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 팬데믹으로 가속화한 디지털화, 인구구조 변화 등으로 전 세계는 대전환기를 맞고 있다. 대화형 챗봇 ‘챗 GPT’의 등장은 ‘인공지능(AI)이 대체할 수 없는 인간의 능력은 무엇인지’ 질문을 던지게 했다.
대학은 그 어느 때보다 큰 도전에 직면했다. 과거처럼 강의식 수업, 학문 간 칸막이를 쳐두고 짜인 커리큘럼대로 가르치는 전통적 대학 모델로는 글로벌 무대에서 경쟁력 있는 인재를 길러낼 수 없기 때문이다. 앞으로 학생들이 활동할 사회에선 문·이과 구분 없는 융합 사고력이 필수 역량으로 꼽힌다. 또 주어진 문제를 해결하는 데서 나아가 스스로 문제가 무엇인지 찾아내는 창의성까지 갖추어야 한다. 대학 교육이 수백년간 공고히 구축해온 교육 시스템을 바꾸지 않으면 산업 수요에 대응하지 못하고 그 역할이 흔들리는 시대가 온 것이다. 이런 환경 변화에 앞장서 혁신적 교육 시스템을 구축한 대학들이 있다. 국내 주요 대학들의 혁신 사례를 살펴본다.
가천대는 10년 전 4개 대학을 통합하는 혁신을 이뤄낸 뒤 이젠 교육 혁신에서도 앞장서고 있다. 학생 입학부터 졸업 때까지 학년별로 혁신 로드맵을 갖추고 있다. 신입생 대상 ‘창의Ntree 캠프’에선 2박3일간 팀 활동을 하고, 3학년 대상 ‘P학기제’를 통해선 사업 제안서 쓰기부터 제품 개발까지 다양한 경험을 한다.
건국대는 학생들이 자기주도적으로 꿈을 실현하도록 돕는 ‘드림학기제’와 ‘수퍼 루키’ 등 차별화된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다. 학생들은 본인이 원하는 프로젝트를 수행하고 학점을 딸 수 있고, ‘수퍼 루키’로 선발되면 학교의 전폭적 지원을 받으며 진로와 관련된 활동을 할 수 있다.
국민대는 국내 대학 최초로 올해 ‘인공지능 교수학습 활용 가이드라인’을 선포했다. ‘인공지능 결과물을 비판 없이 그대로 활용하지 않는다’ 등 10항목짜리 윤리 강령이다. 챗GPT 등 인공지능의 장점을 받아들이는 동시에 인문학적 소양 증대 등 새로운 교육 방식을 고민한다는 의지를 담았다.
광운대는 전통적으로 강한 IT 분야를 기반으로 융합 인재를 키우는 데 집중하고 있다. 2020년 산학 협력 중장기 발전 계획을 세우고 민·관·학이 함께하는 다양한 협력 프로그램을 진행 중이다. 외국인 유학생을 위한 ‘올 케어 프로그램’ 등을 마련해 5년 만에 유학생이 7배 가까이 증가했다.
단국대는 반도체·바이오헬스케어·미래자동차 등 신산업 분야 전략적 투자를 통해 4차 산업혁명 시대를 이끄는 학문 분야를 집중 육성하고 있다. 올해 융합반도체공학전공을 신설했으며, 지난달엔 단국차세대반도체사업단을 출범시켰다. 삼성전자 반도체사업부 임직원 등 반도체 전문가 8명도 채용했다.
동덕여대는 학생들에게 지식뿐 아니라 인성·가치관까지 개발하는 종합 교육을 제공하는 걸 교육 목표로 삼고 있다. 4차 산업혁명 시대를 맞아 다양한 학문 영역과 주제를 융합하고 전공 간 협업을 하는 교육 혁신을 도입했다. 예컨대 2021년에는 문화지식융합대학을 신설해 커뮤니케이션콘텐츠·글로벌마이스·문화예술경영 등 분야에서 창의 인재를 키운다.
서경대는 ‘온·오프 하이브리드(on-off hybrid) 캠퍼스’ 구축에 나섰다. 시간과 장소에 구애받지 않고 학생이 주도적으로 참여하는 학생 주도형 강의를 늘리겠다는 것이다. 올해는 융합대학 내 아트앤테크놀로지학과와 스포츠앤테크놀로지학과를 신설, 융복합 인재 양성을 하고 있다.
성균관대는 올 초 유지범 총장 취임 이후 ‘인류와 미래 사회를 위한 담대한 도전’을 대학 운영의 큰 방침으로 정했다. 올해 2학기부터 실감미디어공학과·반도체융합공학과·메타바이오헬스학과 등 첨단 산업 분야 대학원을 신설했다. 비대면·대면 수업이 혼합된 블렌디드 러닝, 모바일 러닝 등 새로운 방법으로 교육 혁신을 시도 중이다.
수원대는 창업 활성화에 나서고 있다. 1000명 규모 창업 공간과 최첨단 인프라를 갖추고 창업 전 과정을 지원한다. 또 창업 장학금도 지원하며, 전교생이 교양 필수 과목으로 ‘도전과 창조-기업가 정신’이라는 창업 과목을 수강하도록 한다.
세종대는 1990년대부터 첨단 공학계열 전문 인력을 양성해 왔다. 2017년엔 인공지능과 인간의 한글 번역 대회를 국내 최초로 개최했고, 올해는 반도체시스템 공학과를 신설했다. 작년 산업통상자원부 주최 신기술 분야 융합 디자인 전문인력 양성 사업에 최종 선정, 기업과 협력해 신산업 분야 석·박사급 고급 디자인 인력을 양성하고 있다.
연세대는 2021년 온라인 교육 플랫폼 ‘런어스’를 공개했다. 1년 만에 개인 회원 2만3000명과 동영상 4000개를 확보했다. 1950년대 전쟁의 포화 속에서도 교육을 멈추지 않은 지식 나눔 정신과 대학 교육 혁신을 선도하고자 한 노력이 합쳐진 결과다. 런어스는 20여 대학이 참여하는 온라인 공동 강의 네트워크에도 활용 중이다.
중앙대는 코로나 기간 첨단 과학기술 분야 연구 중심 대학으로 나아가기 위해 체질 개선에 힘썼다. 기존에 강점이 있는 인문·사회·예술 분야뿐 아니라 신산업 분야에도 집중 투자를 한 것이다. 2021년 AI대학원을 열었고, 작년엔 제2부속병원인 중앙대학교광명병원을 개원했다.
한국외대는 작년부터 서울캠퍼스와 글로벌캠퍼스 간 비슷한 외국어 계열 학과를 통합하고 있다. 올해는 학과 구조조정을 마무리하고 첨단학과를 신설한다. 올해 만든 글로벌캠퍼스의 글로벌자유전공학부는 모든 신입생이 1학년 때 계열 구분 없이 소트프웨어, 인문교양 수업 등을 들으며 전공 탐색을 한 뒤 2학년 때 원하는 전공을 선택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