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업준비생과 대학생들이 24일 오후 경기도 수원 영통구 SPTA 반도체 교육원에서 방진복을 입고 공정실습을 하고 있다. /박상훈 기자

“이 단계에서는 웨이퍼 컨트롤이 가장 중요합니다. 이론 수업 때 배운 공정 과정을 능동적으로 떠올리며 보세요.”

지난 24일 오후 2시, 수원시 영통구 한 건물 지하에 있는 반도체공정기술교육원(SPTA) 실습실. 수강생 18명이 이종욱 SPTA 대표의 설명을 들으며 웨이퍼 작업 시범을 주시하고 있었다. 수강생들도 반도체 제작 공정 현장과 같은 방진복과 위생모자, 마스크, 신발까지 갖추고, 10초에 걸친 에어샤워까지 마친 상태였다. 이날 이들의 실습 코스는 ‘포토 공정’. 웨이퍼에 감광액(포토레지스트리)을 도포하고, 레이저로 회로를 그리는 반도체 공정 과정을 직접 체험하는 것이다.

이들이 참여한 SPTA 실습은 반도체 기업 인턴이나 관련 협회의 교육 프로그램이 아니다. 취업 준비생들이 반도체 제작 과정 일부를 직접 체험하기 위해 돈을 내고 참여하는 ‘공정실습 학원’에 가깝다. 이날 SPTA 실습에 참여한 대학생 김모(24)씨는 “반도체 기업 취업을 준비하는 주변 사람들이 모두 사설 학원 공정실습을 한 번은 수강하는 것 같아 왔다”며 “공정 과정을 실제 눈으로 보니 책으로 배운 내용이 더 잘 이해된다”고 했다.

최근 반도체 대기업 취업 경쟁이 치열해지면서, 이 같은 사설 반도체 교육원을 찾는 취업준비생이 크게 늘고 있다. 실습 경력도 반도체 취업 준비생들 사이에서 ‘주요 스펙’으로 자리매김해서다. 사설 기관 실습 프로그램 수강신청조차 오픈런을 해야 할 정도다. 취준생이 몰리는 이 ‘반도체 공정실습’은 짧게는 2일, 길게는 7일 동안 진행되는 일종의 실무 교육 코스다. ‘포토공정’ ‘패터닝 공정’ 등 반도체 제작 공정 단계별로 코스가 구성되는 게 일반적이다. 관련 이론을 배우고, 실무 장비를 직접 만져보는 것이다. 기간이 짧아 ‘실습’보다는 ‘체험’에 가깝다는 평이다.

‘실습 공정’은 민간의 취업컨설팅·구인구직 기업이 아주대·연세대·성균관대 등 교육·연구용 반도체 시설을 갖춘 대학과 연계해 해당 운영하는 경우가 많다. 2020년에는 SPTA와 같이 별도의 클린룸 및 설비를 갖춘 반도체 제조 공정 실습 교육 기관까지 생겼다. 일종의 반도체 실습 학원인 셈이다. 공정실습 비용은 제조 공정 과정과 기간에 따라 20만~100만원을 오간다. 이마저 수강신청 경쟁이 치열하다. SPTA는 실습에 참여한 학생 수가 개원 3년 만에 5700명을 넘었을 정도다.

반도체 관련 협회가 제공하는 무료 공정 실습 프로그램도 있지만, 경쟁률이 치열하다. 반도체산업협회는 “가장 최근 실습 경쟁률이 15대 1을 넘었다”고 했을 정도다.

취업준비생과 대학생들이 24일 오후 경기도 수원 영통구 SPTA 반도체 교육원에서 방진복을 입고 공정실습을 하고 있다. /박상훈 기자

취준생들이 ‘공정실습’으로 몰리는 이유는 그만큼 실전 경험 스펙이 절실해서다. 반도체 대기업의 ‘인턴 사원’ 채용문은 정식 직원 채용문만큼 좁다. 인턴에 합격해도 반도체 공정 현장을 선뜻 보여주지도 않는다. 이 때문에 취준생들은 사설 기관 공정실습이라도 수강하고, 반도체 공정 현장을 이해하려고 한다. 이를 자기소개서나 면접에서 활용하면 평소에 직무에 관심이 높았다는 사실을 보여주기에도 편하다.

인천 한 공대를 졸업하고 지난해 반도체 대기업에 취업한 함모(26)씨는 “전공이 반도체와 무관해 공정실습을 들었는데 면접에서 직무 관련 지식이나 경험을 어필하는 데 큰 도움이 됐다”며 “자기소개서·면접 퀄리티가 올라간다”고 했다. 반도체 전공자인 대학생 임모(23)씨도 “원하는 분야 연구실로 배정받기 어렵고 대학 프로그램은 정보 구하기도 어렵다”며 “돈이 들더라도 원하는 과정 수업을 선택하는 게 편하다”고 했다.

하이닉스·삼성전자 등에서 일했던 이종욱 SPTA 대표는 “회사는 반도체 제조 공정에 대한 이해도가 높고 경험이 있는 신입 사원을 뽑고 싶어 하는데 정작 취준생은 현장을 접할 기회가 별로 없다”며 “이런 모순 때문에 교육원을 설립한 뒤 호응이 컸다”고 했다.

다만 업계에선 학생들이 공인 기관의 정식 프로그램이 아닌데도 높은 수강료를 내고 실습에 뛰어드는 현실이 안타깝다는 반응도 나온다. ‘공정 실습’ 대부분이 사실상 반도체 학원의 체험 학습 프로그램에 가까운데 비용은 고액이기 때문이다.

시간이 지날수록 “나만 실습 경력이 없을 것 같아 불안하다”며 수강을 택하는 취준생이 느는 것도 문제다. 반도체산업협회 관계자는 “학생들이 그나마 비전 있는 반도체 기업으로 몰리면서 경쟁이 치열해지니, 스펙을 한 줄이라도 더 쓰려고 큰 돈을 부담하는 것 같다”며 “협회 입장에선 대학에 개설된 반도체 전공 수업을 하나라도 더 듣는 걸 추천하고 싶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