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의 ‘여성학’ 강의에서 ‘젠더’라는 말을 빼고 여성과 남성을 모두 강조했더니 인기 수업으로 변신한 사례가 나왔다.

서울대 역사학부의 교양 수업 ‘성과 사랑의 역사’는 재작년까지 ‘서양사 속의 젠더’라는 이름으로 운영됐다. 서양사를 젠더 관점에서 바라본 수업으로, 페미니즘과 여성 역사 등 여성학 내용을 주로 다뤘다. 1990년대 후반 ‘여성사’라는 이름으로 개설해 2016년 ‘서양사 속의 젠더’로 한 차례 이름을 바꿨다. 그런데 갈수록 수강생이 급감했다. 페미니즘과 여성학 강의에 대한 학생들 관심이 떨어졌기 때문으로 풀이됐다. 2017년 50명이었던 수강생은 2021년엔 4명까지 줄어 폐강 위기에 처했다.

수업을 담당하던 기계형 교수는 “가뜩이나 젠더 갈등이 있는 상황에서 ‘젠더’라는 이름을 내건 수업에 대해 남학생들이 ‘여성만을 위한 수업’이라는 인식으로 거부감을 갖는 것 같다”면서 “변화가 필요하다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기 교수는 우선 강의 이름에서 ‘젠더’를 뺐다. ‘젠더’를 전면에 내걸면 남학생들이 내용을 들여다보지도 않고 외면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수업 초점도 ‘젠더(gender)’에서 ‘섹슈얼리티(sexuality)’로 바꿨다. 젠더가 남녀의 차이를 강조한다면 섹슈얼리티는 제도나 관습에 따른 사회적 요소까지 포괄한다. 이전처럼 역사 속에서 여성이 겪은 억압 등을 다룬다. 동시에 남성들의 역할도 담았다. 또 학생들이 직접 성과 사랑에 대한 자료를 찾고 전시회를 여는 등 수업 방식도 다양화했다. ‘피임’ 전시회를 학생들이 개최하기도 한다.

이렇게 수업을 바꾼 첫해인 작년 1학기 수강생이 17명으로 반등했다. 소문이 나더니 작년 2학기와 올 1학기엔 수강생이 80명 넘는 인기 강좌로 탈바꿈했다. 이전 ‘서양사 속의 젠더’ 시절엔 인문학부 여학생들이 주로 들었지만, 지금은 의대·약대 등 다양한 전공 학생들이 골고루 듣는 수업이 됐다. 수강생의 70%가 남학생이라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