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서초구에 위치한 대법원 전경./뉴스1

제사 주재자가 아니더라도 평소 조상의 무덤을 관리하고 성묘하던 유족이라면 분묘 훼손에 따른 손해배상을 청구할 수 있다는 첫 대법원 판단이 나왔다.

3일 법조계에 따르면 대법원 2부(주심 오경미 대법관)는 최근 A씨가 조상 무덤과 유골을 훼손당했다며 개발업자 등에게 손해배상을 청구한 소송에서 A씨에게 패소 판결한 원심을 깨고 사건을 춘천지법으로 돌려보냈다.

A씨는 자신의 조부모와 부친 등의 묘 4곳을 매년 벌초하고 제사를 지내는 등 실질적으로 관리해오고 있었다. 하지만 이 분묘의 주재자는 그의 조카이자 종손인 B씨로 돼 있었었다. 고인의 유해와 묘지 등 제사용 재산의 소유권은 민법상 제사 주재자에게 있다.

지난 2018년 7월 개발업자는 해당 분묘가 위치한 임야를 개발할 목적으로 제사 주재자인 B씨로부터 묘지이장 이행각서를 받고, 그해 10월 분묘들을 파헤쳤다. 이후 그 안에 안치된 망인들의 유골 4구를 꺼내 양철통에 담아 불에 태운 뒤, 분묘 인근에 묻었다. 이같은 행위로 해당 개발업자는 지난 2020년 5월 분묘발굴유골손괴죄 등으로 유죄판결을 받았다. A씨는 개발업자와 관계자 등을 상대로 손해배상 청구 소송도 제기했다.

1심과 2심은 모두 A씨에게 패소 판결을 내렸다. 법원은 “해당 분묘의 관리처분권자인 제사주재자는 원고가 아니라 B씨이므로, 원고에겐 분묘와 유골 훼손 행위에 관한 손해가 발생하지 않았다”라고 판단했다.

그러나 대법원은 이같은 판결을 뒤집었다. 대법원은 “분묘를 발굴하거나 유체·유골을 훼손하는 행위가 어떤 사람의 추모감정 등 인격적 법익을 침해함으로써 정신적 고통을 초래할 경우, 그 사람은 정신적 고통에 대해 위자료를 청구할 수 있다”라고 했다.

이어 “개발업자는 사회통념상 받아들일 수 있는 범위를 벗어나는 방법으로 유골을 처리해 훼손했다”면서 “망인들의 자녀·손자녀이자 분묘를 실제로 관리해 온 원고는 정신적 고통을 입었으므로 손해배상 청구권을 가진다고 볼 여지가 있다”라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