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임사 하는 김은미 신임 이화여대 총장

올해 대학 입시에서 전문대를 포함한 전국 대학 신입생 정원(47만3189명) 가운데 4만586명(8.6%)이 미달됐다. 지난해 미달 인원의 3배로, 역대 최대 규모다. 대학 정원이 현재 수준을 유지할 경우 3년 후 미달 인원은 10만명을 웃돌 것으로 교육부는 추산한다. 김은미(63) 이화여자대학교 신임 총장은 본지 인터뷰에서 이런 통계를 줄줄이 제시하며 “이제 대학이 학생을 뽑는 게 아니라 학생이 대학을 고르는 시대가 됐다”고 말했다. 김 총장은 지난 3월 이화여대 제17대 총장으로 취임했다. 이번이 첫 언론 인터뷰다.

김 총장은 “코로나 팬데믹 이후 온라인 강의가 전면 도입되면서 국내·해외 대학 간 경계가 사실상 사라지고 있고, 대학들은 무한 경쟁의 무대에 서게 됐다”면서 “최고의 연구와 교육을 통해 세계적으로 여성의 경쟁력, 한국의 경쟁력을 높일 수 있는 방안을 추진하고 있다”고 했다. 이와 관련해 김 총장은 ‘인공지능(AI) 교육'을 경쟁력 강화의 강력한 수단으로 꼽았다.

이화여대는 지난달 창립 135주년을 맞아 ‘지속 가능 사회를 선도하는 창의·혁신 플랫폼’을 비전으로 제시하면서 세부 추진 과제 50개를 발표했다. AI(인공지능) 융합연구원 및 대학원 설립, AI 단과대 신설, AI 기반 학생 관리 통합 시스템 구축 등이다. 김 총장은 “AI를 통해 연구와 교육을 고도화하는 것은 물론이고, 이화여대가 전통적으로 강한 인문·사회·예체능 분야를 접목한 AI 융·복합과 윤리 문제 해결에도 집중하겠다”고 했다. AI 융합 학부는 내년(2022학년도) 첫 신입생을 뽑고, AI 단과대도 2023년 이후 신설하겠다는 계획이다.

김은미 이화여대 총장은 “대학이 무한 경쟁 시대에 살아남기 위해선 미래 세대가 원하고 그들에게 꼭 필요한 교육을 해야 한다”고 했다. /김지호 기자

김 총장은 이화여대 사회학과를 졸업하고 미국 브라운대에서 석·박사 학위를 받은 뒤 1987년부터 10년간 서던캘리포니아대(USC) 교수를 지냈다. 그는 “당시 미국은 휴대전화 보급에 앞서 운전 중 통화, 개인 정보 보호 등 휴대전화 사용과 관련한 윤리적·법적 문제 등을 사회적으로도 폭넓게 논의했다”며 “우리도 AI를 사회 모든 영역에 전면 도입하기에 앞서 예상되는 문제들을 대학이 각 분야에서 연구하고 해결책을 마련해야 한다”고 했다. 그는 최근 논란을 빚은 AI 챗봇 ‘이루다' 같은 사례를 거론하며 “여성들이 AI 개발에 더 많이 나서면 AI 윤리 문제 해결에 도움이 될 것”이라고 했다.

한국의 경제 규모는 세계 10위권이다. 그러나 세계경제포럼(WEF)이 올해 발표한 ‘성 격차 지수(Gender Gap Index)’에서는 156국 가운데 102위에 그쳤다. 김 총장은 이런 현실을 지적하며 “여성들이 장애물 없이 모든 영역에서 맘껏 공부하고 연구할 수 있는 환경이 필요하다”면서 “이화여대가 그런 소명 의식을 갖고 남녀 모두 더욱 행복한 사회를 만드는 데 기여할 것”이라고 했다.

올해 창립 135주년을 맞은 이화여대의 슬로건은 ‘그대가 바라는 미래, 이화’다. 김 총장은 “이화여대가 200주년, 300주년 후에도 세계 최고의 여성 리더들을 키워내겠다는 개인적인 비전을 갖고 있다”면서 “학생들이 무한대로 꿈꿀 수 있게 하고, 어려움 속에서도 그 꿈을 이뤄갈 수 있도록 할 것”이라고 했다.

국무총리실 산하 국제개발협력위원회 위원을 지내고 올해 유네스코(UNESCO) 한국위원회 부위원장으로 선출된 김 총장은 국제 개발 협력 분야 전문가로 꼽힌다. 그는 한국이 개발도상국의 대학 설립을 지원하는 등 교육을 위한 공적개발원조(ODA)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교육 한류(韓流)를 세계로 확산해야 한다”는 것이다.

올해 신입생 대규모 미달 사태가 나오자 최근 정부는 비수도권 대학은 물론이고 수도권 대학도 정원 감축을 추진키로 했다. 김 총장은 이에 대해 “지역 균형도 중요하지만 일률적 기준을 세워 잘하는 대학까지 정원을 줄이게 하면 우수한 학생들은 해외 대학으로 빠져나갈 것”이라고 했다. 일률적인 정원 감축 추진은 국가 경쟁력을 떨어뜨릴 우려가 있다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