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인규 전 대검 중앙수사부장이 고(故) 노무현 전 대통령의 이른바 ‘논두렁 시계’ 보도에 관여했다는 의혹 보도는 사실이 아니어서 언론사가 정정보도를 해야 한다는 대법원 판단이 나왔다.
대법원 3부(주심 이흥구 대법관)는 9일 이 전 중수부장이 CBSi와 당시 소속 기자·논설실장을 상대로 “보도 내용이 사실과 달라 정정보도를 하고, 명예훼손으로 인한 손해도 배상해달라”며 낸 소송의 상고심에서 ‘보도 내용이 허위’라며 정정보도 청구를 인정한 원심 판단을 확정했다. 다만, 이 전 중수부장에 대한 손해 배상 책임을 인정한 원심 판단 일부를 깨고 사건을 서울고법으로 돌려보냈다.
노컷뉴스는 2018년 6월 이 전 중수부장의 미국 거처가 확인됐다며 이 전 부장의 소환조사가 불가피하다는 내용의 기사를 홈페이지에 게재했다. 당시 이 전 부장이 미국의 한 식당에서 식사하는 모습이 담긴 사진도 함께 올리며 검찰 조사를 앞두고 돌연 출국했다며 도피성 출국 의혹을 제기하기도 했다. 기사에는 ‘이 전 중수부장이 노 전 대통령의 논두렁 시계 수수 의혹 정보를 언론에 흘리는데 관여한 것으로 알려졌다’는 내용이 담겼다.
보도 이틀 뒤에는 이 전 중수부장이 국내에서 노무현 전 대통령 관련 의혹에 관해 진실을 밝혀야 한다는 취지의 논평도 게재했다. 논평에는 ‘이 전 중수부장은 노 전 대통령에게 타격을 주기 위한 국정원의 기획이었다며 사실을 시인했다”는 내용을 담았다.
이 전 중수부장은 그해 9월 “시계 수수 의혹을 언론에 흘리지 않았고 국정원이 흘리는 데 개입하지도 않았다”며 소송 제기했다.
이 전 중수부장은 ‘보도 내용이 사실이 아니다’라고 재판에서 주장했지만, 1심 법원은 “원고를 사건 관여자로 표현한 보도가 허위라고 보기 어렵다”며 2020년 2월 원고 패소 판결했다. 1심 재판부는 “피고는 보도에서 언론에 정보를 흘린 주체를 국정원으로 적시했다”며 “원고가 의혹을 언론에 직접 흘렸다거나 국정원이 이 의혹을 흘리는데 협력했다는 의미로 보이지 않는다”고 했다.
사건은 2심에서 뒤집혔다. 서울고법은 2021년 8월 ‘보도 내용은 허위’라며 정정보도 필요성을 인정했다. CBSi와 논설실장이 3000만원, CBSi와 기자가 1000만원을 각각 이 전 중수부장에게 지급하라고 판결했다. 2심 재판부는 “검찰이 국정원 요청에 따라 시계수수 의혹에 관한 정보를 언론에 흘렸다는 사실을 시인했다는 부분은 원고의 명예를 훼손하는 내용으로 볼 수밖에 없다”면서 “원고가 국정원 간부로부터 시계 수수 의혹을 언론에 흘리는 방식으로 활용했으면 좋겠다는 요청을 받은 사실이 인정될 뿐, 실제 원고가 언론에 정보를 흘리는 데 관여했다고 인정하기에는 충분한 증거가 없다”고 판단했다.
대법원은 2심 재판부 판단과 같이 문제가 된 보도 내용은 허위로 봤다. 이에 따라 2심 판단 중 보도 내용에 대한 정정보도 필요성을 인정한 부분은 그대로 확정했다. 대법원은 “노컷뉴스 측에서 그 사실의 존재를 수긍할만한 소명 자료를 제시하지 않았지만 이 전 부장 측은 그 허위에 대한 증명 책임을 다 했다고 볼 수 있다”고 했다.
다만, 2심이 문제가 된 해당 보도 전부에 대한 손해배상 책임을 인정한 것은 잘못이라고 했다. ‘이 전 중수부장이 논두렁 시계 의혹에 관한 정보를 언론에 흘리는데 관여했다’는 노컷뉴스 보도 내용은 언론사가 당시 진실이라고 믿을만 했기 때문에 배상 책임까지 질 필요는 없다는 것이다.
대법원은 “이 부분 보도는 공직자의 직무 수행에 대한 감시와 비판, 견제 의도에서 비롯된 것으로 공익을 위한 것으로 인정할 수 있다”며 당시 시계 수수 의혹 관련 사건 정보가 어떻게 언론에 유출됐는지 의혹이나 논란이 계속됐고, 국정원은 물론 검찰이 개입했을 것이란 의혹을 제기하는 언론 보도도 이어지는 중이었다”고 했다.
그러면서 “노컷뉴스 측이 그런 사실이 진실이라고 믿은 데 상당한 이유가 없었다고 보기 어렵다”며 “이 전 중수부장에 대한 심히 경솔한 공격으로서 현저히 상당성을 잃은 것으로 보기 어려워 위법성이 조각될 여지가 있다”고 했다.
이 전 중수부장은 작년 3월 노 전 대통령이 연루된 ‘박연차 게이트’ 사건 수사 당시 상황 등을 담아 ‘나는 대한민국 검사였다’라는 제목의 회고록을 출간했다. 그는 회고록 출간 당시 “노 전 대통령에 대한 수사의 진실을 알려야 할 때가 됐다”고 밝히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