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뉴스1) 안은나 기자 = 22일 서울 여의도 국회 본청 계단에서 민주노총·노조법 2·3조개정운동본부 주최 '단 한 글자도 바꿀 수 없다! 노조법 2·3조 개정안 즉각 통과 기자회견' 참석자들이 법안 통과를 촉구하며 구호를 외치고 있다. 2025.8.22/뉴스1

김용범 대통령실 정책실장이 20일 용산 대통령실에서 기자간담회를 열고 노란봉투법에 대한 재계의 우려와 관련해 “기업들이 해외로 빠져 나갈 일을 일어나지 않을 것 같다”고 했습니다. “법을 보면 정리해고나 아주 큰 인수합병 이런 정도만 (하청 노조가 원청에 교섭을 요구)할 수 있지 마구 할 수 있는게 아니다”는 것입니다. 그러면서 “만약 기업들이 해외로 빠져 나가는 일이 일어나면 (그때 가서)법을 고치면 된다”고 했습니다.

지난달 28일 국회 환노위를 통과한 ‘노동조합 및 노동관계조정법’ 의 내용은 다음과 같습니다. ‘사용자’개념을 확대해 ‘근로계약의 체결 당사자가 아니더라도 근로자의 근로조건에 대하여 실질적이고 구체적으로 지배·결정할 수 있는자도 사용자로 본다’고 했습니다. 

사용자는 근로자의 단체교섭 요구에 응해야 합니다. 불응할 경우 부당노동행위로 형사처벌 대상이 될 수 있습니다.

 그런데 개정법에 따르면 근로계약을 체결하지도 않은 하청업체 소속 근로자를 비롯해 사내하도급이나 도급·용역·위수탁계약 등 간접고용 관계에 있는 근로자들이 원청업체를 대상으로 단체교섭을 요구하는 경우에도 ‘사용자’에 해당하면 응해야 합니다.

게다가 ‘사용자’를 판단하는 기준은 ‘근로자의 근로조건에 대해 실질적이고 구체적으로 결정할 수 있는지 여부’ 입니다.

어느 정도를 실질적, 구체적으로 봐야 할까요. 이런 불확정개념을 두고 해석의 여지는 무한대로 넓어질 수 있습니다. 김 실장 발언대로 ‘정리해고나 큰 인수합병 정도만’ 교섭을 요구할 수 있는게 아닙니다. 당연히 기업 입장에서는 사업의 불확실성이 커지게 됩니다. 당장 어느 하청업체 근로자가 단체교섭을 요구하고 나설지 모르니까요.

이런 분위기에서 특수(特需)를 맞는 것은 로펌들입니다. 여러 대형로펌에서 ‘노란봉투법’ 을 주제로 뉴스레터를 발행하고 전문가 영입을 광고하고 있습니다. 법무법인 태평양의 뉴스레터에 따르면 고용노동부에서 ‘사용자’ 판단기준이 마련되더라도 개별 사건에서 사용자 해당 여부 판단은 결국 법원을 통해 이뤄질 수 없기 때문에 산업 현장 혼란은 불가피하다고 합니다.

최근 이 같은 쟁점을 다룬 1심 판결이 선고됐는데 ‘원청이 실질적으로 구체적으로 지배 결정하는 지위에 있는지’ ‘하청 근로자들의 노동조건을 원청과의 단체교섭으로 결정할 필요가 있는지’ 등의 판단기준을 제시했다고 합니다. 그러나 이 내용만으로는 동어반복적인 표현에 불과하게 느껴질 수 있습니다.

원청이 하청에 대해 ‘실질적 지배력’이 있는지, 그에 따라 하청의 교섭 요구에 응해야 하는지는 그동안에도 여러 사건에서 법적 쟁점이 돼 왔습니다. 최근 가장 주목받는 판결 중 하나가 지난달 28일 서울행정법원이 선고한 한화오션(구 대우조선해양)사건입니다. 법원은 한화오션이 사내 하청 노동조합의 단체교섭 요구를 거부한 것은 부당노동행위에 해당한다고 판단했습니다.

이 사건은 2022년 4월 전국금속노동조합 거제·통영·고성조선하청지회가 원청인 한화오션을 상대로 1)성과금 지급 2)학자금 지급 3)노조활동 보장 4)노동안전 5)취업방해 금지 등 5개 의제에 대해 직접 교섭을 요구하면서 시작됐습니다.

‘한화오션이 실질적 지배력이 있으므로 단체교섭 의무가 있다’는 중앙노동위원회 결정에 한화오션이 불복하면서 소송으로 가게 됐고 법원은 1)2)4)에 대해서는 단체교섭 의무를 인정했고, 3)5)에 대해서는 인정하지 않았습니다.

법무법인 세종 조찬영 변호사는 “원청이 하청에 대해 실질적 지배력이 있는지를 전체적으로 판단한 후 교섭 의제별로 원청의 관여 정도를 따져 교섭에 응할 의무가 있는지를 판단하기 때문에 과정이 매우 복잡하다”고 했습니다.

이처럼 노란봉투법 시행 이전에도 원청과 하청 사이에서 ‘실질적 지배력’이 쟁점이 됐기 때문에 법 시행 이후에도 큰 변화는 없다는 의견도 있습니다.

그러나 민주당이 근로계약관계를 전제로 하는 ‘사용자’개념을 획기적으로 바꾸면서도 제대로 된 공청회나 토론회를 거치거나 관련 법령을 정비하지 않고  졸속 입법을 했기 때문에 현장의 혼란은 더욱 가중될 것이란 예상입니다. 원청 입장에서 실질적 지배력이 있는지, 교섭에 응해야 하는지를 판단받기 위해서는 최소 몇 년간의 소송을 거쳐야 하기 때문입니다. ‘사용자’에 해당하는데도 단체교섭에 불응하면 이는 형사처벌 대상인 부당노동행위가 될 수 있기 때문에 사업의 위험성과 예측불가능성은 더욱 높아졌습니다.

일선에서 김 정책실장의 발언과 달리 “기업하려면 한국을 떠야 한다” “로펌 없이는 사업을 하기도 힘들 것”등의 반응이 나오는 이유이기도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