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ΟΟ자동차 기금 교수’ ‘ΟΟ보험 기금 교수’.
앞으로 수년간 고려대에는 이렇게 기업 이름이 붙은 교수직이 200개 생긴다. 기업이 원하는 분야에서 채용하면 인건비는 기업 기부금으로 대는 정규 교수직이다. 대학은 사회 수요가 많은 첨단 분야 지식을 학생들에게 가르치고, 기업은 전문가 지식을 경영에 활용할 수 있다. 신개념 ‘산학 협력’이다. ‘기금 교수’ 제도는 지난 3월 취임한 김동원(63) 고려대 총장이 대학 위기를 타개하고 사회 수요에 맞는 인재를 키우기 위한 핵심 정책으로 추진하고 있다. 김 총장은 취임 100일을 맞은 지난 8일 본지 인터뷰에서 “대학 위기는 사회 수요와 동떨어진 교육을 하기 때문”이라며 “사회가 원하는 인재를 키우겠다”고 말했다. 또 30대 이상 성인을 위한 생애 주기 교육과 비대면 강의를 활성화하고, ‘글로벌 석학 네트워크’를 꾸려 복합적인 사회 문제를 해결하는 연구를 하겠다고 했다.
-’기금 교수’를 뽑겠다고 했는데.
“과학 발전 속도가 빨라지면서 지식이 쓸모 있는 기간이 매우 짧아졌다. 예전에는 직업 하나로 40년을 먹고살았지만, 이젠 7~8년밖에 버틸 수 없다. 새로운 학문을 계속 배워야 하는데, 그러려면 교수가 많이 필요하다. 그런데 대학은 오랜 등록금 동결로 교수를 새로 뽑을 여력이 없다. 그래서 기업의 기부금으로 ‘기금 교수’를 200명까지 채용하려고 한다. 기업은 교수 1명당 10억원씩 기부한다. 기업 반응이 좋아 이미 40명 뽑을 만큼 돈을 확보했다.”
-기업은 어떤 이득이 있나.
“예컨대, 보험은 중요한 분야지만 학문적 역사는 짧아 전공 교수가 적다. 기업 입장에서는 도움받을 학자가 부족하다. 그렇다고 그런 인재를 연봉 주고 뽑기엔 부담스럽다. 그만큼 활용하지는 못하기 때문이다. 고려대가 그런 교수를 뽑으면 자문 교수로 활용하고 같이 연구도 할 수 있다. 보험, 2차 전지, 로봇, 방위산업 등 다양한 기업 수요가 있다.”
-실용적 대학 교육을 강조하는데.
“지금 대학 교육은 현실과 많이 동떨어졌다는 얘기를 많이 듣는다. 기업 CEO들을 만나면 ‘대졸자 뽑아도 당장 써먹을 수 없다’고 불만이 많다. 이제 대학이 사회가 원하는 인재를 키우지 않으면 어려워질 거다.”
-급변하는 사회 환경 속에서 고려대는 어떤 인재를 키워야 하나.
“이미 우리 대학엔 공부를 잘하는 학생들이 온다. 이들에게 똑똑해져서 1점 더 받으라고 하는 건 큰 의미가 없다고 본다. ‘크게 생각하고(Think big), 큰 목표를 가졌으면(Aim high)’ 좋겠다. 너무 일찍 진로를 정하지 말고 다양한 경험을 하고 많은 사람을 만났으면 좋겠다.”
-’의대 쏠림 현상’이 심한데.
“직업 안정성을 생각하는 요즘 세대가 의대로 몰리는 것이다. 의대에도 인재가 필요하지만, 큰 과학자와 교수도 배출돼야 사회 전체에 도움이 된다. 인재들이 다 의대에 가면 사회가 발전할 수 없다. 정부가 교수와 대학에 지원을 안 해준 탓이 크다고 본다. 과거엔 가장 우수한 학생이 교수가 되고 과학자가 됐는데 지금은 의대로 가지 않나.”
-정부가 대학 등록금을 15년간 동결해 대학들이 재정난을 호소하는데.
“우리나라 초·중·고 1인당 공적 교육비는 세계 1등 수준인데, 대학은 OECD(경제협력개발기구) 평균에도 못 미친다. 이렇게 극단적으로 대비되는 나라가 없다. 고려대 평균 등록금이 연간 800만원, 한 달 65만원이다. 강아지 유치원도 한 달 100만원 한다. 미국 사립대들은 등록금이 연간 1억원 가까이 된다. 우리와 10배 차이가 나는데, 어떻게 경쟁이 되겠나. 대학 위기가 곧 국가 위기가 될 것이다.”
-등록금을 인상할 생각은 없나(법적으로 대학은 직전 3개년 물가 상승률 평균의 1.5배까지 등록금을 올릴 수 있다. 하지만 교육부는 등록금을 올리는 대학에 국가 장학금 지원을 안 하는 등 페널티를 준다).
“학생들 사이에 (경제적) 양극화가 심하기 때문에 그건 어렵다. 그보다 정부가 공적 지원을 더 크게 늘려야 한다. 지금 81조원이나 되는 지방교육재정교부금을 초·중·고교뿐 아니라 대학에도 지원하는 게 제일 현실적인 해법이라고 생각한다.”
-저출산으로 학령인구 감소 문제가 심각하다.
“싱가포르 대학들은 이미 ‘생애 주기 교육’으로 많이 바꿨다. 대기업 직원들을 싱가포르국립대에 보내 교육을 시키는 식이다. 고려대도 전문 대학원 등을 확대해 30대 이상 성인들을 위한 교육과정을 늘리고 있는데 앞으로 더 그쪽으로 가야 한다. 또 현재 8% 정도인 외국인 학생과 외국인 교수 비율을 30%까지 높이려고 한다. 비대면 강의도 더 활성화해서 국내외 학생들이 입학할 수 있게 하겠다. 이 세 방법을 통해 대학 위기를 돌파하는 사립대 모델을 만들어보겠다.”
-고려대가 2025학년도 입시에 ‘논술’ 전형을 7년 만에 부활시켰는데.
“4차 산업혁명 시대엔 새로운 걸 배우는 학습 능력, 문제 해결력, 소통 능력이 중요하다. 그런 걸 테스트하려면 논술이 가장 적합한 방법이다. 수능이나 면접으론 알기 어렵다. 구글에서 직원 뽑을 때 ‘뉴욕시의 보트가 몇 개인지 맞혀봐’ 같은 문제를 낸다고 한다. 깊이 생각하는 문제 해결 능력을 보는 거다. 논술이 그런 능력을 볼 수 있어서 부활시켰다.”
-글로벌 석학 네트워크 ‘K 클럽’을 만든다고 하는데.
“환경·식량 등 지금 인류가 처한 다양한 문제는 세계적인 수준에서 집단 지성을 모아야 해결할 수 있다. 고려대가 주축이 돼 전 세계 우수한 과학자들의 클럽을 만들어서 큰 문제를 같이 해결해 보고자 한다. 고려대가 개교 120주년이 되는 2025년에는 고려대에 다 같이 모일 수 있다. 우수한 다문화 학생 120명을 뽑아서 장학금을 주고 해외 연수도 보내려고 한다.”
김동원 총장은…
고려대 경영학과를 졸업하고 미국 위스콘신대(매디슨)에서 경영학 석·박사 학위를 받았다. 뉴욕주립대 경영대 교수로 재직하다 고려대로 옮겨 노동대학원장, 경영대학장 등을 지냈다. 노사 관계 전문가로 경제사회발전노사정위원회 업종별위원회 위원장 등을 역임했다. 지난 2월 21대 고려대 총장으로 취임했다. 임기는 4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