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대학은 ‘학과=전공’이라는 옛날 공식에 갇혀 있습니다. 융합이 필수인 시대에 학생을 학과에 묶어 놓는 대학이 ‘글로벌 경쟁력’을 가질 수 있겠습니까.”

김중수 글로컬대학위원회 위원장(전 한림대 총장)은 29일 본지 통화에서 “국내 대학 경쟁력이 떨어지고 있는 것은 대학이 교육의 수요자(학생·사회)가 아니라 공급자(대학·교수) 중심이었던 탓”이라며 “현대사회에서는 다양한 분야를 이해하고 연결해서 융합하는 것이 중요한데, 졸업할 때까지 하나의 학과에 갇혀서는 그런 역량을 키울 수 없다”고 말했다. 그는 “대학들이 학과 간 벽을 깨는 작업에 속도를 내야 한다”고 했다.

글로컬 대학은 과감한 혁신안을 내놓은 비수도권 지방대에 5년간 1000억원씩 지원하는 대규모 대학 지원 사업이다. 글로컬대학위원회는 지원받을 대학을 선정, 평가, 관리하는 방식을 결정하는 전문가 기구다. 김 위원장은 “교수가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것이 아니라, 학생이 원하고 사회가 요구하는 역량을 키우는 것이 대학의 역할”이라며 “융합 교육을 하기 위해 변화하지 못하는 대학은 도태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국내 대학은 여전히 학과(부)로 학생을 선발하고 교육하고 있다. 그러나 최근 학제의 기존 틀을 벗어나는 융·복합 시도가 일어나고 있다. 특히 서울대가 중·장기적으로 학과·단과대학 간 장벽을 없애고 모든 신입생을 학과 구분 없이 선발하는 방안을 추진 중이다. 얼마 전 입학 정원을 330여 명 늘려 반도체와 데이터 과학 등을 가르치는 ‘첨단융합학부’를 신설하겠다고 교육부에 신청했다. 김 위원장은 “선진국 대학들이 이미 하고 있는 방식”이라며 “서울대뿐 아니라 여러 지역에서도 각자 잘할 수 있는 특화 분야를 찾아서 융합 인재를 기르려는 시도를 해야 한다”고 말했다. 강원 한림대도 김 위원장이 총장을 지낸 2016~2021년 복수 전공 필수화, 전과(轉科) 자유화, 두 개 이상 학과를 통합하는 체제를 도입한 바 있다. 이화여대도 2018년부터 정시로 들어온 신입생은 모두 인문·자연 등 계열이나 학과 구분 없이 뽑는다. 1학년 때는 교양 과목을 들으면서 전공을 탐색하고 11월쯤 인문·사회·공대·경영대 등 7개 단과대 전공 40개 가운데 하나를 선택한다. 김 위원장은 “앞으로 교수와 대학은 자기 학과 학생을 지도하는 방식에서 벗어나 학생이 자유롭게 전공을 만들어나갈 수 있도록 진로 설계를 뒷받침하는 일에 더 집중해야 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