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3 비상계엄 당시 국회에 병력을 출동시켰던 이진우 전 수도방위사령관이 “계엄 선포를 한 달가량 앞둔 시점에서 윤석열 전 대통령이 ‘나는 꼭 배신당한다’고 말하면서 한동훈 전 국민의힘 대표를 언급했다”고 법정에서 증언했다. 앞서 곽종근 전 특수전사령관은 윤 전 대통령이 지난해 국군의 날 행사 이후 뒤풀이 모임에서 한 전 대표를 가리키며 “잡아와라. 내가 총으로 쏴서라도 죽이겠다”고 했다고 증언했는데, 이와 유사한 말을 한 것이다. 이 전 사령관은 12시간 넘게 이어진 재판의 말미에 “비상계엄의 위법에 대한 책임은 제가 지는 것”이라는 말도 남겼다.

◇李 “한동훈 잡아와라 들은 기억 없어”

이진우 전 수도방위사령관. /뉴스1

이 전 사령관은 15일 서울중앙지법 형사25부(재판장 지귀연)에서 열린 윤 전 대통령의 내란 우두머리 혐의 재판에 증인으로 나와 윤 전 대통령이 한 전 대표를 이야기한 전후 정황을 설명하며 이같이 말했다. 이 전 사령관은 “작년 11월 9일 국방장관 공관 2층의 식당에서 김용현 전 국방장관, 곽종근 전 특수전사령관, 여인형 전 국군방첩사령관과 저녁 식사를 했고, 중간에 윤 전 대통령이 합류했다”며 “몸을 못 가눌 정도로 술을 많이 마신 윤 전 대통령이 ‘많은 사람에게 배신당한다’며 한 전 대표 이름을 호명했다”고 했다. 이어 이 전 사령관은 “윤 전 대통령이 11월 모임에서 ‘정책적으로 뭔가 추진하면 다 반대하고, 언론에서 부정적으로 바꿔 쓰니 뭘 해도 힘이 안 난다. 무조건 반대하는 것은 잘못 아니냐’는 취지로 말했다”고도 했다.

다만 이 전 사령관은 곽 전 사령관이 지난해 10월 1일 국군의날 행사를 마친 뒤 있었던 모임에서 윤 전 대통령이 “한동훈을 잡아와라. 총으로 쏴서라도 죽이겠다”고 말했다고 증언한 데 대해선 “당시 저는 술을 마시지 않았는데 기억에 없다”고 했다. 당시 모임에서 윤 전 대통령이 시국에 대한 어려움을 털어놓지는 않았다는 게 이 전 사령관 주장이다.

이 전 사령관은 지난해 11월 9일 모임에서 윤 전 대통령이 부정선거도 언급했다고 증언했다. 술을 마시던 도중 윤 전 대통령이 “선거를 믿을 수 없다”며 “국민들이 잘 믿지 못하게, 투명하게 운영되지 않고 있다”고 말했다는 것이다. 이 전 사령관은 “여 전 사령관이 ‘그런(선거) 거 진짜 잘 (운영)돼야 한다’며 선거관리위원회에 대해 이야기했다”고 말했다.

◇계엄 당시 尹이 체포 지시? “없었다”

이런 가운데 이 전 사령관은 비상계엄 선포를 미리 알지 못했다고 주장했다. 이 전 사령관은 비상계엄 선포 당일 오후 9시 46분 김 전 장관과 했던 통화에 대해 “관사에서 아내와 설거지를 하고 있었는데 (김 전 장관이) 상황이 발생할 수 있으니 부대에서 대기하라고 했다”며 “이유를 물어보지 못하고 알겠다고만 했다”고 증언했다. 이어 “당시 통화에서 김 전 장관이 비상계엄 관련 언급은 하지 않았다”고 말했다.

또 이 전 사령관은 “계엄 당일 윤 전 대통령에게 누군가를 체포하라는 지시를 받은 적이 없다”고 했다. 곽 전 사령관이 재판에서 “윤 전 대통령이 이 전 사령관에게 (의원들을 끌어내라고) 지시했고, 이 전 사령관은 이상현 전 1공수여단장과 통화했을 것”이라고 말한 데 대해 이 전 사령관은 “남의 부하한테 제가 그걸 왜 전달하느냐”며 “상대방의 임무 이야기는 없었다”고 반박했다. 또 당시 윤 전 대통령에게 ‘본회의장’이나 ‘국회의원’이라는 말도 들은 적 없다고 했다. 의원들을 끌어내라는 지시 자체를 받은 적이 없다는 게 이 전 사령관 얘기다.

작년 12월 3일 비상계엄 선포 후 국회에 진입했던 계엄군 병력이 이튿날인 12월 4일 새벽 계엄해제 후 국회 밖으로 철수하고 있다. /뉴시스

구체적으로 이 전 사령관은 윤 전 대통령과 통화한 것으로 조사된 12월 4일 오전 0시 32분 당시에 대해 “당시 질책을 받는 상황이었다고 느꼈다”고 말했다. 누군가 국회 담을 넘는 상황이었고, 이를 방어해야 할 담당 부대가 자신이 지휘하는 수방사령부였기 때문에 임무 수행을 똑바로 하지 못했다고 윤 전 대통령이 질책하는 거라고 느꼈다는 얘기다.

◇李 “비상계엄 책임 지는 게 군인으로서 마지막 명예”

한편 이 전 사령관은 증인신문 말미에 직접 발언권을 얻어 비상계엄에 대한 소회를 털어놓았다. 그는 “비상계엄이 선포됐을 당시 너무 당황했고, ‘이게 맞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며 운을 뗐다. 곧이어 “우리 군은 헌법을 수호하고 국민을 지킬 뿐”이라며 “비상계엄 당시 출동했던 모든 수방사 장병은 그렇게 알고 나갔다”고 했다. 비상계엄 당시 위법성에 대해서 알지 못했고, 모든 수방사 병력도 마찬가지였을 거라는 얘기다.

이 전 사령관은 “비상계엄의 위법에 대한 책임은 제가 받아들이는 것이고, 군인으로서 마지막 명예라고 생각한다”면서도 “내란이라고 단정 짓는 것은 아니라는 생각이 든다”고 말했다. 다음 세대 후배 군인들을 위해서라도 사법부의 판단이 있기 전까지 비상계엄을 내란으로 정의하지는 않았으면 좋겠다는 것이다.

이어 이 전 사령관은 “제 지시로, 명령으로 출동했던 인원들의 조서를 읽어보니 모두 ‘군인’이었다”며 “(각자) 해야 할 일을 정확하게 알고 있었고, 그들 스스로 판단해서 건의도 했고 예방도 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정말 감사하다는 말씀을 드린다”고 했다. 이 전 사령관은 발언을 마친 뒤 재판부와 특검, 윤 전 대통령 변호인단에게 차례로 고개 숙여 인사했고, 오후 10시 55분쯤 법정을 떠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