주변에서 도와주는 사람이 없어 막막해하는 경우가 많다”고 말했다.

서울의 청소년 상담 복지센터 25곳의 정신 건강 상담은 2018년 16만2882건에서 2022년 31만7940건이 돼 4년 새 두 배 가까이로 늘었다. 2018년엔 청소년들이 대인 관계 문제(26.1%)로 상담을 가장 많이 했고, 우울증·자해 등 정신 건강(20.5%)은 둘째였다. 그런데 2022년엔 정신 건강이 27.2%로 가장 많았다. 작년 5월 기준으로 31%까지 늘었다.

상담사 C씨는 “작년 유명인들의 극단적 선택 이후 ‘나도 죽고 싶다’는 전화가 몰려왔다”고 했다. ‘베르테르 효과(극단 선택의 모방)’가 실제 있다는 것이다. 당시 소셜 미디어에는 “학원에 있다가 기분이 안 좋아 손목을 그었다”는 식의 자해 경험담과 ‘인증 사진’이 줄줄이 올라왔다. 마음의 병이 깊은 학생 중에는 상담 전화를 걸어 폭언을 하는 경우도 있다. B씨는 “답변이 마음에 들지 않으면 ‘네가 그러고도 상담사냐’는 식으로 분노를 쏟아내기도 한다”고 했다. 서울 상담 센터로 걸려온 극단 선택 관련 상담도 2018년 2만2187건에서 2022년 4만138건이 돼 두 배쯤으로 늘었다.

한 상담사는 “코로나 시기를 거치며 청소년들의 정신 건강이 많이 악화한 것 같다”고 말했다. 친구들과 대면하지 못하고 고립된 채 소셜 미디어 등에 빠지면서 우울이나 불안을 밖으로 발산할 기회를 잃었다는 분석이다. 코로나가 끝나고 친구들과 다시 만났을 때 “소통하는 것이 큰 스트레스”라고 말하는 청소년들이 늘었다고 한다. 청소년들이 마음을 터놓고 상담할 곳이 부족한 것도 문제다. 일선 학교에는 ‘위 클래스’로 불리는 상담 센터가 있다. 그러나 심적 고통을 겪는 학생들이 ‘위 클래스’에 자주 가면 친구들 사이에서 ‘이상한 아이’로 낙인찍힐까 봐 방문을 꺼린다고 한다. 학교 내에서 아픈 마음을 상담받기 힘든 학생들이 서울시 청소년 상담 복지센터 같은 공공 센터를 방문한다. 상담 센터 관계자는 “고교를 졸업하고도 찾는 20대들이 늘어 최근엔 중·고생보다 대학생 상담자가 더 많은 상황”이라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