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란 우두머리 방조 혐의를 받는 한덕수 전 국무총리가 지난달 21일 서울중앙지법에서 열린 1심 선고 공판에 출석하고 있다. /연합뉴스

윤석열 전 대통령 탄핵 소추 이후 국회가 추천한 헌법재판관 후보자 임명을 거부하고, 대통령 몫 재판관을 졸속 지명한 혐의로 기소된 한덕수 전 국무총리와 윤석열 정부 관계자들이 10일 첫 재판에서 혐의를 전면 부인했다. 이들은 이번 사건이 내란 특검법이 정한 수사 대상이 아니라며 공소 기각도 주장했다.

서울중앙지법 형사33부(재판장 이진관)는 이날 한 전 국무총리와 최상목 전 경제부총리, 정진석 전 대통령비서실장, 김주현 전 민정수석, 이원모 전 공직기강비서관 등 5명의 직무유기·직권남용 혐의 첫 정식 재판을 열었다. 12·3 비상계엄 관련 내란 혐의로 1심에서 징역 23년형이 선고된 한 전 총리는 짙은 남색 양복 차림으로 왼쪽 가슴에 수용번호가 적힌 명찰을 달고 재판에 출석했다. 나머지 피고인들도 모두 법정에 나왔다.

한 전 총리와 최 전 부총리는 각각 대통령 권한대행으로 재임하던 시기, 국회가 추천한 헌법재판관 후보자를 임명하지 않은 혐의(직무유기)로 재판에 넘겨졌다. 한 전 총리는 2024년 12월 국회 추천 몫의 마은혁·정계선·조한창 헌법재판관 선출안이 국회 본회의에서 의결됐지만 “여야가 합의해 안을 제출할 때까지 헌법재판관 임명을 보류하겠다”며 임명을 하지 않았다.

최 전 부총리는 이후 한 전 총리까지 탄핵 소추되면서 대통령 권한대행직을 승계했는데 정계선·조한창 재판관은 임명하고 마은혁 재판관은 여야 합의가 필요하다는 이유로 임명을 거부했다. 특검은 “이들이 재판관을 임명하지 않은 배경에는 헌재의 헌법 심판 결과에 부당한 영향을 미칠 목적이 있었다”고 했다.

이날 한 전 총리 측은 이에 대해 “국회 추천 재판관을 ‘거부’한 것이 아니라 여야 합의를 촉구한 ‘호소’였고, 직무를 포기하거나 저버린 적이 없다”고 했다. 최 전 부총리 측은 “오히려 권한대행 취임 직후 재판관 2인(정계선·조한창)을 임명해 헌재 기능을 정상화했다”고 주장했다.

정진석 전 대통령 비서실장(왼쪽부터), 최상목 전 경제부총리, 김주현 전 대통령실 민정수석, 이원모 전 공직기강비서관이 10일 오후 서울 서초구 중앙지방법원에서 헌법재판관 졸속 임명 혐의 관련 첫 공판에 출석하고 있다./뉴스1

한 전 총리는 또 작년 4월 윤 전 대통령이 헌재에서 파면된 이후, 제대로 된 인사 검증 없이 함상훈 서울고법 부장판사와 이완규 전 법제처장을 대통령 몫 재판관 후보로 지명한 혐의(직권남용)도 받고 있다. 김 전 수석과 정 전 실장, 이 전 비서관도 이에 공모한 혐의를 받는다.

특검은 한 전 총리가 후보군 추천을 보고받은 뒤 국정원 신원 조사나 경찰 세평 조회, 법무부 인사정보관리단 검증 등 통상적인 절차를 생략하고 두 후보자를 졸속 지명했다고 보고 있다. 검증을 거치지 않고 두 후보자에 대해 ‘문제 없음’ 보고서를 만들게 해 각 기관의 인사 검증 권한 행사를 방해했다는 것이다.

한 전 총리 측은 “인사 검증 절차를 간략히 했다는 이유로 직권남용을 구성하는 것은 성립할 수 없다”고 맞섰다. 정 전 실장과 김 전 수석, 이 전 비서관 측도 “인사 검증은 법령상 필수 절차로 강제된 것이 아니라 재량 영역”이라며 직권남용죄가 성립하지 않는다고 주장했다. 이들은 또 윤 전 대통령이 파면된 이후에 벌어진 이번 일은 12·3 비상계엄 국면과는 단절된 뒤이기 때문에 특검 수사 대상인 내란·외환 혐의와 객관적 관련성이 없어 공소가 무효라고도 주장했다.

한편, 최 전 부총리는 헌법재판관 미임명 혐의와 별개로, 비상계엄 당일 윤 전 대통령의 계엄 관련 지시 문건에 대해 국회에서 “본 적 없다”고 말했다는 위증 혐의도 받고 있다. 최 전 부총리 측은 “공소장에 헌법재판관 졸속 임명 부분에는 최 전 부총리가 한 번도 등장하지 않고, 직무유기와 위증도 단독 범행”이라며 사건을 분리해야 한다고 주장했으나 재판부는 받아들이지 않고 함께 심리하기로 했다. 재판부는 오는 20일 두 번째 재판을 열고, 홍철호 전 정무수석에 대한 증인 신문을 시작으로 본격적인 심리에 들어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