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찰이 설탕, 밀가루 등 생활필수품을 담합한 업체와 관계자들을 무더기로 재판에 넘겼다. 검찰 조사 결과 이들이 저지른 담합 규모는 10조원에 가까운 것으로 나타났다.
서울중앙지검 공정거래조사부(부장 나희석)는 2일 일명 ‘서민경제 교란사범’에 대한 수사 결과를 발표하며 이 같이 밝혔다. 검찰은 작년 9월부터 지난 1월까지 약 5개월 간 관련 범죄에 대해 집중 수사를 벌였다.
검찰은 “빵·라면 등 국민 식생활의 근간을 이루는 원재료인 설탕·밀가루의 가격 담합으로 식품 물가 전반을 뒤흔들고, 전기료의 가파른 상승으로 인해 가정경제를 위협하는 담합의 전모를 밝혔다”며 “대표이사 및 고위급 임원을 포함한 총 52명에 대해 6명을 구속 기소, 46명을 불구속 기소했다”고 했다. 소속 직원이 위법 행위를 하면 법인도 함께 처벌하는 양벌규정에 따라 16개 법인도 재판에 넘겨졌다.
밀가루 담합과 관련해, 검찰은 6개 제분 업체 대표이사를 포함한 20명을 불구속 기소했다. 이들은 총 5조 9913억원에 달하는 담합을 벌인 것으로 조사됐다. 앞서 검찰은 대한제분·사조동아원의 전현직 대표이사 등 임직원 4명에 대한 구속영장을 청구했지만 지난달 23일 법원에서 기각됐다. 검찰에 따르면 이들의 담합으로 밀가루 가격은 1㎏당 649원(2021년 1월)에서 924원(2023년 1월)으로 최고 42.4%까지 인상됐고, 이후 가격이 다소 내려갔지만 여전히 담합 전에 비해 22.7% 인상 수준의 가격을 유지했던 것으로 나타났다.
검찰은 앞서 작년 11월엔 설탕 담합과 관련해 CJ제일제당·삼양사 전직 대표급 임원 2명을 구속 기소하고, 11명을 불구속 기소했다. 이들 업체와 대한제당 등 총 3개 제당 업체가 벌인 담합의 규모는 총 3조 2715억원으로 조사됐다. 검찰은 이들이 설탕의 원재료인 원당가가 상승할 때는 설탕 가격을 곧바로 올리면서, 원당가가 하락할 때는 설탕 인하 폭을 조금만 낮추는 식으로 막대한 이익을 거뒀다고 봤다.
한국전력공사가 발주한 설비 장치 입찰에서 7년 6개월 간 6776억원대 담합을 벌인 관계자들도 지난달 20일 공정거래법 위반 혐의로 재판에 넘겨졌다. 효성중공업·현대일렉트릭·LS일렉트릭·일진전기 소속 임직원 4명은 구속 기소됐고, 15명은 불구속 기소됐다.
일부 업체는 검찰 수사에 협조하는 ‘리니언시(자진 신고자 감면 제도)’를 신청해 기소를 면했다. 다만 검찰은 “재판 경과에 따라 진술 태도가 달라지는 등 사정 변경이 있다면 다시 수사가 재개될 수 있다”고 했다.
검찰은 담합 관련자들이 담합을 꾀하고 증거를 인멸한 정황도 구체적으로 확보했다. 검찰에 따르면, 이들은 공정거래위원회를 ‘공 선생’이라고 칭하며 공정위의 감시망을 피해 담합하는 방법을 모의했다. 예컨대 주요 제분업체 관계자들은 통화에서 “강력분·박력분은 4000원, 중력분은 3000원을 올리자”라고 담합한 뒤, “공 선생(공정거래위원회)한테 들키면 안 되니까 앞으로는 연락을 자제하자”라고 말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들은 밀가루 가격 인상 소식을 거래 업체에 통보하는 순서를 ‘사다리 타기’를 통해 정한 것으로도 조사됐다.
또 검찰 수사가 시작되자 설탕 업체들은 압수 수색에 대비해 각종 자료에 대한 증거 인멸에 나섰는데, 이때 담합 의심을 피하기 위해 ‘자기가 올린 건 자기가 지우자’라고 말한 것으로도 조사됐다. 검찰 관계자는 이같은 증거를 공개하면서 “범행이 얼마나 노골적이었고, 담합 업체들이 얼마나 법 무시적 행태로 일관하고 있는지를 보여주는 증거”라고 설명했다.
검찰은 “국민 생필품 담합으로 인한 식료품 물가와 전기료 상승 피해는 고스란히 소비자인 국민들에게 전가된 사실을 확인했다”며 “이번 기소로 ‘담합 범행으로 서민경제를 교란시킨 민생침해 사범은 반드시 엄벌한다’는 강력한 메시지를 시장에 전파했다”고 설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