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 닫은 캠퍼스, 쑥 캐는 주민 - 지난 11일 전북 군산 서해대 교정에서 한 주민이 자란 쑥을 캐고 있다. 이 대학은 지난달 28일 폐교 조치되면서 ‘유령 캠퍼스’처럼 변했다. 1974년 개교한 지 47년 만이다. 서해대뿐 아니라 전국 곳곳 지방대들이 대규모 신입생 미달 사태로 뿌리부터 흔들리고 있다. /김영근 기자

올해 대입에서 전국 4년제 대학 200곳 가운데 신입생 미달 규모가 100명 이상인 대학이 30곳이 넘고, 이 가운데 18개 대학은 미달 규모가 200명 이상이면서 정원의 10% 이상 신입생을 뽑지 못한 것으로 나타났다. 18개 대학의 미달 인원(6812명)은 작년(491명)의 14배 수준으로 치솟았다. 작년 4년제 대학 미달 인원(3650명)의 약 2배에 달한다. 학령 인구 감소 등으로 인한 지방대 몰락 위기가 당초 예상보다 훨씬 심각하다는 우려가 나온다.

14일 본지가 대입 원서 접수 사이트에 ‘추가 모집' 지원 현황을 올린 전국 132개 대학의 학과별 모집 인원(정원 내) 대비 지원자 규모를 비교한 결과, 정시·수시에서 정원을 채우지 못해 실시한 신입생 추가 모집에서도 끝내 정원을 못 채운 대학이 75곳 이상으로 나타났다. 추가 모집은 지원 횟수 제한이 없고, 추가 모집 현황을 공개하지 않은 대학도 감안하면 전체 미달 인원은 1만명이 넘을 것으로 추정된다. 미달 인원이 많은 대학은 대구대(780명), 원광대(710명), 상지대(654명·학교 자체 집계는 미공개), 가톨릭관동대(539명), 세명대(497명) 등 순이다. 정원 대비 미달률은 상지대가 31%로 가장 높았고, 극동대(30%), 안동대(27%), 가톨릭관동대(26%)가 뒤를 이었다.

대구대의 올해 미달 인원은 작년(2명)의 390배, 원광대(작년 16명)는 44배 수준이다. 대구대 총장은 최근 자진 사퇴 의사를 밝혔고, 원광대 총장은 소속 교수들로부터 사퇴 압력을 받고 있다. 일부 국립대도 사상 초유의 대규모 미달 사태에 맞닥뜨렸다. 지난해 2명(모집 정원의 0.1%) 미달이었던 국립 안동대는 올해 398명(정원의 27%)으로 199배, 목포대도 12배(16명→204명) 늘었다.

교육계에선 지방대의 극심한 경영난으로 향후 2~3년 내 도산하는 곳이 잇따를 것으로 우려한다. 올해 미달 인원 상위 18개 지방대의 등록금 수입 감소 추정액은 약 430억원, 4년간 합계는 1700억원이 넘는다. 배영찬 한양대 교수는 “일부 지방대는 등록금 의존율이 70% 넘는 곳도 있어 당장 대학 운영에 큰 타격이 불가피한 상황”이라며 “지방대 몰락 속도가 예상보다 훨씬 빠르게 진행되고 있다”고 했다.

학생없는 캠퍼스, 1~2명 강의 수두룩… 실망한 신입생들 자퇴도

“학생들이 ‘대학 강의가 아니라 1대1 과외 수업을 받는 것 같다’는 말까지 합니다. 실망이 클 수밖에요.”

충북의 한 대학 교직원은 “이달 초 개강 이후 자퇴를 고민하는 신입생들 연락을 자주 받는다”며 이렇게 말했다. 이 대학은 올해 대학 입시에서 지원자가 대폭 줄어 지난해보다 신입생이 30% 가까이 줄어들었다. 이 때문에 수강생이 1~2명에 불과한 비대면 실시간 강의가 많아지자 학생들 사이에서 불만이 커지고 있다는 것이다. 이 학교 관계자는 “어떤 학과는 신입생이 두세 명에 불과해 유지하기 어려울 정도”라고 했다.

◇지원자 100% 받아줬지만 대량 미달

올 입시에서 미달 인원이 지난해보다 수백 배씩 늘어난 지방대들이 속출하자 기존 형태로 학교 운영을 계속하기는 어렵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앞서 일부 지방대은 미달을 최소화하기 위해 추가 모집 지원자를 100% 받아주고 현금까지 지급했지만 끝내 대규모 미달을 피하지 못했다. 예컨대 ‘합격률 100%’를 보장하고 현금 50만원 지급을 약속했던 우석대는 272명이 미달했다. 신라대도 1년 학비 면제에 전과(轉科) 100% 보장, 토익 수강비와 도서비 지원 등 250만원어치의 장학 패키지 제공을 내세웠지만 미달 인원이 440명에 달했다.

2021학년도 신입생 200명 이상 미달大 현황

미달 인원이 500명 넘는 대학도 수두룩했다. 대구대(780명), 원광대(710명), 상지대(654명·추가모집 2차 기준), 가톨릭관동대(539명) 등이다. 이 학교들의 미달 인원은 지난해에 비해 적게는 11배(상지대 56명→654명)에서 많게는 390배(대구대 2명→780명)까지 늘어난 것으로 집계됐다.

지방대들은 코로나 여파로 지난해 수험생들을 대상으로 모집 활동을 못해 큰 타격을 입었다고 했다. 대전의 한 대학 관계자는 “서울에서 매년 열리던 대입 설명회도 코로나 때문에 무산됐고 학교 홍보 활동도 못한 것이 미달 급증의 원인으로 보고 있다”며 “올해는 교수와 직원들이 여러 고등학교를 방문해 학교를 적극적으로 알릴 계획”이라고 했다.

◇”등록금 수십억 줄었는데 어떻게 버티나”

사상 초유의 대량 미달 사태를 맞은 지방대학들은 비상 경영 체제에 들어갔다. 올해 채우지 못한 신입생 정원만큼 등록금 수입이 줄어든 데다 이 여파가 올해 신입생(2021학번)들이 졸업할 때까지 4년간 이어지기 때문이다.

예컨대 연간 등록금이 745만원인 원광대의 경우 올해 신입생이 710명 미달이어서 등록금 수입이 약 52억원 감소하고, 이 신입생 공백은 향후 4년간 계속 이어질 수밖에 없어 학교 입장에선 4년간 등록금 수입 감소액이 총 200억원에 달하는 셈이다. 이에 일부 대학은 당장 허리띠를 졸라매고 있다. 청소 용역 계약을 해지하고 교수와 직원들이 학교 청소를 하기로 하거나, 문서를 종이로 출력하는 것도 최소화하기로 하는 조치까지 나오고 있는 실정이다. 충북의 한 대학교 관계자는 “올해부터 설 명절 수당 지급이 끊겼다”고 했다.

◇”이대로면 지방대 줄도산 눈앞”

지방대 교수들 사이에선 “생존의 기로에 섰다”는 불안감이 짙어지고 있다. 부산외대의 한 교수는 “이제 월급이 깎일 차례라며 동료 교수들이 걱정하고 있다”고 했다. 우석대의 한 교수는 “예전엔 캠퍼스에 학생들이 별로 없는 방학이 여유 있고 좋았는데, 올해는 학생 한명 한명이 얼마나 소중한지 절감한다”며 “입학한 학생마저도 학기 중 떠날까 봐 불안해 캠퍼스 분위기가 무겁고 침울하다”고 했다.

대학교육연구소가 지난해 지방대 교수와 직원들을 대상으로 한 설문에 따르면, ‘매우 위기’, ‘위기’라고 답한 응답자가 98.5%에 달했다. 위기감의 이유로는 ‘학생 모집 어려움’(34.9%)이 가장 많았고 ‘교직원 신규 채용 중단 및 임금 삭감’(19.9%)과 ‘교육 및 연구 여건 하락’(19.4%) 등이 꼽혔다. 박남기 광주교대 교수는 “지방대의 위기는 인적·물적 자원이 수도권으로 몰리는 구조적 문제와 지방대 출신이 양질의 일자리를 구하기 어려운 노동시장의 문제가 복합 작용했기 때문”이라며 “국가 차원에서 대학 정원 재분배 정책이 필요하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