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6일 서울 종로구 헌법재판소 앞에서 열린 성소수자/인간면역결핍바이러스(HIV)감염인 처벌법 헌법재판소 선고 기자회견에서 참가자들이 군형법 추행죄, 전파매개행위죄의 위헌을 주장하고 있다./뉴스1

헌법재판소가 26일 동성 군인 간 성적 행위를 처벌하는 군형법 92조의6(추행) 조항에 대해 합헌 결정을 내렸다. 헌재는 동성 군인이 합의 하에 성적 관계를 갖더라도, 이를 처벌하지 않고 방치하면 국군의 전투력 보존에 위해가 발생할 우려가 있다고 판단했다.

헌재는 이날 동성 군인 간 성관계는 장소·시간·합의 여부와 관계 없이 모두 처벌하도록 규정한 군형법상 추행 처벌 조항에 대해 합헌 결정을 내리고 위헌법률심판 청구를 각하했다. 유남석 헌재 소장을 포함한 헌법재판관 5명이 합헌 의견을, 나머지 4명은 위헌 의견을 냈다. 앞서 헌재는 2002년, 2011년, 2016년에도 해당 조항에 대해 합헌이라고 판단했는데, 이번에도 같은 의견을 유지했다.

이 조항은 군인 등을 대상으로 ‘항문성교나 그 밖의 추행을 한 사람은 2년 이하의 징역에 처한다’고 규정한다. 군사법원은 이를 근거로 남성 군인 간의 항문성교나 성추행이 적발되면 처벌해왔다.

다만 대법원 전원합의체는 작년 4월 사적 공간에서 자발적 의사 합치에 따라 성관계가 이루어지는 등 군기(軍紀)를 직접적·구체적으로 침해한 것으로 보기 어려운 경우에는 군형법으로 처벌할 수 없다고 판시했다. 해당 처벌 조항의 적용 범위를 제한적으로 해석한 것이다.

헌재는 대법 전합 판례 등을 고려해 군형법상 추행 처벌 조항이 헌법에 위반되지 않는다고 판단했다. 유 소장과 이은애‧이종석‧이영진‧김형두 헌법재판관 등 5명은 “동성 군인 사이의 합의에 의한 성적 행위라 하더라도, 그 행위가 근무 장소나 임무 수행 중에 이뤄진다면 국군의 전투력 보존에 심각한 위해를 초래할 위험성이 있다”면서 “이를 처벌한다고 해도 과도한 제한이라고 할 수 없다”고 했다.

다수 재판관은 이어 “절대 다수의 군 병력은 여전히 남성으로 이뤄져 있고, 장기간 폐쇄적인 단체 생활을 해야하므로 일반 사회와 비교해 동성 군인 사이에 성적 행위가 발생할 가능성이 높다”며 “이를 방치할 경우, 군대의 엄격한 명령 체계나 위계 질서는 위태로워질 것”이라고 말했다.

반면 김기영‧문형배‧이미선‧정정미 재판관은 해당 처벌 조항이 위헌이라는 의견을 밝혔다. 4인의 재판관은 “이 조항은 범죄구성 요건으로 추상적이고 모호하며 포괄적인 용어만을 사용한다”며 “법 집행기관의 자의적 법해석 가능성을 초래한다”고 지적했다. 남성 군인이 아닌 여성 군인 혹은 이성 간의 추행도 처벌이 가능한지, 동성 군인들이 사적 공간이 아닌 곳에서 합의 하에 성적 행위를 한다면 처벌받는 것인지 등이 불명확하다는 취지다.

나아가 김기영‧이미선‧정정미 재판관은 “동성 간 성적 행위가 선량한 성적 도덕 관념에 반하는 행위라는 종래 평가를 이 시대의 보편타당한 규범으로 받아들이기 어렵게 됐다”면서 “이 조항은 합리적 이유 없이 합의에 의한 성적 행위를 한 동성 군인을 차별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한편, 헌재는 이날 ‘에이즈 예방법(후천성면역결핍증 예방법)’의 전파매개 금지 조항에 대해서도 재판관 4(합헌)대 5(일부 위헌) 의견으로 합헌 결정했다. 위헌 결정 정족수인 6명에 미달해 효력이 유지됐다.

이 조항은 에이즈(인체면역결핍바이러스‧HIV)에 걸린 감염인이 혈액·체액으로 다른 사람에게 이를 퍼뜨려서는 안 되고, 위반 시 최대 징역 3년 처벌을 받을 수 있다고 규정한다. 진보 시민단체들은 해당 처벌 조항이 에이즈 감염자의 성적 자기 결정권 등을 침해한다고 주장해왔다.

헌재는 이에 대해 “HIV 감염인의 제한 없는 방식의 성행위 등 감염인의 사생활 자유가 제약되는 것보다, 국민의 건강 보호라는 공익의 달성이 더 중대하다”고 밝혔다. 다만 “의학적 치료를 받아 HIV 바이러스의 전파 가능성이 현저히 낮은 감염인이, 상대방에게 이를 알리고 한 행위에는 적용할 수 없다”면서 처벌 조항을 제한적으로 적용해야 한다고 판단했다.