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6일 여성가족부가 폭력을 쓰지 않았더라도 ‘동의 없는 성관계’를 한 사람을 강간으로 간주, 처벌하는 ‘비동의 간음죄’ 도입 방침을 밝혀 논란이 일었다. 법무부가 곧바로 “계획이 없다”고 반대 입장을 밝혀, 정부 부처 간 정반대 목소리가 나오는 불협화음이 일었다. 여가부가 사회적으로 파장이 큰 사안을 부처 간 조율도 제대로 하지 않고 발표해, 혼란을 초래하고 되레 젠더 갈등을 부추겼다는 지적이 나온다.

여성가족부는 이날 ‘제3차 양성평등 기본계획(2023~2027년)’을 발표했다. 양성평등기본법에 따라 5년마다 수립해야 하는 계획이다. 여가부는 기본계획에서 ‘피해자 중심 제도적 기반 구축’ 정책의 하나로, 형법상 강간죄의 구성 요건을 ‘폭행·협박’에서 ‘동의 여부’로 개정하는 걸 검토하겠다고 밝혔다. 현재 형법 297조는 ‘폭행 또는 협박으로 사람을 강간한 자는 3년 이상의 유기징역에 처한다’고 규정돼 있는데, 여기서 ‘폭행·협박’을 ‘동의 여부’로 바꾸겠다는 것이다. 통상 ‘비동의 간음죄’로 불리는 이 죄목은 말 그대로 상대방의 동의가 없는 상태에서 일방적인 성관계를 한 사람을 형사처벌하겠다는 것이다.

그간 여성계는 폭행과 협박이 있어야 강간죄가 성립하는 현행 규정이 가해자 중심이며, 피해자를 충분히 보호하기 어렵다고 주장해왔다. 가령 성폭행이 맞는데도 가해자가 물리적 폭행 등을 충분히 행사하지 않으면 죄가 성립하지 않을 수 있는 등 지나치게 엄격한 법 적용이 되는 경우가 많다는 것이다. 비동의 간음죄는 2018년 안희정 전 충남지사 사건 등 ‘미투 운동’이 벌어지면서 정치권과 여성계에서 도입을 주장하는 목소리가 커졌다. 정의당 심상정, 국민의힘 나경원 의원 등도 도입을 주장했다.

하지만 ‘동의 여부’ 판별이 쉽지 않아 무고한 남성들이 성범죄자로 몰릴 수 있다는 반대 의견도 상당하다. 동의하에 성관계를 했는데도 나중에 일관되게 동의하지 않았다고 주장하면 방어할 수단이 마땅찮다는 것이다. 남성들 사이에선 “동의 여부를 입증하기 위해 성관계 때마다 ‘사전 계약서’를 써야 하느냐”는 말까지 나온다. 부부간 이혼 소송이나 연인 간 다툼이 있을 때마다 이 법 조항이 악용될 수 있다는 의견도 있다. 조국 전 법무부 장관도 저서에서 “범죄 행위자의 처벌 여부가 전적으로 피해자 의사에 따라 좌우된다는 불합리한 결과를 초래한다는 비판이 있다”면서 “폭행, 협박, 위력이 없었지만 동의 없이 이뤄진 성교가 범죄로 처벌되는 것은 과잉 범죄화의 폐해를 바로 불러일으킬 것”이라며 부정적 입장을 밝히기도 했다.

인터넷 남성들 커뮤니티에는 “비동의 간음죄가 도입되면 인생 끝장”이라는 글이 올라오기도 했다. 정치권에서도 입장을 냈다. 권성동 국민의힘 의원은 페이스북에 “비동의 간음죄 도입에 반대한다. 동의 여부를 무엇으로 확증할 수 있겠느냐. 정부 부처가 갈등을 중재하기는커녕 원인을 제공하고 있다. 윤석열 정부가 여가부 폐지를 공약한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고 썼다.

논란이 커지자 법무부는 “‘비동의간음죄’ 신설은 성범죄의 근본 체계에 관한 문제이므로 학계 등 전문가 의견을 수렴하고, 해외 입법례에 대한 심층적인 연구를 포함해 성폭력범죄 처벌법 체계 전체에 대한 사회 각층의 충분한 논의를 거치는 등 종합적인 검토가 필요하다”며 “반대 취지의 신중 검토 의견”이라고 밝혔다. 법무부 관계자는 “여가부에 종합적으로 신중히 검토해야 한다고 의견을 냈는데, 오해의 소지가 있었던 것 같다”고 했다. 이후 여가부는 “(비동의간음죄) 개정 계획이 없음을 알려드린다”며 입장을 곧바로 철회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