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희대(오른쪽) 대법원장이 지난달 25일 서울 서초구 대법원에서 열린 신임 법관 임명식에서 신임 법관들의 선서를 받고 있다. 여권이 최근 추진하는 대법관 증원과 재판소원 도입 등과 관련, 법조계에선 “정치적 유불리만 따지다 보니 엇박자가 생긴다”는 비판이 나오고 있다./대법원

이재명 대통령과 더불어민주당이 추진하는 대법관 증원과 재판소원 도입, 상소(항소·상고) 제한 등 각종 사법 제도 개편에 대해 법조계에서는 “무분별한 상소를 줄여 재판을 적게 하자면서, 대법관을 늘리고 ‘4심제’까지 열어주는 것은 모순”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당정이 사법 제도에 대한 일관된 철학 없이 이 대통령의 선거법 사건을 파기환송한 조희대 대법원장을 압박하기 위해 ‘마구잡이 개혁’을 추진하고 있다는 것이다.

◇상고심 미제 줄었는데, 대법관 증원?

민주당은 신속한 재판과 상고심 사건 적체 해소를 위해 현재 14명인 대법관을 26명으로 늘리는 법안을 추진 중이다. 이에 대해 대법원은 “대법관보다 일반 판사를 늘려 1·2심을 강화하는 게 급선무”라는 입장이다. 실제로 수년씩 선고가 나오지 않는 장기 미제 사건은 상고심보다 하급심에서 더 적체되고 있는 것으로 집계됐다.

2일 대법원 법원행정처가 송석준 국민의힘 의원실에 제출한 자료를 보면, 조 대법원장이 2023년 12월 취임한 이후 대법원의 민형사 장기 미제 사건 수는 크게 줄어들었다.

대법원에서 2년 넘게 재판을 받은 장기 미제 형사 사건의 경우, 피고인 수가 2023년 175명에서 작년 149명으로 15% 감소했다. 올해 상반기(1~6월)까지 139명으로 더 줄었다. 반면 1심 피고인 수는 2023년 4583명에서 작년 4223명으로 소폭 줄었다가 올해 상반기 4526명으로 다시 늘어났다. 항소심 피고인 수도 같은 기간 442명(2023년), 358명(2024년), 376명(올해 상반기)으로 비슷한 추세였다.

그래픽=정인성

민사 장기 미제 사건도 비슷한 추세를 보였다. 한 사람이 여러 소송을 중복해 낸 사례를 제외하면, 대법원에 계류 중인 사건은 2023년 355건에서 작년 242건, 올 상반기 195건으로 계속 감소했다. 그러나 같은 기간 1심은 7918건에서 8245건으로 늘었고, 항소심 사건도 같은 기간 3146건에서 3323건으로 증가했다. 지방법원 한 부장판사는 “대법관 증원으로 일선 판사들이 대법원으로 빠져나가면 1·2심은 사건이 더 적체될 것”이라고 했다.

법원행정처는 대법관을 12명 증원하면 재판연구관이 최소 106명 이상 충원돼야 한다고 보고 있다. 일선 법원의 판사 100여 명이 소속된 대형 지방법원 1개가 없어지는 셈이다. 법조계에선 “상소를 제한하려면 그만큼 하급심에서 충실한 재판이 이뤄져야 하는데, 대법관 증원은 이와 반대된 정책”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송석준 의원은 “일 잘하는 대법원을 흔들기보다 1·2심을 충실화하는 방향으로 사법 정책을 전환해야 한다”고 말했다.

◇“재판소원 도입하면 상소 남발될 것”

사실상 4심제를 허용하는 ‘재판소원’ 도입도 오히려 상소를 늘려 사회적 비용을 키울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재판소원은 대법원 확정 판결을 헌법재판소에서 다시 다툴 수 있도록 하자는 제도인데, 이는 거의 모든 사건이 재판을 4번씩 받게 될 가능성이 높다는 게 법조계의 시각이다. 매년 대법원에 접수되는 3만~4만건의 민형사 사건이 헌재로까지 이어지게 되는 것이다.

한 고법 부장판사는 “재판소원이 도입되면 너도나도 4심까지 재판받겠다고 할 텐데 소송에 드는 시간과 비용이 크게 늘어날 수밖에 없다”며 “상소를 제한하고 하급심에서 제대로 재판하자는 것과 모순되는 주장”이라고 했다. 재판소원은 헌재를 사실상 대법원의 상급 기관으로 두는 것으로, ‘사법권은 법원에 속하고, 대법원이 최고법원을 맡는다’고 규정한 헌법에 반한다는 점도 문제로 지적되고 있다.

한 전직 대법관은 “대법관 증원이나 재판소원 도입은 모두 상고심의 기능과 역할 등에 대한 깊은 고민과 철학을 바탕으로 추진해야 한다”면서 “당정이 정치적 유불리만 따져 개편을 하려니 엇박자가 생기는 것”이라고 했다.

이런 가운데 이재명 대통령은 최근 정성호 법무장관에게 “항소·상고 남발을 제한해 하급심에서 끝내야 한다”는 취지의 대책 마련을 지시했다. 검찰의 상소 제한을 지시한 것이지만 재판소원 도입과는 상충되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