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서초구 강남대로 193(양재동) 서울가정법원·서울행정법원 청사./전기병 기자

의사소통에 어려움이 있는 중증 장애인이 자립하도록 지원한 시설이 해당 장애인의 자기결정권을 침해하지 않았다는 법원 판단이 나왔다.

서울행정법원 행정4부(재판장 김영민)는 최근 A 사회복지법인이 국가인권위원회를 상대로 낸 권고결정 취소 청구에서 원고 승소로 판결했다고 16일 밝혔다.

서울시의 장애인 탈시설화 정책에 따라 A 법인은 2014년부터 운영하던 수용형 장애인 시설을 포함한 장애인 시설들을 순차적으로 폐쇄했다. 그리고 장애인들이 자립할 수 있도록 지원 프로그램을 실시했다. 이 과정에서 장애의 정도가 심한 뇌병변·지체·지적 장애를 가진 장애인 B씨도 2021년 3월 해당 시설 퇴소하게 됐다. B씨는 1986년부터 약 35년 동안 해당 시설에 살아왔다.

국가인권위원회는 2023년 7월 A 법인이 B씨의 자기결정권과 주거이전의 자유를 침해했다며 재발방지 대책 마련을 권고했다. B씨가 자신의 주거와 동거인을 선택할 능력이 없는데도, 의사를 확인하지 않고 퇴소시켜 그의 인권을 침해했다고 본 것이다. 해당 법인은 이같은 권고가 부당하다며 소송을 제기했다.

재판부는 법인의 손을 들어줬다. 먼저 재판부는 B씨가 자신의 의사를 다른 사람에게 표현하지 못한다고 본 전제가 잘못됐다고 판단했다. 재판부는 “음성언어만을 통해서는 의사소통이 쉽지 않은 장애인이라고 하더라도, 숨소리, 표정, 몸짓 등과 같은 대체적인 의사소통 방식이 가능하다”며 “장애인이 자신의 생각이나 진정한 의사를 다른 사람들에게 표현하지 못한다거나 전달하지 못한다고 쉽게 단정할 수 없다”고 봤다.

이어 B씨가 자립과 관련한 설명회에 참석한 점을 들어 “이 법인이 퇴소에 앞서 B씨에게 지원주택 입주의 의미 등에 관해 불충분한 설명을 했다고 볼 수는 없다”고 했다.

또 B씨가 시설을 나간 이후 삶이 열악해지지도 않았다고 판단했다. 재판부는 “A 법인이 이 사건 퇴소 이후 B씨가 지원받을 복지서비스나 자원을 충분히 준비하고 결정을 내렸고, 지원주택을 통해 B씨에게 제공되는 복지서비스가 이전 시설에 비해 열위에 있다고 단정하기 어렵다”고 했다.

또 “이전 시설에서 나온 이후 ‘B씨의 의사소통능력이나 활동능력이 좋아졌다’는 관찰 결과 등에 비춰 보면 퇴소 조치가 B씨에 대한 거주이전의 자유를 침해했다거나 보호조치를 미흡하게 함으로써 인권을 침해한 것이었다고 보기 어렵다”고 했다.

인권위가 이같은 판결에 수긍하면서 해당 판결은 지난달 3일 확정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