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영재 법원행정처장이 25일 오후 서울 서초구 대법원 청사에서 열린 전국법원장회의에서 모두발언을 하고 있다. /박성원 기자

박영재 법원행정처장(대법관)이 27일 조희대 대법원장에게 처장직 사퇴 의사를 표명했다. 사법부의 우려 표시와 숙의해달라는 요구에도 더불어민주당이 ‘사법 3법(재판소원 도입·법 왜곡죄 신설·대법관 증원)‘을 밀어붙이자 반발하고 나온 것이다. 박 처장이 지난달 16일 천대엽 대법관 후임으로 법원행정처장에 취임한 지 42일 만이다.

박 처장은 이날 “최근 여러 상황과 법원 안팎의 논의 등을 종합해볼 때 제가 물러나는 것이 국민과 사법부를 위해 도움이 될 것으로 보아 처장직을 내려놓게 됐다”고 밝혔다. 이어 “사법부가 많은 어려움을 겪는 시점에 물러나게 돼 송구스럽다”며 “사법제도 개편 관련 논의가 국민에게 이익이 되는 방향으로 이루어지길 간절히 바란다”고 했다.

법원행정처장은 전국 법원의 인사·예산을 총괄하며 현직 대법관 중 한 명이 맡는다. 박 처장은 이재명 대통령의 공직선거법 위반 사건 상고심 주심을 맡아 유죄 취지의 파기환송 판결을 내렸다. 이 때문에 취임 직후부터 민주당 법제사법위원회 의원들의 ‘임명 철회’ 집중 포화를 맞았다.

박 처장은 취임 후 국회에서 법원을 대표해 여러 차례 사법3법에 대한 우려를 밝혀왔다. 재판에 대한 헌법소원을 허용하는 재판소원과 관련해 “국민들을 소송 지옥에 빠뜨리는 것”이라고 했고, 판·검사의 법리 왜곡 적용을 처벌하겠다는 법 왜곡죄와 관련해서는 “악용될 위험이 있고 내용의 명확성이 떨어져 위헌적 요소가 있다”고 했다.

그는 대법관을 14명에서 26명으로 증원하는 안에 대해서는 “필연적으로 하급심에 있는 우수한 판사들이 (대법원 재판을 보조하는) 재판연구관으로 와야 하는데 이를 보충할 방법이 없어 하급심 약화가 우려되는 상황”이라고 했다.

박 처장은 국회의 법안 처리가 임박하자 지난 25일에는 전국법원장회의 임시회의를 긴급 소집했다. 이 자리에서 박 처장은 “사법제도 개편 3법은 법원의 본질적 역할과 기능에 중대한 변화를 가져올 뿐 아니라 국민들에게도 직접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다”며 “숙의 과정에서 재판을 직접 담당하는 사법부의 의견이 반영될 필요가 있다”고 밝혔다.

박영재 법원행정처장을 비롯한 법원장들이 25일 서울 서초구 대법원에서 열린 전국법원장회의에서 국기에 경례하고 있다. /박성원 기자

법원장들도 임시회의 후 보도자료를 내고 “사법부와 사회 각계의 우려 표명에도 공론화와 숙의 없이 본회의에 부의된 현 상황에 심각한 유감을 표한다”며 “여러 기관과 전문가를 아우르는 협의체를 통해 바람직한 사법제도 개편 방안에 대한 폭넓고 심도 있는 논의를 거치는 것이 필요하다”고 했다.

그러나 민주당은 26일 법 왜곡죄 신설을 골자로 한 형법 개정안을 국회 본회의에서 처리했다. 이날 오후 본회의에서는 재판소원 도입법(헌법재판소법 개정안)을 처리한 뒤 대법관 증원법(법원조직법 개정안)을 상정할 예정이다. 이처럼 사법부의 우려와 반대에도 민주당이 사법3법 처리를 강행하자 법원행정처장이 사퇴함으로써 반발 의사를 밝힌 것이란 해석이 나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