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장원 전 국가정보원 제1차장 /뉴시스

12·3 비상계엄 당시 윤석열 전 대통령으로부터 ‘싹 다 잡아들이라’는 지시를 받았다고 주장한 홍장원 전 국가정보원 1차장이 13일 서울중앙지법 형사25부(재판장 지귀연) 심리로 열린 윤 전 대통령의 내란 재판에 증인으로 출석했다. 윤 전 대통령과 홍 전 차장이 법정에서 대면하는 건 지난 2월 헌법재판소 탄핵심판 변론 이후 약 9개월 만이다.

홍 전 차장은 헌법재판소 탄핵심판과 국회에서 계엄 당시 윤 전 대통령으로부터 ‘방첩사를 도와 싹 다 잡아들이라’는 지시를 받은 뒤 여인형 전 방첩사령관으로부터 이재명·한동훈 등 체포 대상자 명단을 듣고 수첩에 받아 적었다고 주장했다. 이른바 ‘홍장원 메모’는 국회의 윤 전 대통령 탄핵소추안 가결에 주요한 근거가 됐다.

◇‘홍장원 메모’ 신빙성 공방...尹 “초고는 지렁이 글씨”

이날 내란 특검팀과 변호인단은 홍장원 메모를 증거로 채택하는 문제를 두고 설전을 벌였다. 윤 전 대통령도 직접 “(메모)초고를 보면 글씨가 지렁이처럼 돼 있다”며 신빙성을 문제 삼았다.

홍 전 차장의 메모는 몇 단계에 걸쳐 작성됐다. 1차 메모는 홍 전 차장이 계엄 당일 여 전 사령관과 통화하면서 직접 작성한 자필 메모다. 2차 메모는 홍 전 차장 보좌관이 이를 따라 적은 것으로 지금은 폐기됐다. 3차 메모는 계엄 다음 날인 12월 4일 오후 4시쯤 보좌관이 기억을 떠올려가며 다시 적은 뒤에 홍 전 차장이 가필(加筆)을 한 것이다.

이날 법정에서 공개된 3차 메모에는 ‘이재명’ ‘우원식’ ‘한동훈’ 등 정치인·법조인 이름과 ‘헌법재판관’ ‘대법관’ ‘선관위원장’ 등 직함이 적혀 있었다. 홍 전 차장은 이 메모를 12월 6일 박선원 더불어민주당 의원에게 카카오톡으로 보내줬고, 이후 검찰 조사 과정에서도 가필했다고 한다.

윤 전 대통령 측은 메모 대부분을 보좌관이 작성한 것이라며 진정성립(문서 내용이 문제 없는지 당사자에게 확인하는 것) 절차에 이의를 제기했다. 변호인은 “메모 중에 증인이 작성한 부분이 별로 없고 나머지는 보좌관이 작성한 것으로 보인다”며 “(작성자를 불러)진정성립 여부를 따로 확인해야 하는 것 아닌가 생각한다”고 했다.

재판부는 “문서를 작성할 때 초안을 지시하고 확인한 뒤에 빠진 게 있으면 가필했다는 것 같은데 그러면 본인 작성으로 봐야 하지 않느냐”고 했다. 그러자 윤 전 대통령이 직접 발언에 나서 “초고는 글씨가 지렁이처럼 돼 있다”라며 “그걸 가지고 보좌관을 시켜 만들었다고 하니 초고와 이것(제출된 메모)이 비슷하지가 않다”고 말했다.

◇洪, CCTV 동선 논란에 “편집된 상태로 편파적으로 공개”

홍 전 차장은 이날 메모 작성 경위에 대해 다시 증언했다. 그는 작년 12월 비상계엄 선포 이후 국정원장 공관에 들어가 조태용 당시 국정원장 소재를 확인하면서 수행팀에 연락을 조치하던 중에 보안폰이 울려 윤 전 대통령에게 걸려 온 전화를 받았다고 했다. 홍 전 차장은 “대통령이 ‘비상계엄 방송을 봤냐’고 하시기에 봤다고 하니 ‘싹 다 잡아들여서 이번에 싹 다 정리해라’ ‘대공 수사권을 지원해주겠다’고 말씀하셨다”고 했다. 이어 “방첩사를 지원하라고 하셨는데 단순한 지원이 아니라 인원이나 예산을 무조건 지원하라고 강하게 말씀하셨던 기억이 난다”고 했다.

이후 여 전 사령관에게 전화해 ‘V(대통령)와 통화했는데 너희를 지원해주라고 한다’고 말했더니 여 전 사령관이 세부 내용을 보고하듯이 얘기했다고 한다. 그는 “여인형이 ‘경찰과 협조해 국회를 봉쇄하고 있고, 방첩사에서 체포조가 체포 명단을 갖고 활동하는데 지원을 요청한다’며 위치 추적과 관련된 이야기를 했다”고 했다. 이어 “체포한 이후에는 방첩사 구금시설에 수용해 신문할 것이고 1·2차 체포 작전을 한다는 내용을 순차적으로 설명했다”고 했다.

홍 전 차장은 증언 내용이 국정원 CCTV와 부합하지 않는다는 논란에 관해선 “CCTV가 편집된 것 같다”고 했다.

그는 지난 2월 헌재에서 애초 메모 작성 시점과 장소를 ‘작년 12월 3일 밤 11시 6분 국정원장 공관 입구 공터’라고 했었다. 그러나 자신이 10시 58분 국정원 본청 안으로 들어가는 모습이 담긴 국정원 CCTV가 공개되자 ‘공터에 있던 건 10시 58분이었고 명단을 받아 적은 장소는 사무실이었다’며 진술을 바꿨다.

홍 전 차장은 이에 대해 “제가 보기엔 CCTV가 편집된 상태에서 편파적으로 공개된 게 아닌가 한다”면서 “조태용 전 국정원장이 (국민의힘을 통해) 공개한 CCTV가 제 기억을 혼란스럽게 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