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서초구 대법원 청사. /김지호 기자

상사 요구로 양주를 상납했다고 폭로한 직원이 상사로부터 명예훼손에 따른 손해배상 소송을 당했으나, 대법원까지 간 끝에 “공익적 문제 제기이기 때문에 배상할 필요가 없다”는 판단을 받아냈다.

대법원 3부(주심 이흥구 대법관)는 국립중앙박물관 전직 미화 주임 A씨가 직원 B씨를 상대로 “허위 폭로에 따른 명예훼손으로 정신적 고통을 받았다”며 낸 손해배상 소송에서 위자료 100만원을 지급하라고 한 원심 판결을 파기하고 지난달 사건을 서울중앙지법에 돌려보냈다고 24일 밝혔다.

사건은 2020년 여름 국립중앙박물관 미화팀 내에서 벌어졌다. 미화 업무 현장 관리자로 일하던 A씨는 부하 직원 B씨에게 이른바 ‘돌돌이’로 불리는 마루 광택 기계 사용법을 알려주겠다며 “양주 한 병을 몰래 사물함에 넣어두라”고 했다.

B씨는 다음 날 실제로 시가 15만원 안팎의 시바스 리갈 한 병을 넣었다. 그런데 A씨가 약속과 달리 사용법을 알려주지 않자 B씨는 노동조합 사무실에서 동료들에게 “교육 대가로 양주 상납을 했다”고 말했다. 이는 청렴 의무 위반 문제로 번져 두 사람 모두 감봉 3개월의 징계를 받았다.

사건이 언론에 알려진 뒤 A씨는 동료들과 어울리지 못하고 갈등을 빚어 오다가 양주 사건과는 다른 일로 2023년 징계 해고를 당했다. A씨는 이후 “양주 얘기는 농담이었을 뿐이고 B씨가 자발적으로 선물한 것인데 허위 사실을 퍼뜨려 직장에서 불이익을 입었다”며 B씨에게 위자료 2700만원을 청구하는 소송을 냈다.

1심 법원은 “A씨가 먼저 양주를 요구한 사실이 인정되고, 이를 노조원들에게 알린 행위는 미화원 전체의 이해와 관련된 공익적 제보에 해당한다”며 위법성이 없다고 판단했다. 그러나 2심은 두 사람의 통화 녹취 등을 근거로 “양주 이야기가 오가긴 했지만, ‘상납 요구’로 단정하기는 어렵다”며 B씨가 사실을 과장해 퍼뜨린 책임이 있다고 봤다. 다만 A씨도 먼저 양주 이야기를 꺼낸 점 등을 고려해 배상액은 위자료 100만원으로 제한했다.

대법원에서 결론은 다시 뒤집혔다. 대법원은 A씨 스스로 경위서에서 ‘공짜는 없으니 집에 있는 양주면 된다고 농담조로 말했다’고 인정한 점을 근거로 “교육의 대가로 양주를 제공했다는 B씨의 발언은 허위라고 단정하기 어렵다”고 판단했다. 또 “공공기관 근로자의 금품 수수와 직장 내 갑질 문제는 우리 사회 전체의 공공이익에 관한 사안”이라며 B씨 발언은 위법성이 조각될 여지가 크다고 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