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강남구 대치동의 한 학원 앞에 논술시험, 대학수학능력시험, 내신 대비 수업이 진행된다는 안내문이 붙어 있다./연합뉴스

미대 준비생 지수안(19)씨는 지난달 21일 경기 고양시의 한 재수종합학원에 등록했다. 오전 7시부터 오후 10시까지 국어·수학·영어 등 수능 과목만 공부한다. 수능과 내신 성적으로 1차 합격자를 선발하는 미대들이 늘어났기 때문이다. 지씨는 고3이었던 작년엔 하루 4시간씩 미술 연습을 했지만, 올해는 4월까지 실기 연습을 할 생각이 없다. 그는 “실기 실력이 아무리 좋아도 수능 성적이 낮으면 그림을 그릴 기회조차 얻지 못한다”며 “3년 간 손을 놓았던 수학 공부만 하루 6시간씩 하고 있다”고 했다.

미대들이 시험 성적을 주요 선발 지표로 활용하며 미대 준비생들이 미술학원 대신 입시·보습 학원으로 향하고 있다. 서울대 미대 정시 전형은 수능 성적 100%로 1차 합격자를 가리고 이후 실기 평가 기회를 주는데, 2023학년도 입시에서 정원 102명 중 95명(93%)을 정시로 선발할 예정이다. 2022학년도 정시 선발 인원인 41명에서 2배 이상 늘었다.

국민대 미대 회화전공 역시 올해 정시 입시부터 수능·학생부가 우수해야 실기 평가 기회를 준다. 김태진 국민대 미술학부장은 “사고력과 분석력을 갖춘 인재를 선발하려는 취지”라고 했다.

미대 준비생들 사이에서는 “드로잉보다 수학 잘하는 학생이 유리하다”는 말이 나온다. 서울 중구에 사는 미대 준비생 이모(18)양은 2월부터 서울 강남구에 위치한 수학 학원에 가는 빈도를 주 2회에서 3회로 늘렸다. 이양은 “수학에 쓰는 시간이 일주일에 5시간 넘게 늘었다”고 했다. 서울 강남구에 위치한 미술학원에 다니는 박모(18)양은 “수학을 잘하는 이과 친구가 미대에 오겠다고 하더라”라며 “전에는 ‘수학이 싫어 미대를 준비한다’는 친구들도 많았는데, 이젠 수학 잘하는 사람이 미대 입시에서 유리한 상황”이라고 했다.

미술학원들이 강남으로 몰리는 현상이 더 빨라질 것이라는 전망도 나온다. 임성호 종로학원 대표는 “미대 입시에서 수능이 강화되면서 실기와 교과목을 동시에 준비할 수 있는 강남으로 미술 학원들이 몰리고 있다”고 했다. 강남 유명 보습학원에서 수능·내신 공부를 하고 바로 가까운 미술학원으로 가서 실기를 준비하는 게 준비생들 입장에서는 낫다는 것이다.

한때 ‘입시 미술의 메카’로 불리던 홍익대 앞엔 미술학원 수가 빠르게 줄어들고 있다. 이곳엔 2000년대 말까지 100곳에 달하는 미술 학원이 있었다. 하지만 2013년 홍익대가 비실기 전형을 시작한 뒤로 수가 점차 감소해 현재는 40여 곳 뿐이라고 한다. 서울 대치동에서 10년째 미술학원을 운영하고 있는 김재순(53)씨는 “미술 학원들이 점차 강남으로 옮겨오고 있다”며 “2013년 이곳(선릉역 부근) 반경 500m 내에 20곳 정도의 미술 학원이 있었다면, 지금은 50개에 이른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