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지범 성균관대 총장은 지난달 21일 본지와 한 인터뷰에서 “당장 1·2년 후 평가 순위에 연연하기보다 긴 호흡으로 존경받는 대학이 되도록 노력할 것”이라고 말했다. /김연정 객원기자

“학생들은 취직 같은 현실적 문제를 주로 생각합니다. 취직도 중요하지만, 인생을 계획하는 데 전부가 될 순 없어요. 젊은이답게 원대한 꿈을 꿨으면 합니다. 나뿐 아니라, 내가 살아가는 사회, 국가, 인류의 지속 가능한 발전과 미래를 생각해야 합니다.”

유지범(63) 성균관대 총장은 ‘인류와 미래 사회를 위한 담대한 도전’을 학교 운영의 큰 방침으로 삼았다. 학생들이 당장 눈앞의 개인적인 것에 매몰되지 않고, 전 지구적 문제를 고민하고 탐구할 수 있도록 교육·연구 등 대학 시스템을 혁신하겠다는 의미다. 유 총장은 지난달 21일 본지 인터뷰에서 “대학도 당장 1·2년 후 평가 순위에 연연하기보다 긴 호흡으로 존경받는 대학이 되도록 노력해야 한다”면서 “이런 것이 지극히 상식적인 게 아니고 담대한 도전으로 여겨지는 현실이 안타깝다”고 했다.

유 총장은 서울대를 졸업하고 미국 스탠퍼드대에서 재료공학 박사 학위를 받은 뒤 1994년부터 성균관대 신소재 공학부 교수로 일해 왔다. 성균관대 공과대학장, 자연과학캠퍼스 부총장 겸 산학협력단장, 한국연구재단 국책연구본부장 등을 거쳐 1월 총장에 취임했다.

-’담대한 도전’의 실행 방안으로 연구 분야에선 ‘양’보다 ‘질’을 추구하겠다고 했다.

“우리나라엔 ‘성공하는 연구’가 대부분이다. 평가 시스템이 그렇게 만든다. 새로운 걸 제안하면 연구비를 잘 안 주고, 보통 연구비 지원을 3년 간 하는데 그 기간 안에 새로운 걸 시작해 결과까지 내기는 어렵다. 그러니 자기가 하던 연구를 조금씩 발전시켜 논문을 낸다. ‘레볼루션(revolution·혁명)’이 아니라 ‘이볼루션(evolution·발전)’만 하는 거다. 지금까지는 연구 양이 중요했다. 1996년 한 해 성균관대에서 나온 국제 논문이 100편이 채 안 됐는데, 작년에 6300편이었다. 20년 사이 엄청나게 늘어난 거다. 이젠 ‘양’보다 ‘질’로 전환해야 한다. 진짜 도전적 연구를 하도록 권장하겠다. 그래야 ‘빅샷(big shot·거물)’이 나올 수 있다. 지금처럼 해선 글로벌 100등은 되지만, ‘톱 10′이 될 순 없다.”

-교내 평가 시스템을 바꾸는 건가.

“그렇다. 영향력 있는 논문을 내면 지원금을 더 많이 주고, 일정 수준이 되지 않는 논문은 아예 지원금을 안 줄 것이다. 교수 재임용 평가를 할 때도 영향력 있는 논문에 더 비중을 두고, 신임 교수 채용 때도 잠재력을 보겠다.”

-4년 임기 내 4개 학문 분야를 ‘세계 톱 10′에 올려놓는 것을 목표로 삼고 있다. 어떤 분야들인가.

“2차전지, 반도체, 소프트웨어, AI(인공지능), 의학, 바이오 등 전략 산업들을 후보로 생각하고 있다. 4개 분야를 글로벌 톱 10에 올리고 그것이 다른 분야들을 견인하도록 만들고 싶다.”

-교육 시스템은 어떻게 혁신하나.

“경직돼 있는 전공 교과목 커리큘럼을 유연하게 만들어 학생들이 하고 싶은 걸 할 수 있게 해주겠다. 예를 들어, 학생이 원하는 비(非) 교과 활동을 하면 전공 학점으로 인정해주는 식이다.”

-캠퍼스를 전략적으로 재구조화해서 산학협력을 강화하겠다고 했는데.

“서울 캠퍼스 바로 앞 대학로엔 12개 대학, 소극장 72개가 있다. 문화·예술·미디어가 합쳐진 복합 단지다. 여기서 서울시·종로구청과 함께 산학협력을 하려고 한다. 또 경기 수원의 자연과학캠퍼스는 (IT 업체가 많은) 판교와 가깝다. 거기에 반도체·소프트웨어·AI 등과 관련된 캠퍼스가 지금도 있는데 이를 더 키워 기업들과 산학협력을 하겠다. 또 바이오 단지가 있는 인천 송도에도 캠퍼스를 만들어 바이오 분야에 특화된 산학협력을 하겠다.”

-인공지능 챗봇 ‘챗GPT’ 등장으로 전 세계가 놀라고 있다.

“교육의 근간을 흔드는 사건이다. 초등학교부터 대학까지 교육 방식부터 교과 과정, 입시까지 전부 다시 고민해야 한다. 지금까진 선생님 말을 잘 받아들이고, 암기 잘하고, 논리적 사고력이 있는 아이들이 공부를 잘했다. 그런데 그건 앞으로 챗GPT가 다 해준다. 이젠 ‘질문’을 잘해야 한다. 또 챗GPT가 쓴 걸 보고 비판할 줄 알아야 한다. 짧게는 1학기, 길게는 1년 간 어떻게 바꿀지 면밀히 연구해서 대책을 마련하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