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러스트=이철원

고3 A군은 지난달 아파트 4층에서 뛰어내렸다. 수능으로 의대에 가려 했지만 올해 원하는 점수를 못 받았다. 그런데 평소 모의고사 점수가 낮던 친구가 수시로 의대에 들어가자 극단적 행동을 한 것이다. A군은 “나보다 공부를 못했던 친구는 의대 가는데 나는 못 가는 게 너무 억울하다”고 했다. ‘대학이 전부가 아니다’라는 정신과 의사 말에도 귀를 막았다. 중학생 B양은 약물 과다 복용 등 자해·자살 시도로 최근 정신병원에 입원했다. 학교 친구들이 온라인과 오프라인에서 따돌렸기 때문이라고 한다.

지금 교육 현장에선 ‘마음의 병’을 앓고 있는 청소년들 문제가 심각한 수준이다. 2022년 정신병원에 입원한 1020세대는 1만6819명으로 전체 입원자의 22.2%를 차지했다. 작년 상반기에만 1만1016명의 1020세대가 정신 병동에 들어갔다. 계속 증가하고 있다. 2022년 자해·자살로 응급실에 간 환자가 4만3268명인데 이 중 1만9972명(46.2%)이 10대와 20대였다. 보건복지부가 국민의힘 백종헌 의원실에 제출한 자료에 따르면 2022년 우울증 등으로 치료받은 환자가 2019년(코로나 전)에 비해 가장 많이 늘어난 연령대로 20~29세(51%)와 10~19세(46.9%)가 꼽혔다.

그래픽=이철원

대전의 고교생 C양은 지난해 학교에서 자신의 손을 칼로 벴다. 교사에겐 “누가 나를 죽여줬으면 좋겠다”는 말까지 했다. 학교는 “중증 우울증이 의심된다”며 부모에게 알렸다. 그러나 C양 부모는 “사춘기는 누구나 겪는다” “우리 애는 문제없다”며 정신과 치료를 거부했다. 일선 학교와 교사는 자살 고위험군 등으로 분류된 학생 보호자에게 병원 치료를 권고하고 있다. 그러나 이 중 20%는 “집에선 문제없다” “사춘기엔 다 그런다”며 권고를 무시하고 있다. 정신과 치료에 대한 편견과 거부감이 아이들의 병을 더 키우는 것이다.

교육부는 지난해 초 1·4, 중1, 고1 등 4개 학년 173만1596명의 학생을 대상으로 심리 검사를 했다. 그런데 2만2838명이 ‘자살 위험군’으로 분류됐다. 초·중·고 12개 학년으로 계산하면 자살 위험군이 7만명에 달한다는 계산이 나온다. 4개 학년 중 상담·치료가 필요한 ‘관심군 학생’도 8만2614명이었다. 12개 학년으로 환산하면 25만명의 학생이 치료 대상이라는 뜻이다. 전문가들은 “검사에서 드러나지 않은 자살 위험군과 관심군 학생은 더 많을 것”이라고 했다.

D(19)양은 최근 손목에 바코드 모양 줄을 그은 채 병원에 왔다. 평소 부모님과 사이가 안 좋은 D양은 밤에 혼자 있을 때 우울한 마음이 들면 자해 충동을 이기지 못하고 몸에 상처를 낸다. 한번은 팔뚝에 주삿바늘을 찔러 피를 뽑는 자해를 한 적도 있다. 홍현주 한림의대 교수는 “청소년들은 처음엔 조금씩 피를 내는 정도로 자해를 하다가, 점점 강도가 세져서 깊게 찔러 꿰매야 할 정도로 하기도 한다”고 말했다.

1020세대가 ‘마음의 병’을 앓는 이유는 다양하다. 신의진 연세대 의대 소아정신과 교수는 “입원한 학생들과 상담하다 보면 대다수는 가정 양육에 문제가 있다”며 “번듯한 전문직 부모도 성적으로 아이를 닦달하고 학원만 돌리는 게 ‘정서적 학대’가 될 수 있다는 걸 모르더라”고 했다. 정찬호 마음누리학습클리닉 원장은 “요즘 아이들은 물질적으로는 풍요롭고 여러 사교육을 받아 할 줄 아는 건 많지만, 부모 기대에 부응해야 한다는 압박도 매우 큰 세대”라고 했다. 온라인 괴롭힘과 따돌림도 10대들 마음에 상처를 준다.

온라인에 자해·자살 관련 정보가 넘쳐 나는 것도 문제다. 특정 소셜미디어에는 청소년들의 자해 경험담과 사진이 실시간으로 올라온다. 김동욱 대한정신건강의학과 회장은 “청소년들이 소셜미디어에 자해한 증거를 올리며 소속감이나 동질감을 느끼는 문화까지 번지고 있다”고 했다.

배승민 가천대 소아정신과 교수는 “학교 내 상담 기관인 ‘위클래스’는 현 상황에서 학교 폭력 등 눈에 보이는 문제만 집중할 수밖에 없다”면서 “지금보다 다양한 측면에서 청소년의 마음을 살피고 상담하는 기능을 키워야 한다”고 했다. 김재원 서울대병원 소아청소년정신과 교수는 “미국 소아청소년과학회는 만 12~18세 소아청소년들이 매년 1회 우울증 선별 검사 받도록 권고하고 있다”며 “우리나라도 연 1회 정도 검사 받을 수 있게 하고 위험군 아이들이 입원할 수 있는 병동도 늘려야 한다”고 조언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